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의 페미렌즈] 신은 여성 혐오자인가?
[편집자의 페미렌즈] 신은 여성 혐오자인가?
  • 정정은(출판기획자) (webmaster@straightnews.co.kr)
  • 승인 2018.07.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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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MeToo·나도 피해자다) 열풍에 페미니즘이 전국민적 이슈로 떠올랐다. 페미니즘을 둘러싼 논쟁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지만, 페미니즘의 정확한 의미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듯 싶다. 사전을 찾아보면 페미니즘은 '여성의 특질을 갖추고 있는 것'이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 '페미나(femina)'에서 파생한 말이다. 성 차별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시각 때문에 여성이 억압받는 현실에 저항하는 여성해방 이데올로기를 의미한다. 알들 모를듯 세계적인 이슈로 부상한 페미니즘은 과연 무엇일까. 스트레이트뉴스는 페미니즘 이해를 돕는 책을 연이어 추천한다.

혹자의 말처럼 ‘혁명은 아다지오(아주 느리고 침착하게)로 시작해 안단테, 비보를 거쳐 비바체(빠르고 경쾌하게)로 완성’되는 걸까. 미투(#MeToo) 운동의 급물살에 음습한 습지에 닥지닥지 붙은 이끼 같은 ‘독버섯들’이 떠내려가고, 바위처럼 견고했던 가부장적 사회구조가 부서지는 것을 보며, 혹여 지금이 역동적인 혁명 국면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앞서 2016년 말의 촛불시위가 권위주의적인 정권을 패퇴시킨 아다지오적인 미완의 시민혁명이었다면, 미투 운동은 인간 존엄성을 향한 보다 더 자각적이며, 보다 더 본질적인 투쟁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미투 운동은 비바체의 앙상블처럼 빠르고 경쾌하게 메아리쳐야 한다. 

여성을 성(性)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으로 보고자 하는 국제적 노력은 1995년 베이징에서 개최된 제4차 세계여성대회 이후 본격화했다. 젠더와 섹스는 우리말로 ‘성’이라는 같은 말로 표기되지만, 최근 페미니즘적 어법에선 젠더는 사회나 문화를 함축하는 사회학적 의미의 성을 뜻하고, 섹스는 생물학적인 의미의 성을 뜻한다.

유럽연합(EU)과 미국 등 다수 선진국에서 젠더는 남녀차별적인 섹스보다 대등한 남녀 간의 관계를 내포하며 인간으로서 모든 사회적인 동등함을 실현해야 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페미니스트들은 처음부터 인권의 기만적이며 추상적인 관념을 비난했다. 프랑스 대혁명, 미국혁명 등 굵직한 인류 혁명사의 결과물인 ‘인권과 시민권’이 인류의 절반을 배제하고서도 과연 그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일까.

1970년대부터 각국의 주요 단체들이 모든 여성의 이름으로 말할 권리의 요구를 주요 명분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미국에선 인종 문제가 이 운동을 심각하게 분열시켰다. 중산 계층의 백인 여성들이 낙태권을 주장한 반면, 하층 계층 흑인 여성들은 억지 불임을 규탄했고 무료 치료를 주장했다.

백인 여성들이 노동 시장에서의 성 차이를 없애라고 주장할 때 흑인 여성들은 직장에 나가는 백인 여성의 아이를 돌보는 대신 자신들의 아이들을 잘 키우기를 바랐다. 비난은 뿌리까지 번졌다. 퀴어 운동 같은 단체는 여성이라는 범주를 가부장제에서 나온 것이라 간주했다. 종의 문제까지 번진 것이다.

한동안 여성운동은 이렇게 수많은 하위 미세 분파로 분열됐다. 여성운동이 분열되면서, 싱글 맘, 이주여성, 그리고 그들의 딸들이 첫 번째 희생자가 됐다. 더욱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체제가 확고해지면서 각국 여성들의 삶이 더욱 각박해졌다. 일자리 찾기가 어려워지자 많은 여성들이 전업주부로 돌아가야 했고, 직장 내에서도 여성들의 지위와 역할은 크게 위축됐다.

그러나 여성들에게 계속해서 차별받고 배제되는 삶을 강요할 순 없는 일이었다. 지구촌 곳곳에서 여성들의 투쟁이 계속되면서 거대한 변화의 수레바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특히 2002년부터 전 세계적으로 여자들의 고등교육 진학률이 남자들보다 높아진 것도, 여성들의 사회참여를 높이는 요인이 됐다. 여성들은 자신의 삶을 기득권과 제도권에 위탁하길 거부하고 나섰다. 

인간 존엄성은 우리가 최우선시해야 할 지고지순한 가치다. 사실 오래전부터 인간 존엄성을 외친 여성들의 목소리는 메아리쳤지만, 늘 무시되고 왜곡됐을 뿐이다. 왜, 무엇을 위해, 어떤 연유로 여성들은 그렇게 배제됐을까.

권위주의 시대에는 그게 일상이었고, 민주주의 시대에는 더 큰 ‘대의’를 위해 희생을 그들의 ‘대의’라는 것은 가부장적 체제 내에서의 정권교체나, 보수vs. 진보 진영 간의 헤게모니 싸움, 또는 문화나 예술의 ‘흥행’ 같은 것이었다. 

「그곳에 가면 다른 페미니즘이 있다」 에마 골드만 외 지음(르몽드코리아 ·2018)
「그곳에 가면 다른 페미니즘이 있다」 에마 골드만 외 지음(르몽드코리아 ·2018)

어느 상품 광고에서는 “여성이 행복한 나라가 좋은 나라”라고 강조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여성을 돈 많이 쓰는 소비자로 간주하고, 그들을 유인하기 위한 얄팍한 상술일 뿐이었다. 냉혹하리만큼 존엄성 훼손을 당하는 여성들이 한낱 편안한 가전제품이나 현대식 럭셔리 아파트에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여성에 대한 근거 없는 큰 오산이다. 미투 운동의 가장 큰 대의는 바로 인간 존엄성임을 기억해야겠다.

이 책은 인간 존엄성의 대의 아래 지구촌 곳곳에서 여성들이 힘들게 투쟁하며 전진해온 기록들을 담고 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도 실린 이 글들은 국제사회에서의 여성 억압 현실과 여성들의 투쟁과 전진, 그리고 여성운동의 성취와 과제를 짚어본다. 

먼저 각 국가들에서 배제당한 여성들의 냉엄한 현실을 직시해본다. 현대 페미니즘 운동의 본산 격인 미국을 비롯해 독일, 일본, 이스라엘, 아랍 여성들의 암담한 현실을 짚어본다. 이어 ‘투쟁과 전진’에선 가부장적 압제의 고통 속에서 분연히 일어난 여성들의 쟁투를 살펴보면서,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프랑스, 아랍, 브라질, 쿠르드 여성들의 투쟁사를 이야기한다.

아울러 창업주가 모두 남성들로 이뤄진 가톨릭, 기독교, 이슬람교 등 각 종교에서 어떻게 여성이 배제되고, 종교계 내 여성해방운동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많지는 않지만 현실 속에서 페미니즘을 당당히 실천해가는 여성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튀니지, 칠레, 알제리, 멕시코 여성들의 당당한 ‘권리 찾기’는 이 책의 제목처럼 ‘그곳에 가면 다른 페미니즘을 알게 되는’ 탐독의 즐거움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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