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 우리헌법읽기국민운동 상임대표
김용택 우리헌법읽기국민운동 상임대표

2018년 6월 12일 오전 9시, 세계의 눈이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은 위원장과의 회담 장소인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호텔에 쏠렸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지구촌에는 가끔 6.12 북미회담과 같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곤 한다. 어제가 그날이다.

“우리는 핵을 가지고 있지만 너는 그런걸 가지고 있으면 위험해, 폐기해!” 트럼프 등 미국의 보수 강경론자는 싱가포르 정상회담 전에 북한을 전방위로 압박했다. 불가역적이고도 항구적인 비핵화는 그 중심이었다. 트럼프 등 서방진영의 대북 공세는 간단이 없었다. ‘한반도 북쪽 조선이라는 동토는 사람이 살 곳이 아니야.’ ‘북한은 김일성이 아들과 손자에게 물려주고 있는 상종 못할 독재국가야.’ ‘35살의 김정은이 다스리는 나라와는 거래를 하거나 도와주면 안 돼, 눈도 마주치지 마!’... 미국 등 서방세계의 제재와 협박은 일면 주효했다. 김정은은 서방의 최강대국 미국의 대통령 트럼프와 70년 만에 악수했다.

북한이 핵을 폐기하겠단다. 그것도 자발적으로... 북한이 핵을 만들게 된 이유는 살아남기 위해서라고 했다. 결국 북한의 보유 핵은 미국과의 협상을 끌어내며 트럼프를 싱가포르 센토사섬으로 불러 낼 수 있었다. 핵도 그냥 핵이 아니다. ICBM인가 하는 미사일에 핵을 장착해 날릴 수 있는, 미국령 괌 공격이 가능한 가공할만한 파괴력을 가진 무기다. 보기에 따라 다르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자존심도 버리고 손자뻘 되는 김정은과 만났다. “앞으로 한반도에서 전쟁놀이(한미연합훈련) 하지 않을게. 대신 그 핵 우리한테 내놔!”, “그걸 어떻게 믿어? 증거를 보여줘!”, 이렇게 겉 다르고 속 다른 두 정상이 만났다. 하나는 3대 세습의 사회주의 국가로서 인민들이 ‘경애하는 지도자’인 김정은이고, 또 하나는 세계의 대통령이고 싶은 트럼프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12일 싱가포르 센토사 섬 카펠라 호텔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뒤 업무오찬 후에 산책을 했다.(싱가포르 스트레이츠타임스) (싱가포르 스트레이츠타임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12일 싱가포르 센토사 섬 카펠라 호텔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뒤 업무오찬 후에 산책을 했다.(싱가포르 스트레이츠타임스) (싱가포르 스트레이츠타임스)

세상은 북미정상회담을 크게 기울어진 게임판으로 알았다. ‘내가 만나주기만 하면 감지덕지, 미국이 원하는 모든 걸 다 들어 줄 것’이라고 트럼프는 확신했을까? 세계의 제국, 미국의 대통령인 트럼프는 72세의 노회(老獪)한 협상의 달인이다. 반면 김정은은 외국과의 회담경험이라고는 중국과 한국 정도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35살 청년이다. 그러나 북미정상의 만남이 게임이 안 되는 회담일 것이라는 생각은 오산이고 착각이었다. 김정은은 당당했고 또 주권국가의 자존심을 지키며 진정성으로 회담에 임했다.

사람들은 생각했다. 핵을 만들 수 있는 시설을 파괴하고 만들어 놓은 핵이며 미사일까지 미국에 주고 나면 북한은 이빨 빠진 호랑이가 아닌가? 그래서 이란은 조미회담을 ‘악마와의 거래’라고 규정했다. 미국이라는 나라, 트럼프라는 사람은 믿을 수 없는 사람이니 조심하라는 경고였다. 김정은의 협상력과 협상방식은 이란과 달랐다. 이란처럼 미국 주도의 기울어진 협상을 하지 않았다. 비핵화를 약속하며 체제안전을 보장받은 6·12 북미 공동합의에서 보듯, ‘악마와의 거래’에서 얻을 것과 잃을 것을 철저하게 따지고 계산해 이란과 같은 전철을 밟지 않았다.

6·12회담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정전의 시대, 분단의 시대는 가고 평화의 시대, 통일의 시대의 서막이 열리고 있다. 우리는 ‘북한의 비핵화’(CVID)와 체제보장, 그리고 휴전선 장막 해체‘가 어느날 갑자기 기적처럼 이루어질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뜸들이지 않는 밥이 없듯이 순서와 단계가 있는 법이다. 북미정상이 싱가포르에서 합의 한 것처럼 자주 만나야 한다. 종전선언을 발표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며 국가간 수교를 이루는 대역사가 첫 만남에서 타결돼야 한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북미정상은 조속한 시일 내에 고위급회담을 갖기로 했고, 정상간 초청 외교도 후속적으로 펼치기로 했다. 수틀리면 전쟁을 치를 수 있으나 평화는 서로의 이해가 맞지 않으면 이뤄지기 어렵다. 완전 비핵화의 진전형인 CVID도 자주 만나, 신뢰가 강화돼야 이뤄지는 법이다. 협상은 상대를 인정해야 이뤄지고 약속은 신뢰 속에 이행된다. 그러다 보면 한반도에 평화는 저절로 온다. 6·12 북미회담은 그 시작일 뿐이다.

남북에 이어 북미의 정상회담까지 온 것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다. 앞으로 가야할 길은 산 넘어 산이다. 대한민국은 지도상의 비무장지대를 걷어내기보다 더 어려운 현안이 있다. 바로 나라 안의 반목과 갈등의 장벽이다. 휴전선이 필요했던 정권. 냉전체제하에서 돈벌이를 할 수 있었던 장사꾼들. 순진한 국민들의 머릿속에 반공이라는 괴물을 심어놓고 국가보안법으로 빨갱이를 만들고 종북을 만들어 낸 세력들, 내 생각과 다르면 적이 되는 고정관념, 편견, 선입견, 아집, 흑백논리, 표리부동, 편견 등... 더불어 남북이 ‘우리는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오징어·낙지’의 말부터 통일하는 등 지난 70년의 단절됐던 문화와 예술의 교류도 중요하다. 서로를 존중하며 신뢰로 뚜벅뚜벅 접근할 때 ‘우리의 소원’인 통일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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