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이 막을 내리면서 한반도에 평화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미·중·일·러 주변 열강의 정세는 각자의 셈법 속에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4강의 외교 행보는 그야말로 숨 가쁘다. 초초함을 드러내며 거듭 북한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아베와 9월 동방경제포럼 기간에 김정은을 러시아에 초청한 푸틴, 19일 북한의 세번째 방중을 성사시킨 시진핑, 회담 성공으로 취임 이후 최고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핫 라인'까지 가동한 트럼프까지 외교 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한 북한을 둘러싼 물밑경쟁은 전례 없이 치열하다. 

◆ 美언론의 연일 혹평에도 트럼프 지지율 취임 후 최고치 회복 

트럼프 미 대통령은 북미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핵 위협은 사라졌다며 세기의 담판을 홍보하기 바쁘지만 중서부의 일부 보수 신문을 제외한 미국 주요 언론은 평가는 냉혹하기 그지없다. 트럼프, 북한에 대한 열정 분출(뉴욕 타임즈), 정상회담은 김정은의 승리(워싱턴 포스트), 트럼프의 기이한 야망 불완전 연소로 막 내려(LA타임즈) 북미 정상회담 결과를 두고 미국 언론들이 쏟아낸 독설에 가까운 타이틀이다.

미국 매체들이 혹평을 쏟아내는 주요 요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그간 이단시되어 온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은이 전세계 언론에 대대적으로 노출돼 극적인 국가 이미지 상승효과를 거두었다.
둘째 공동합의문의 모호성, 즉 미국이 회담 직전까지 공언해온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에서 물러나 북한 비핵화 실천의 구체적 로드맵을 담보해내지 못했다.
셋째 김 위원장이 한반도의 비핵화를 위한 강력하고 확고한 결의를 재확인한 대가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체제 안전보장과 한미합동군사훈련 중지, 나아가 주한미군·철수·감축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이에 반해 미국이 얻어낸 성과는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약속과 미군 유골 발굴 및 송환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받아내는데 그쳤다. 표면적인 공동합의문 내용만으론 트럼프의 퍼주기 혹은 승자는 북한이라는 불평도 나름의 설득력을 갖는다. 하지만 미 주류 언론들의 논조처럼 과연 북한에만 유리한 결과일까?

상황을 객관적으로 봤을 때 북한은 유일한 카드인 핵을 담보로 억류 미국인 석방과 핵 실험장 폭파와 같은 일관성 있고 성의 있는 행동을 지속적으로 취해 왔다. 전문가들은 전부를 걸고 국제무대에 데뷔한 북한이 이미 가동된 비핵화 프로세스를 중단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이 CVID라는 북한의 항복을 무리하게 요구했다면 판 자체가 깨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사실 트럼프 입장에서 전직 대통령들이 해내지 못한 북한과의 세기에 담판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남는 장사다. 언론과 정치권의 거센 비난에도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은 45%로 취임 후 최고치를 기록했고 미국인들 역시 북미회담 결과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18일(현지시간) 갤럽이 지난주 성인 남녀 1천500명을 상대로 한 주간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응답이 45%를 기록했다. 공식 취임 직후 첫 주에 집계된 최고 지지율을 회복했으며 갤럽은 지지율 상승은 최근 북미정상회담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국정운영 지지율 45%로 취임 직후 최고치 회복(사진=GALLUP)
트럼프 미 대통령이 국정운영 지지율 45%로 취임 직후 최고치 회복했다(사진=GALLUP)

또 미 몬마우스대학이 북미 정상회담이 종료된 이후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는 미국인의 71%가 북미 회담이 좋은 아이디어였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절반 이상(51%)은 이번 회담이 북핵 위협을 줄이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답했다.

트럼프는 이제 누가 뭐래도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의 키맨이다. 하지만 북미 관계의 빠른 변화 속에 대북 매파 세력은 아직도 건재하며 트럼프와 날을 세우는 주류 언론, 공화당 내부의 불만 등은 계속될 것이다. 트럼프가 이런 힘겨운 싸움을 이겨내고 대북 정책을 지렛대 삼아 미 의회 중간선거와 재선에 성공할 수 있을지 초미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 일본과 러시아도 바쁘다

북미 정상회담 이후 일본과 러시아도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만남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우선 한반도 위기 상황으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진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로 대북압박 노선을 강조해온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태세를 전환해 북한과 다각적인 접촉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일본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 비용을 부담하는 방안 등 비핵화 비용에 대한 지원을 통해 비핵화 국면의 일본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그간 일본에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낸 북한이지만 현재의 경제상황을 감안할 때 상당한 규모가 될 수 있는 지원에 관심을 표할 수 있다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최근 아베 총리는 "핵 위협이 사라지면 평화 혜택을 받는 일본 등이 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강조하며  "최종적으로 나와 김 위원장이 정상회담을 해야 한다"고 언급하는 등 북일 정상회담에 올인하는 모양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발 빠르게 김 위원장의 방러 초청 의사를 밝히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14일 러시아월드컵 개막식 참석차 러시아를 방문한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만나 9월 극동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동방경제포럼 기간에 김정은 위원장을 거듭 초청했다. 앞서 지난달 31일 방북한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을 통해 초청 의사를 밝힌 뒤 이를 재차 확인하고 나선 것이다. 

◆ 또다른 승자 중국....김정은 세번째 방중

니혼게이자이 신문과 관영 중국중앙TV 등 외신에 따르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19일 방중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협의할 전망이다. 일각에선 김 위원장이 시 주석에게 북미회담 결과를 전하고 비핵화 협상과정의 대북제재 완화 등과 관련된 지원을 요청하기 위한 방중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북미정상회담 직전에도 중국은 두 차례나 김 위원장을 초청해 긴밀한 북중 관계를 통해 한반도 정세 변화 속에서 주도권을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해 왔으며 연내 시 주석의 방북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미국 언론들은 북미정상회담의 예기치 않은 승자 중국(뉴요커지),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의 위너는 중국인가(CBS), 정상회담 최대 승자는 중국(워싱턴 포스트) 등의 기사를 쏟아내며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을 얻어낸 중국이 또다른 승자라고 평하기도 했다.

중국은 지금까지 6자회담 등의 통해 한반도 긴장완화의 일환으로 북한 핵개발 및 핵실험 동결, 나아가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요구해왔다. 북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 스스로가 중지를 표명하면서 중국은 '의외의 선물'을 받게 된 셈이다. 여기에 주한미군 철수까지 시사하는 발언이 나오는 등 회담 결과가 향후 한반도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견지하는 데 호재로 작용할 것임은 자명하다. 

이런 와중에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이 재점화되면서 중·러 간 밀착 구도도 가속화되고 있다. 이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논의가 한·북·미 3자 구도로 진행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한 영향력 강화 차원의 성격이 짙다.

시 주석은 이달 8일 국빈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한 푸틴 대통령에게 '우의훈장'을 수여하는 등 극진한 환대와 함께 두 정상의 친분을 한껏 과시했다. 내달에도 푸틴 대통령의 방중이 예정돼 있고 러시아 초청에 따른 북러 정상회담도 구체적 조율만 남은 상태다. 앞으로 북 끌어안기를 통한 진영 논리가 한층 강화된다면 중·러와 미국 간 갈등이 고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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