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섯 가지 실패가 겹친 자유한국당, 반성과 성찰부터
| 바른미래당의 참패 원인은 정체성 없는 제3정당 실험
| 민주평화당, 정치판 유랑 끝내지 않으면 당 해체될 판
| 민심이 요구한 것은 견제와 균형을 위한 진정한 야성


이번 지방선거처럼 예상과 한 치 오차 없이 딱 맞아떨어지는 선거는 난생 처음이다. 비단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친여 성향의 정의당을 제외한 야권의 패배는 오래전에 예상된 바다.

출구조사를 지켜보며 환호하는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자료:KBS 화면 갈무리)
출구조사를 지켜보며 환호하는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자료:KBS 화면 갈무리)

야권 발 정계 개편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이 당 저 당의 이합집산과 합종연횡 와중에 퇴장해야 할 정치인들이 있다.

자유한국당 참패의 원인

먼저 자유한국당에 참담한 패배를 안긴 제1원인은 누가 뭐래도 ‘사과 부재’에 있다. 불과 1년여 전, 1,700만 명의 유권자들은 촛불혁명으로 대통령을 갈아치웠다.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이 수인(囚人)이 되는 동안, 오만한 한국당은 국정농단에 대해 사과하는 대신 섣부른 현 정권 심판론을 들고 나섰다. 유권자들은 이번 선거를 통해 ‘잘못을 잘못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한국당을 철저히 심판했다.

제2원인은 ‘혁신 실패’다. 대선에 패배한 인물이 당 대표가 된 것도 그렇지만, 홍준표 대표 체제가 들어선 후 체질을 개선한답시고 혁신위원회를 설치했지만, 류석춘 혁신위원장은 제대로 된 혁신 대신 면죄부를 주기에 바빴다. 혁신 없는 당은 곧바로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제3원인은 홍준표 대표에게서 찾을 수 있다. 누구나 아는 바대로, 그의 ‘천박한 막말’과 ‘품격 없는 언행’이다. 이는 자신만 모를 뿐, 더 이상 언급해 봐야 입만 아프다.

제4원인으로는 ‘선거전략 실패’를 들 수 있다. 올해 초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로부터 출발한 한반도 평화 분위기에 대한 한국당의 대처는 한심함을 넘어 국민들의 분통을 터뜨리기에 충분했다. 사사건건 철지난 ‘안보 불안증’만 건드리며 평화 분위기에 발목을 잡는 모습을 연출하면서 콘크리트 지지층마저 돌아서게 만들었다.

당 중진들조차 참석하지 않은 출구조사 결과 발표 자리(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홍준표 대표, 김성태 원내대표가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다.)(자료:MBC 화면 갈무리)
당 중진들조차 참석하지 않은 출구조사 결과 발표 자리(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홍준표 대표, 김성태 원내대표가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다.)(자료:MBC 화면 갈무리)

이 네 가지 원인을 모두 합칠 수 있는 가장 큰 원인은 따로 있다. 바로 당내 결속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 역시 홍 대표 체제가 들어선 직후부터 계속되어 온 문제다. 당 중진들과 홍 대표는 입에 담기도 버거운 막말을 교환해가며 서로를 물어뜯었다. ‘바퀴벌레’, ‘연탄가스’, ‘개’ 같은 단어들이 그런 것들이다. 출구조사 결과 발표 자리에 당 중진들이 오지 않은 사진만 봐도, 그동안 당 중진들이 이번 선거를 어떻게 바라봤는지 알 수 있다. 일찌감치 포기했다는 말이다.

사라질 정치인 제1순위는 홍준표 대표다. 그는 이미 자신의 페이스북에 영어로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고 썼다. 선거 참패가 기정사실화되자, 한국당의 전・현직 당협위원장들이 모인 ‘한국당재건비상행동’은 ‘홍준표 일당 아웃!’이라는 피켓을 들고 홍준표 체제의 즉각적이고 완전한 해체를 요구했다. 홍 대표의 아웃은 불가피하다.

한국당재건비상행동이 말한 '홍준표 일당' 중에는 김성태 원내대표도 포함되어 있다. 김 원내대표 역시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진의가 무엇이건 홍 대표의 당 운영에 동조했기 때문이다.

사태는 지도부 총 사퇴와 조기 전당대회가 불가피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저 잘못했다고, 한번만 더 봐달라고, 무릎 꿇고 절해봐야 소용없다. 한국당이 다시 살아나려면 “뼈를 깎는 반성과 성찰”이 있어야 한다. 민주당의 독주를 막니 어쩌니 하는 것도 그 다음 일이다. 국민들이 민주당의 독주를 선택했기에 하는 말이다.

