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로 출발해 평창올림픽과 두 차례에 걸친 남북회담, 북미회담으로 이어진 한반도 평화를 향한 대장정이 거친 풍랑 속에서도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스트레이트뉴스는 70여 년 간 허리 잘린 DMZ(비무장지대)를 머리에 이고 살아온 최북단 접경지를 탐방, 남북 공동 번영과 평화를 염원하는 현지 목소리를 전하는 르포르타주를 기획했다. 철도 상행선이 멈춘 제진역(강원 고성 현내면)과 백마고지역(강원 철원 대마리), 도라산역(파주 장단면) 등 세 곳과 인근지역, 2010년 11월에 포격을 당한 연평도(인천 옹진 연평면) 등지를 둘러봤다. 이번 르포는 6회에 걸쳐 연재될 예정이다. <편집자 주>

[목차]
① 동해: 금강산 관문에 부는 변화의 바람
② 동해: 제진항, 남북경협의 전진기지 될까?
③ 동해: 김일성의 고려연방제와 2018년의 한반도 정세
④ 내륙: 철원의 백마는 달리고 싶다
⑤ 내륙: 한탄강과 임진강의 합수머리
⑥ 서해: ‘눈물의 섬’ 연평도에 부는 평화의 바람

"이번에 바꿨지요.”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임진각 평화누리의 공원 언덕에서 손자와 평화로이 연날리기 하는 김수혁(67)씨는 북한 비핵화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선거 얘기로 말문을 돌렸다.

“나는 지금까지 보수만 찍어왔습니다. 김영삼 때, 신한국당 때, 그때부터 한나라, 새누리... 근데 이번에 홍준표당 하는 거 보면서 실망을 많이 했지요. 이래도 쇼라 그러고, 저래도 쇼라 그러고…." 

임진각 가는 길(자유로) ⓒ스트레이트뉴스
임진각 가는 길(자유로) ⓒ스트레이트뉴스

이어 "자유한국당이 하는 꼴을 보면 평화를 지켜야 하는 보수당이 평화를 싫어한다는 것으로 드러났잖아요. 그럼 안 되지. 우리 통일 싫어하는 일본과 다를 게 뭐요? 안 그렇나..."

남북고위급회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재방북,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간의 통화 등이 추진되는 가운데, 파주 장단면에 위치한 임진각과 도라산역, 그리고 한탄강-임진강 합수머리를 다녀왔다.

전쟁없는 평화와 함께 행복한 번영을 바라는 민심은 남북을 가르는 임진강을 이미 건너고 있었다.국도 1호선과 경의선 연결이 남북 정부의 당면 현안인 이유다.

임진각: 북한을 주적 아닌 협력 파트너로 대할 때

자유로가 끝나는 지점에 위치한 임진각은 평일임에도 관광객들로 북적여 부쩍 다가선 한반도 평화 분위기를 실감케 했다.

주차 공간이 나기를 기다리는 차량 행렬 ⓒ스트레이트뉴스
주차 공간이 나기를 기다리는 차량 행렬 ⓒ스트레이트뉴스

임진각 공원에서 김씨에게 한반도 정세에 대해 재차 질문했다. 수십 년 보수 지지자답게 자유한국당의 대북관과 한반도 정세를 연결 지었다.

“북한이 핵을 만든 이유가 뭡니까? 대북제재 해제잖아요. 핵폭탄을 만든 순간부터 전략이 바뀐 거란 말이지. 근데 홍준표당은 옛날에 북한이 이랬으니까 앞으로도 이럴 거야, 이런 생각을 버리지 않았단 말이지요. 김정은이가 생각보다 똑똑해요. 아예 작정을 하고 세상에 나왔고, 이젠 돌이킬 수가 없어요. 지 아버지는 세상으로 안 나왔잖아. 지금 김정은이 또 거짓말 해봐, 그럼 다시는 기회가 없단 말이야.”

곁에서 대화를 듣던 중년 남성이 거들었다.

