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남아있는 아픈 흔적을 지우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성장과정에서 철없는 행동이나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나 이미지가 인터넷에 나돌면서 이들 흔적을 지우는 디지털장의사도 성업 중이다. 

‘잊혀질 권리’는 개인과 관련한 인터넷 상 정보의 삭제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이 용어는 빅토르 마이어 쇤베르거의 저서 '잊혀질 권리'가 나오면서 디지털시대 소비자 주권과 인권존중의 핵심으로 급부상했다. 그는 '역사가 있은 이래로 인류에겐 망각이 기본값이고 기억은 예외였지만 디지털 기술과 전 지구적 네트워크 때문에 이 구조가 역전됐다'라고 했다. 디지털 문명시대가 인류에게 망각을 예외적으로 만들었고  디지털의 무한 복제와 서버 증가로 특정 개인의 권리 침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사실에 쇤베르거가 주목한 것이다.

이 권리는 스페인 변호사 마리오 코스테하 곤잘레스(Mario Costeja Gonzalez)가 구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서 세상이 주목하게 됐다. 그는 구글을 검색하다가 지우고 싶은 과거 사실이 뜨는 것을 발견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과거에 압류 당한 부동산에 대한 기사였다. 곤잘레스는 검색 당시 형편이 나아졌고 빚도 없기 때문에 그 기사는 적절한 정보가 아니라고 판단, 스페인 정보보호원에 구글 스페인과 구글 본사를 상대로 개인정보의 삭제를 골자로 2010년 소송을 걸었다. 유럽사법재판소는 2014년 곤잘레스의 손을 들어주었다. 잊혀질 권리를 최초로 인정한 역사적 판결이었다. 

‘잊혀질 권리’는 개인과 관련한 인터넷 상 정보의 삭제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개인의 각종 정보가 인터넷에 남겨지면서 자신의 권리가 보호되지 못하는 디지털시대에서 인권 침해의 문제가 논란을 빚으면서 잊혀질 권리 보장 주장은 공감을 얻고 있다.
‘잊혀질 권리’는 개인과 관련한 인터넷 상 정보의 삭제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개인의 각종 정보가 인터넷에 남겨지면서 자신의 권리가 보호되지 못하는 디지털시대에서 인권 침해의 문제가 논란을 빚으면서 잊혀질 권리 보장 주장은 공감을 얻고 있다.

잊혀질 권리의 법적 본질은 헌법 제17조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에서 보장되는 프라이버시권과 관련이 있다. 프라이버시권이란 적극적인 의미로 자기에 관한 정보를 통제할 수 있는 개인의 권리다. 두 번째로는 사법상 인격권이다. 인격권이란 권리의 주체와 분리할 수 없는 인격적 이익을 내용으로 하는 권리를 말한다. 개인에 대한 정보 역시 역시 권리의 주체와 분리할 수 없는 것으로 이에 포함될 수 있다.

잊혀질 권리는 법제화에는 걸림돌이 적잖다. 이에 충돌하는 '알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잊혀질 권리 법제화에 찬성하는 측에서는 “개인이 원하지 않는 과거 기록을 삭제함으로써 개인 사생활을 존중할 수 있다”, “사생활 침해를 방지할 수 있다”, “개인의 인권이 무엇보다도 우선되기 때문에 허용되어야 한다" 등을 내세운다. 반면 반대측은 “잊혀질 권리는 사람들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한다”, “잊혀질 권리가 무제한적으로 가능해진다면 개인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도 악용될 우려가 있다”고 반박한다.

최근 세계 각국은 ‘잊혀질 권리’의 법제화에 발빠르게 나섰다.  유럽연합은 역사상 가장 엄격한 개인정보보호 규정으로 평가받는 '일반 개인정보보호법(GDPR)'을 입법화, 5월 25일부터 시행했다. 이 법은 유럽연합 회원국 사이에 개인정보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고 개인정보 보호 권리를 강화한 것이 특징이다. 때 맞춰 영국 정부 또한 새로운 개인 데이터 보호 법안에 대한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에서 영국 정부는 데이터 보호법을 새롭게 갱신하고 데이터 액세스, 이전, 삭제 권한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도 잊혀질 권리 보장을 위해 다각도 모색 중이다. 한국소비자연맹의 '잊혀질권리컨소시엄'도 대표적인 사례다. 앞서 방송통신위원회는 2016년 6월에  ‘인터넷 자기 게시물 접근 배제 요청권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회원탈퇴나 계정 정보 분실로 지울 수 없던 인터넷 상 게시물에 대해 타인의 접근 배제를 요청할 수 있는 기준으로 국내 처음으로 잊혀질 권리를 제도화한 시도다. 

개인이 원치 않는 게시글, 사진, 동영상 등의 인터넷 기록을 지우는 일을 수행하는 '디지털 장의사'라는 새로운 직업도 생겨났다. 우리나라에서 아직은 디지털 장의사를 전문적으로 양성하는 곳은 없지만, 한국고용정보원은 이 직업을 5년 내 부상할 새로운 직업으로 선정했다. 언론중재위원회 또한 잊혀질 권리를 위해 많은 노력을 쏟고 있다. 언론중재위원회는 디지털 시대의 효과적인 피해구제를 위해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개정안의 경우 피해 당사자가 언론사 보도에 대해 인터넷 상 정보에 대한 열람 차단을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블록체인 시대는 인류의 생물학적인 망각의 뇌를 공고하게 거부한다. 기억의 뇌를 무한적으로 강화, 쇤베르거의 말처럼 디지털 시대에 망각과 기억의 역전이 심화되는 형국이다. '나를 잊어주세요'의 외침이 제도화돼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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