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살아 있다.
별 의미는 없다.
수면 위로 얼굴을 내밀고
그래, 살아 있구나.
조금 더 살아볼까?
건방진 생각을 해본다.
아마 나는 죽기 직전까지도 겸손해지지 못할 것이다.

귀밑에서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린다.
찢어진 북을 두드리는 소리 같다.
세상에서 가장 큰 소음은 침묵이다.
고요, 뭇별의 아우성.
마당의 조팝나무가 까르르 웃는다.

뻔뻔함의 극에 이른 인간 세상과 견주면
알몸으로 간드러진 저 웃음은 극적으로 백치적이다.
오랜만에 일이 잡혔다.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뭐든 해야 되는 것이 삶이다.
그래, 뭐라도 하자.

머리를 감고, 수염을 밀고, 빨래를 하고
읍내에 나가 계란 한 판, 대파 한 단, 소주 두 병을 샀다.
계란은 냉장고에 들이고 대파는 뿌리를 땅에 묻어 갈무리했다.

해 질 녘까지 새들은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옮겨 다니며 참견을 멈추지 않는다.
놀지 말라고, 하다못해 연애질이라도 하라고.
그러고 보니 조팝꽃과 산수유,
저것들 하는 짓이 물오른 연애였다.

사월의 풀과 나무와 새와 벌레는 관념에 찌든 인간을 문득 깨우친다.
그렇다, 연애는 몸으로 하는 거다.
심장이 쿵쿵 뛰고 있을 때 말이다.

산수유
산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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