만약, 다시 또 ‘헌 술’을 ‘새 술’이라고 우기며 그 나물에 그 밥인 지도부가 들어앉는다면, 국민들의 외면은 더 깊어질 것이고, 그 여파는 2년 후 총선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바른미래당 패배의 원인

바른미래당이 참패한 첫 번째 원인은 ‘제3정당 실험 실패’다. 새누리당에서 떨어져 나온 ‘샤이 보수파’ 의원들과 국민의당이 합당을 외칠 때부터 바른미래당의 참패는 이미 예견되었다.

출구조사 결과에 침통한 표정을 짓는 바른미래당 지도부(왼쪽부터 박주선 공동대표, 손학규 선대위장, 유승민 공동대표, 주승용 의원)(자료:KBS 화면 갈무리)
출구조사 결과에 침통한 표정을 짓는 바른미래당 지도부(왼쪽부터 박주선 공동대표, 손학규 선대위장, 유승민 공동대표, 주승용 의원)(자료:KBS 화면 갈무리)

유승민계와 안철수계는 출범 100일도 지나지 않아 물과 기름처럼 따로 놀았고, 그 치졸한 싸움을 선거판에까지 끌어들였다. 급기야 선거전 막판에 한국당과의 ‘당대당 통합’ 이슈까지 터지면서 호남파 6인방마저 극렬히 저항하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영남과 호남을 아울러 보겠다던 유승민, 안철수, 두 정치인의 실험은 실패로 돌아갔다. 아니, 애초부터 제3정당 실험이 목적이 아니라, 단순한 ‘세 불리기’가 목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제3정당의 정체성은 이것”이라며 유권자들에게 내놓은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 지도부는 영남과 호남, 서울로 사분오열되어 유세전을 잡탕으로 만들어버렸다. 영남의 민심은 호남당이라며 멀리했고, 호남의 민심은 호남파 6인을 버렸다. 대선전까지 치렀던 안철수 후보는 한국당의 김문수 후보를 “해체될 당의 후보”라고 폄하했지만, 3등으로 내려앉았다. 안철수 후보야말로 해체될 당의 후보였다는 비아냥이다.

자유한국당은 '뼈를 깎는 반성과 성찰'이라도 하겠다지만, 바른미래당은 반성할 것도 성찰할 것도 없다. 국정농단에 대해 유승민 공동대표를 비롯한 샤이 보수파 의원들은 탈당으로 최소한의 미안함을 표시했고, 국민의당 출신 의원들은 '나름 최선을 다했다' 여기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핵심은 당의 정체성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반성과 성찰 이전에 합당 이후로 미뤄뒀던 당 정체성부터 다시 세울 일이다. 허나 그것도 여의치 않다. 당의 정체성을 세우는 과정에 물(바른정당 출신)과 기름(국민의당 출신)의 화학적 결합은 난망하고, 거기에 더해 기름조차 휘발유(안철수계)와 벙커C유(호남계)로 갈라지게 생겨서다.

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사라져 갈 정치인 첫 순위로는 ‘원 포인트 릴리프’로 등판한 손학규 선대위장이 꼽힌다. 그는 선거 후 중도보수의 확실한 기치를 들어올리기 위해 선대위장직을 수락했지만, 당의 정체성을 세우는 과정에 당 자체가 사라져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입장 발표 후 여의도 당사를 떠나는 바른미래당 안철수 서울시장 후보(자료:연합뉴스)
입장 발표 후 여의도 당사를 떠나는 바른미래당 안철수 서울시장 후보(자료:연합뉴스)

두 번째로 사라질 정치인은 안철수 후보다. 이유는 그가 국민의당 시절부터 ‘제3정당’과 ‘중도개혁’의 전도사를 자임해 왔고, 이제 그 실험이 실패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제3정당 실험 자체가 실패한 것이 아니라, ‘안철수의 실험’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가 완전히 사라질지, 아니면 성찰의 시간을 가진 후에 다시 나올지는 자신이 결정할 문제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패배 후 잠시 외유를 떠났다가 곧 복귀하기를 반복했다는 사실을 국민들이 알고 있다는 점이다.

유승민, 박주선 공동대표와 김동철 원내대표 역시 책임을 져야 한다. 유승민 공동대표는 사퇴 의사를 내비친 상태다. 그러나 책임지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자칫 당이 와해될 수 있고, 바른정당 출신 의원들의 자유한국당 유턴이나 국민의당 출신 호남파 의원들의 민주당 유턴이 현실이 될 가능성이 있어서다. 당 출범 이후로 덮어뒀던 물과 기름의 화학적 결합은 이래저래 어려워 보인다.

민주평화당의 애처로운 패배

민주평화당의 패배는 애처롭기까지 하다. 국회의원을 14명이나 보유하고 있음에도, 이렇게 철저하게 무너질 수 있다니 말이다.

