자본주의란 무엇인가. 현대 문명의 핵심이지만 이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없다. 다양하고 심지어 매우 상이한 견해들이 존재한다. 슘페터처럼 기업가를 자본주의 경제의 지배자로 꼽으며 자본주의의 본질을 이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칼 폴라니처럼 원래 상품이 아니었던 노동과 화폐가 상품화되는 과정으로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경우도 있다.

자본주의의 이후에 관해 많은 이들이 서로 다른 의견을 피력해왔다. 여전히 명확한 결론이 나지 않았고 논쟁은 계속 진행 중이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것이 어떤 체제가 됐든 인간을 약탈하고 군림하기보다는 인간의 시중을 드는 건강한 조력자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존재해야 한다는 점이다.

사회혁신 분야의 세계적인 대가인 제프 멀건은 <메뚜기와 꿀벌>에서 자본주의의 속성을 ‘메뚜기’와 ‘꿀벌’, 즉 ‘약탈자’와 ‘창조자’라는 대비되는 두 개념을 통해 설명하며, 이를 토대로 향후 자본주의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그 전망에 대해 심도 깊게 논한다.

저자는 현재 자본주의가 전에 없이 극도로 창조적이면서 약탈적인 상태이므로 산업 시대와는 전혀 다른 문제에 직면해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 또한 과거와 다른 방식의 혁신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에는 자본주의를 촉진하는 요소만큼이나 그것을 갉아먹는 요소가 많다. 자본주의는 내재적으로 ‘파괴’와 ‘약탈’이라는 속성을 지녔다. 자본주의는 갈취하는 자, 약탈하는 자에게 보상을 한다. 어떤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타인에게서 특정 가치를 빼앗아온 사람이나 기업이 잘나가는 일은 매우 흔하다.

부동산 가격 폭등을 노리는 건물주부터 독과점에 기반한 유통업과 제약업, 신기술을 둘러싸고 일확천금을 노리는 소프트웨어 산업 등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돈, 정보, 시간 등은 매번 약탈되기 일쑤다. 특히 금융 산업에서는 생산과 혁신을 통해서보다 정보와 권력을 이용한 투기를 통해 수익을 올리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정부의 방관이 심해지면서 약탈적 금융의 비중이 대단히 커졌다.

이렇듯 많은 자들이 메뚜기 떼처럼 약탈과 파괴를 일삼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경제 행위의 한 부분이라 가벼이 간주할 뿐이다. 

그러나 저자는 한편으로 자본주의가 뭔가를 창조하는 자에게도 보상을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이 책이 강조하는 ‘창조하는’ 자본주의다. 즉 창의적인 테크놀로지, 자동차, 의료, 복지 등 다른 이들에게 가치 있는 것을 만들어내는 행위가 좋은 결실을 얻고 사회적으로 인정받기도 하는 것이다.

저자의 주장처럼 열심히 일하는 사람, 혁신하는 사람, 부지런한 꿀벌 같은 사람에게 보상을 하고, 그럼으로써 모든 이의 삶을 그 어떤 체제보다 많이 향상시킨다는 것은 자본주의가 가진 커다란 장점이다. 

그간 일부 이론들은 자본주의의 새로운 가능성에 무게를 두기보다 자본주의가 지닌 부작용, 시스템이 범한 해악에 대해서만 주목해왔다. 저자는 이러한 일방향의 분석을 거부하고 자본주의를 양쪽의 균형 잡힌 시각에서 엄밀히 바라볼 것을 주문한다.

자본주의에는 하나의 속성만이 아닌 ‘약탈’과 ‘창조’라는 두 가지 측면이 분명 존재하며, 이것들의 불균형이 우리 사회를 여러 차례 위기에 빠뜨려왔다는 것이다. 때문에 향후 자본주의의 비전을 모색하기 이전에 자본주의란 무엇인지를 제대로 이해하고, 그 역학관계를 정확히 살피는 작업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 

자본주의는 ‘삶의 형태로 뿌리내린 하나의 개념’이다. 그 개념이란, ‘교환 가능한 가치를 추구하는 것’을 뜻한다. 교환 가능한 가치란 비단 화폐, 주식, 신용카드 등 재화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자원봉사, 기부, 돌봄, 공유 등을 통해 우리가 느끼는 가치도 포함한다.

자본주의는 지난 세월 봉건적 형태, 약탈적 형태의 모습에서 다양성을 지닌 ‘창조자’의 모습으로 그 경계를 넓혀왔다. 한마디로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자본주의는 이제 순수 자본주의가 아닌 여러 가지가 혼합된 혼종의 형태를 띤다. 가족과 같은 공동체에서는 부모가 자녀에게 양육비나 주거비를 요구하지 않듯이 비자본주의적인 부분들이 존재하고, 중국에서는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와 결합한 형태로 존재한다.

그러나 이 책은 여전히 자본주의가 영구적인 종착역에 다다른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자본주의는 많은 과오를 범한 만큼 좀 더 나은 모습으로 수정되기도 했으며, 현 상태가 최선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여전히 변혁의 기로에 서 있다. 