“한국당이 전략을 잘못 세운 것도 있지만, 요즘 돌아가는 거 보면 보수는 그동안 남북고위급회담 같은 걸 해도 ‘안 될 거야. 니놈들이 어떻게 나오는지 보자.’ 하는 딱딱하게 굳은 생각을 갖고 북한과 접촉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는 될 일도 안 되는데... 이명박 때 연평도 포격도 북한 자극해서 그랬다는 얘기도 있고, 박근혜 때 개성공단 하루아침에 말아먹은 것도 그렇고, 저 분 말씀대로 한국당은 통일이 싫은 게 맞다니까요.”

임진각 전망대 ⓒ스트레이트뉴스
임진각 전망대 ⓒ스트레이트뉴스

전망대에 올라서자 민통선(민간인 출입 통제선) 경계인 임진강과 한국전쟁 당시 파괴된 임진강 철교, 그리고 도라산역으로 향하는 새 철교가 보였다.

지난 4월 27일, 남북 정상은 판문점 남측 평화의집에서 회담을 갖고 “남과 북은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공동번영을 이룩하기 위해 10・4선언에서 합의된 사업들을 적극 추진해 나가며, 1차적으로 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와 도로들을 연결하고 현대화해 활용하기 위한 실천적 대책들을 취해 나가기로 했다”는 내용의 판문점공동선언을 발표했다.

현재 남쪽에서 북쪽으로 향하는 철길은, 강원도 고성군 제진역에서 멈춘 동해선, 강원도 철원읍 백마고지역에서 멈춘 경원선, 파주 장단면 도라산역에서 멈춘 경의선, 이렇게 모두 세 군데다.

그중 경의선은 서울(용산)과 신의주를 잇는 총연장 518.5km의 복선철로다. 1905년 개통된 이래 정전협정이 체결된 1953년까지 열차가 다니다가 끊겼다. 이후 2000년 6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경의선 복원사업이 논의되어 2002년 봄 도라산역이 건설되면서 도라산역-임진강역 4km 구간이 연결되었고, 2003년 6월에 군사분계선(MDL)에서 북측 평북선과의 철도 연결식이 거행된 바 있다.

경의선뿐 아니라 동해선도 2004년에 제진항-금강산 연결공사가 끝나 화물열차가 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금강산관광객 박왕자씨 피살사건으로 남북관계가 틀어지면서 10년째 왕래가 중단된 상태다.

한국전쟁 당시 완전히 파괴된 임진강 철교와 도라산역으로 향하는 새 철교 ⓒ스트레이트뉴스
한국전쟁 당시 완전히 파괴된 임진강 철교와 도라산역으로 향하는 새 철교 ⓒ스트레이트뉴스
교각만 남은 임진강 철교 ⓒ스트레이트뉴스
교각만 남은 임진강 철교 ⓒ스트레이트뉴스

“TV 보니까 장사정포도 뒤로 물리고 사무소도 설치하고 그런다면서요? 하나씩 그렇게 하다가 보면 잘 되겠지요. 내가 생각하기에는 개성공단부터 다시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도 사업이라고 조그맣게 하지만, 그 사람들이 무슨 죄요? 싸움 그만들 좀 하고 이제 서로 먹고 살 궁리를 해야지.”

정권이 바뀜에 따라 북한은 우리 국방백서에 ‘주적’으로 명기되었다가 삭제되기를 반복했다. 인터뷰에 응한 두 사람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북한을 적으로 보는 한 남북 간의 대화는 언제든 다시 뒤틀릴 수 있기 때문에 이제는 협력 파트너로 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도라산역: 남쪽의 마지막 역 또는 북으로 가는 첫 역

도라산역으로 향하는 길, 문재인 대통령과 성김 대북특사 일행이 오간 4차선 대로는 폐쇄되어 있었고, 우측에 위치한 구도로 입구가 열려 있었다.

판문점 및 도라산역 민통선(민간인 출입 통제선) 검문소 ⓒ스트레이트뉴스
판문점 및 도라산역 민통선(민간인 출입 통제선) 검문소 ⓒ스트레이트뉴스

검문소와 통일대교를 지난 후 얼마 가지 않아 마주잡은 손을 형상화했다는 도라산역이 보였다.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전망대와 북으로 향하는 철길을 구경하고 있었다. 모두 용산역에서 출발해 임진강역에서 신원확인 절차를 거친 다음 철교를 넘어온 ‘경의선DMZ트레인’ 탑승객들이었다.