이번 선거에서 지도부는 ‘견제론’을 들고 나섰다. 하지만 견제론이 먹히기에는 민주평화당 구성원들이 그간 보인 행보가 받쳐주질 않았다. 그들이 어떤 경로를 밟아왔던가. 안철수 전 대표를 따라 민주당에서 떨어져 나왔고, 안철수 전 대표가 싫어 국민의당에서도 떨어져 나오지 않았던가.

당 소속 박지원 의원이 바른미래당 내 호남파 의원 6인방을 향해 “한두 번 속으면 속인 사람이 나쁘지만, 세 번 속으면 속는 사람 탓”이라며 민주평화당으로 돌아오기를 종용하고 있지만, 정작 그의 말은 민주평화당 의원들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이번 선거에서 전남・광주・전북의 표심이 정치판 유랑으로 바빴던 민주평화당을 향해 “당신들부터 민주당으로”라고 말하지 않는가.

굳은 표정으로 출구조사를 지켜보는 민주평화당 지도부(자료:MBN 화면 갈무리)
굳은 표정으로 출구조사를 지켜보는 민주평화당 지도부(자료:MBN 화면 갈무리)

14인의 의원들 모두의 정치적 지지 기반이 전남과 광주, 전북이다. 그리고 이 세 지역의 표심은 민주평화당을 버렸다. 아니, 버린 정도가 아니라 내팽개쳐 버렸다. 어떻게 할 텐가? 당은 유지한 채 각자도생할 텐가? 아니면 살기 위해 대통령과 민주당을 물고 늘어질 텐가?

조배숙 대표, 장병완 원내대표, 이용주 원내대변인 등 지도부는 책임을 지고 총사퇴하는 것이 순서다. 하지만 역시 사퇴가 문제가 아니라, 향후 휘말릴 야권 발 정계 개편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부터 고민해야 한다. 민주당으로의 유턴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소속 의원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민심은 세를 의식한 야합 아닌 진정한 야당 원해

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선거 결과에 대해 “이번 선거는 민주당이 아닌 국민의 승리”라고 했다. “겸허하게 국민을 위해 일하겠다”고도 했다. 진심일 것이다. 그러나 여태까지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당의 대표가 했던 말과 똑같다. 이 말을 하는 이유는 깎아내리려는 의도가 아니다. 스스로 경계해야 한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다.

민주주의는 ‘견제’와 ‘균형’을 먹고 자란다. 견제와 균형을 가장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이론이 있다. 헤겔의 ‘정반합’이다. 역사는 ‘정’과 ‘반’이 만나 보다 나은 ‘합’을 이루고, 그 ‘합’이 ‘정’이 되어 다시 ‘반’과 만남으로써 발전한다.

민주주의 역시 마찬가지다. 발전은 반드시 ‘정’과 ‘반’, 두 진영을 필요로 한다. 여당을 ‘정’으로 설정한다면, ‘반’은 야권 전체다. 이번 선거에서도 ‘반’은 있었다. 그러나 민심은 ‘반’을 ‘반’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이유는 명확하다. ‘정’과 ‘반’이 만나봐야 퇴보할 것이라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부분에 국민의 명령이 들어 있다.

참패한 야권은 이제 더 이상 세를 불리기 위한 합종연횡이나 이합집산에 매달려서는 안 된다. 민심이 ‘헌 술’이라고 결정 내린 인물을 ‘새 술’로 포장해서도 안 된다. ‘뼈를 깎는 반성과 성찰’을 주워섬기기 전에, 뼈를 둘러싼 살갗부터 찢어낼 각오를 하지 않고는 돌아선 민심을 되돌릴 수 없을 것이다.

이번 선거는 ‘입술 정치’, ‘세력 정치’가 종말을 고했음을 알리는 서막이다. 대구와 경북 등 일부 지역을 빼면, 지역에 기대는 정치, 시쳇말로 "우리가 남이가"로 대변되는 지역주의에 기대는 정치도 끝나가고 있다.

야권은 비대해진 여당의 권력을 어떻게 견제할 것인가를 고민하기 전에, 자신이 진정 민주주의의 발전을 도모할 자격을 갖춘 ‘반’인가를 되돌아 봐야 한다. 진정한 야성, 민주당과의 수준 높은 싸움을 통해 ‘견제’와 ‘균형’의 민주주의를 발전적으로 이뤄낼 야성을 가졌는지를 돌이켜 봐야 한다.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다. 그라운드 제로부터 다시 서야 한다. 야권이 이번 기회마저 놓친다면, 우리 국민은 민주당의 전횡에 한동안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한쪽 날개로는 날 수 없고,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정’과 ‘반’이 만나지 않은 상태에서 ‘정’과 ‘정’만으로는 ‘합’에 이를 수 없기 때문이다.
김태현bizlin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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