그렇다면 미래에는 어떤 자본주의가 살아남을 것인가. 자본주의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진화할 것인가. 

「메뚜기와 꿀벌」 제프 멀건 지음·김승진 옮김(세종서적)
「메뚜기와 꿀벌」 제프 멀건 지음·김승진 옮김(세종서적)

먼저 테크놀로지의 양적, 질적 발달이 자본주의의 미래를 구성하는 데 결정적인 요인이 될 전망이다. 오늘날 과학기술 활동의 규모는 실로 전례가 없을 정도라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지식과 물건이 쏟아져 나오는 형국이다.

저자는 이런 현상이 앞으로 점점 심화돼 전 세계 연구·개발비 지출이 금세기 중반이면 무려 현재의 다섯 배에 달하게 될 것이라 본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비전을 논하기 이전에 테크놀로지가 사회를 어떤 방향으로 구성해가야 할지를 항상 상기해야만 한다.

미래에 자본주의가 혁신을 촉진하는 시스템이 되려면 사람들이 가장 절실하게 직면한 과제, 인간을 위한 기술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파악해야 하고, 가장 창조적인 두뇌들이 그 과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효율적 메커니즘을 구성해야 한다. 아울러 여러 과학적 아이디어를 현실화할 수 있는 실용적인 경로들 역시 앞으로 꾸준히 개발할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 경제의 핵심 분야는 지금과 같은 자동차, 철강, 마이크로칩, 금융 서비스 등이 아닌 건강, 교육, 돌봄, 그리고 넓은 의미의 ‘녹색 산업’ 쪽으로 옮겨 가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즉 새로운 일자리와 부의 또 다른 원천이 ‘녹색’이라는 이름이 붙은 분야가 된다는 설명이다.

녹색 분야는 고도로 발달된 테크놀로지를 필요로 하며 이에 청정 기술 산업이 꾸준히 주목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동시에 녹색 산업은 앞으로 제품 자체보다는 ‘서비스’와 관련이 있으리라 예측되기도 한다. 

저자는 자본주의에 관한 비판에서 자주 등장하는 ‘성장’ 개념을 양적 추구가 아닌 삶의 질 추구, 그리고 그에 밀착된 가치들에 연결하는 데 주력한다. ‘효율성’이나 ‘기업가 정신’ 같은 전형적인 자본주의 개념들 또한 인류의 더 나은 삶을 모색하는 데 얼마든지 창조적으로 쓰일 수 있다.

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데 드는 ‘소비의 효율성’은 생산에서의 효율성만큼 중요하다. 건강 분야에서도 삶의 질을 고려한 ‘의료 효율성’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선 건강, 교육, 녹색 산업으로 경제의 중심이 옮겨 가고 있는 한국을 포함한 일부 국가들의 사례와 사회적 혁신, 사회적 기업, 사회적 투자가 빠르게 주류로 부상하고 있는 몇몇 나라의 이야기들이 흥미롭게 펼쳐지기도 한다.

보통 자본시장은 불확실성이 너무 큰 혁신에 투자하는 것을 조심스러워하지만, 한국은 일본과 중국 사이에 끼여 있는 것에 더해 북한과 맞대고 있다는 점에서 공격적으로 기술 개발 전략을 취했다. 이렇게 얻은 성공적인 테크놀로지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로봇이 일상적인 작업에 투입된다면 사람들은 다른 의미 있는 경험에 시간을 더 많이 쓸 수 있게 된다.

정부는 병원과 요양원의 부담을 줄여주는 사회 주택(social housing) 공급자에게 혜택을 줄 수 있고, 독일의 바우만이나 중국 톈진이 지향하는 생태 도시에서는 자원봉사나 상호 부조와 같은 시민적 활동을 비중 있게 다룬다. 혁신은 금융 분야에서도 나타난다. 소액 대출 플랫폼 Kiva(키바)는 은행권에서 대출 받기 힘든 저소득층과 개인 투자자를 연결시킨다. 

저자는 이 모든 것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그리고 그것의 지속적인 ‘유지’가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함을 강조한다. 테크놀로지라는 무궁무진한 가능성과 결합한 새 시대의 자본주의, 물질과 물량, 생산 위주의 경제에서 ‘관계’와 ‘유지’를 중시하는 인간다운 자본주의를 넓고 깊게 통찰하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이 책이 기존 자본주의 관련 서적들과 궤를 달리하는 지점이다. 

자본주의를 보다 창조적이고 선한 방향으로 일구기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가. 저자는 정부 당국의 적절한 통제, 새 가치를 반영한 법과 제도의 재구성, 효율적이고 건강한 테크놀로지의 육성, 야만적이지 않은 노동 환경, 지속 가능한 세계를 향한 열의, 물질이 아닌 삶의 행복과 질적 성장에 기준을 둔 새로운 경제 지표 마련, 폭넓은 ‘시민화(civilization)’가 한데 어우러질 때만이 비로소 지난 수많은 ‘꿀벌’들의 선의에 응답하는 시대가 탄생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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