“부산서 열차 타고 유럽까지 갈수만 있으모(있으면) 끝내주지요. 컨테이너가 비행기는 비싸서 생각도 못하고, 배는 오래 걸리고, 철도에 따악 실어서 가뿌모(가버리면) 얼마나 좋노, 안 그렇능교(그렇습니까)? 김정은이 하고 문재인이도 잘하고 있고, 트럼프까지 저래 나서는 거 보니까, 인자는(이제는) 마 돼야 안 되겠능교.”

부산 사상공단에서 중소 수출업체를 경영한다는 정성기(48)씨는 경의선 연결이 남북 모두에 희망이 아니라 필수라고 했다. 주로 부산항 제5부두(구 BCTOC)나 광양항에서 독일 함부르크항으로 제품을 보내는데, 컨테이너선이 최소 한 달, 최대 35일가량 소요되는 반면, 화물열차는 운송기간과 가격이 절반이면 되기 때문에 그만큼 가격경쟁력이 높아진다는 설명이었다.

도라산 전망대에서 바라보이는 개성공단 ⓒ스트레이트뉴스
도라산 전망대에서 바라보이는 개성공단 ⓒ스트레이트뉴스

저 멀리 가동이 중단된 개성공단이 손에 잡힐 듯 보였다. ‘(도라산역은) 남쪽의 마지막 역이 아니라 북쪽으로 가는 첫 번째 역입니다’라는 문구처럼, 경의선이 개성공단을 뚫고 신의주까지 연결될까? 또 수출업자 정성기씨의 바람대로 중국과 러시아를 관통해 유럽까지 내달릴 수 있을까? 된다면 그때가 언제쯤일까?

북한 비핵화 문제가 핵폭탄급 이슈로 부상한 이후,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줄곧 ‘일괄타결’을 주장해왔다. 그 과정에 북미정상회담이 좌초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하지만 남북의 정상이 다시 만나 평화의 물길을 텄고, 북미 간 이견이 좁혀졌다.

북한 비핵화가 완료되기까지는 북한의 NPT(핵확산금지조약) 재가입 및 사찰 수용, 미국의 체제 보장, 종전 및 평화 협정, 대북제재 해제 등 수많은 난관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 모든 난관들이 무사히 해결된 후에야 북으로 향하는 ‘실크로드 익스프레스’의 출발역이 될 도라산역, 텅 빈 철로는 여전히 남쪽으로만 향해 있다.

연천: 한탄강과 임진강의 합수머리

도라산역에서 임진강변을 따라 내륙을 향해 한 시간 정도 달리다 보면 두 물길이 만나는 지점이 나온다. 함경남도 덕원군 마식령에서 발원해 황해도와 강원도, 경기도로 흘러내려온 임진강과 강원도 평강군 추가령에서 발원해 경기도로 흘러내려온 한탄강이 만나는 곳, 바로 도감포 합수머리다(경기도 연천군 전곡읍 양원리).

DMZ(비무장지대)가 3km 남짓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그곳 최북단에 김중만(62)씨가 살고 있다.

북한에서 발원한 임진강과 한탄강의 합수머리(한탄강 끝 구비) ⓒ스트레이트뉴스
북한에서 발원한 임진강과 한탄강의 합수머리(한탄강 끝 구비) ⓒ스트레이트뉴스

“제 아버님이 6・25 끝나고 여기 터를 잡았거든요. 저는 의정부 살다가 1976년에 왔는데, 정전협정 시작할 당시에는 여기가 이북이었는데, 협상할 때도 전투는 계속 했잖아요? 그때 미군이 탈환해서 남쪽이 된 곳이래요. 바로 옆에 군남면도 그랬고, 파주 적성면에서 양주 넘어가는 고개 있잖아요, 거기는 영국군이 주둔하고 있었는데 정전협정 때 몰살당하면서도 끝까지 지켜서 남쪽이 됐대요.”

한반도 평화 분위기에 대해 물었다.

“김정은이 포기하겠죠. 북미회담도 잘 됐잖습니까. 지금까지 돌아가는 거 보면 우리 남북이 잘 될 거 같은데... 핵 포기하고 경제로 안 돌아서면 자기가 죽을 거 같으니까요. 그렇지만 퍼주기는 하면 안 됩니다. 트럼프도 자기들은 쏙 빠지고 한국 하고 일본한테 돈 대라고 했잖아요.”

남쪽의 종착지 또는 북으로 향하는 출발지, 도라산역 ⓒ스트레이트뉴스
남쪽의 종착지 또는 북으로 향하는 출발지, 도라산역 ⓒ스트레이트뉴스

남북 평화 분위기가 이어진다 해도 통일비용이 들어간다면 반대한다는 얘기였다. 분단비용과 통일편익, 그리고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과 같은 국제금융기구의 투자 가능성 등을 언급하자, 그의 얼굴이 대번에 밝아졌다.

“아, 문재인이 그런 거 갖다가 쓰면 아주 잘하는 일입니다. 그럼 다행이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전 대표가 이번 지방선거의 화두 중 화두였는지, 김중만씨 역시 평화 분위기와 홍 전 대표의 안보관을 연결 지었다.

“홍준표 그 사람 정말 잘못했어. 잘한 거는 잘했다 그래야지, 싸잡아서 대책도 없이 욕만 해대는 바보가 어딨어요? 여기는 자유한국당에 김광철이가 또 군수가 됐지만, 다른 데는 박살났잖아요. 그 사람 탓에 여기도 조금씩 변하고 있어요.”

민심이 변하는 이유에 대해, 그는 군부대가 양주로 대거 이전해가면서 한때 11만 명을 넘어섰던 연천군 인구가 4만5천 명 수준으로 줄어들었는데, 특히 하사관 수가 많이 줄어들어서 그럴 것이라 짐작했다.

선친 때부터 합수머리 최끝집에 터를 잡고 살아온 김중만씨(전쟁 당시 군인들이 많이 죽었다는 집터를 가리키고 있다) ⓒ스트레이트뉴스
선친 때부터 합수머리 최끝집에 터를 잡고 살아온 김중만씨(전쟁 당시 군인들이 많이 죽었다는 집터를 가리키고 있다) ⓒ스트레이트뉴스

내친 김에 땅값도 물어봤다.

“민통선 안쪽은 5만 원, 밖은 10만 원, 거기서 조금 더 나오면 30만 원, 37번 국도변은 70만 원, 딱 나와 있어요. 여기는 골짜기라서 땅값이 금방 뛰지도 않고요.”

사양하는데도 굳이 천마차를 내오고 마당에서 기른 부추와 개당 1,000원이나 한다는 청계란을 담아주는 김중만씨는, 젊을 때는 몰랐는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합수머리 끝집 생활이 외롭다고 털어놨다.

“기자님, 나중에 여기 와서 사세요. 엄청 싼 땅 내가 사 줄 게요. 통일 되면 또 알아요? 철조망 걷히면 합수머리가 휴양지로 대박이 날지. 북한사람들도 놀러 오고. 허허허...”

저녁 8시에 인적이 끊긴 연천군청앞 도로 ⓒ스트레이트뉴스
저녁 8시에 인적이 끊긴 연천군청앞 도로 ⓒ스트레이트뉴스

대박이 필요한 곳은 합수머리뿐만이 아니었다. 저녁 8시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인적이 끊겨버린 연천군청 앞과 서울을 출발한 ‘경원선DMZ트레인’이 정차하는 연천역 역시 한반도 평화 분위기가 가져올 대박을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다.

임진각에서 만났던 두 사람의 바람대로, 북한을 주적이 아닌 진정한 파트너로 대한다면 경의선과 경원선 중간에 위치한 연천군이 대박의 고장이 될까? 김중만씨의 합수머리 최끝집이 사람 북적이는 휴양지가 될까? 아직도 김중만씨 집터에 묻혀 있을지 모른다는 북한군 전사자들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시간이 걸리더라도 ‘순한 기대’과 인내를 동원해 남북 간에 첩첩이 쌓인 70년 불확실성을 하나하나 제거해 나가다 보면, 두 강물이 합수머리에서 만나 한 물줄기로 바다를 향하듯, 만나지 않을 수 없는 지점이 생겨나 한민족이 세계로 향할 것임은 분명하다. 김태현bizlink@hanmail.net

도시 규모에 비해 초라해 보이는 연천역 ⓒ스트레이트뉴스
도시 규모에 비해 초라해 보이는 연천역 ⓒ스트레이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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