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남의 문화비평] 프로듀스48, 한일교류 이끌어낼까
[이강남의 문화비평] 프로듀스48, 한일교류 이끌어낼까
  • 이강남(문화평론가) (webmaster@straightnews.co.kr)
  • 승인 2018.07.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에선 자유한국당이 보수 정치세력인 것으로 돼 있다. 그리고 ‘보수=친일파’라는 아슬아슬한 공식이 통용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소속으로 17대 대선에서 승리한 이명박 대통령은 정작 재임 중인 2012년 한일관계를 극도로 악화시켰다. 특히 일왕(천황)에게 “한국에 사과하고 싶다면 직접 오라”고 한 발언이 일본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여파는 박근혜 정권으로까지 이어졌다. 친일 정권(?)치고는 한일 정상회담을 하는 데 3년이나 걸렸다. 대통령 취임 후 통상 미국→일본→중국 순서로 이뤄지던 순방 순서도 미국→중국→일본으로 바꿔버렸다. 정치가 이렇게 돌아가는 동안 한국인과 일본인의 심정적 거리도 멀어졌다. 2011년 무렵까지 맹위를 떨치던 K팝의 열풍이 혐한의 그림자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그렇게 약 5년이 지난 지금 다시 한 번 흐름이 바뀌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간극이 다시 한 번 메워지는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그 방향은 정치도 외교도 아닌 ‘문화’ 분야다.

한일 여성 9인조 걸그룹인 트와이스의 네 번째 싱글 ‘웨이크 미 업(Wake Me Up)’은 해외 여성가수 최초로 50만 장이 팔렸다. @JYP
한일 여성 9인조 걸그룹인 트와이스의 네 번째 싱글 ‘웨이크 미 업(Wake Me Up)’은 해외 여성가수 최초로 50만 장이 팔렸다. @JYP

JYP엔터테인먼트 소속 9인조 걸그룹 트와이스는 국내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팀이다. 아홉 명 중에서 네 명은 외국인(미나, 사나, 모모, 쯔위)이고 그 중 셋은 일본인(미나, 사나, 모모)이다. 이들이 그룹 내에서도 인기 상위권을 차지하면서 한국인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흥미로운 건 일본에서도 트와이스가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내에서도 크게 히트한 노래 ‘TT’는 일본에서 가히 신드롬 급의 인기를 구가했다. 한국에서는 노래만 인기가 있었다면 일본에선 춤 동작이 SNS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멤버별 인기 순위는 일본에서도 일본인 멤버들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편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트와이스 자체가 K팝 그룹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기존의 J팝 가수와는 다른 포지션을 점유하고 있다. 트와이스가 지금까지 일본에서 내놓은 싱글 네 장은 전부 25만장 이상이 판매됐다. 특히 네 번째 싱글 ‘웨이크 미 업(Wake Me Up)’은 해외 여성가수 최초로 50만 장을 팔았다.

이미 트와이스는 일본 내에서 활동 중인 K팝 가수 중에서 인기가 많은 수준이 아니다. 일본 내에서 활동하는 가수 전체를 놓고 봐도 그들의 존재감은 최상위권이다. 그렇게 다국적 그룹 하나가 한국과 일본을 석권하는 동안, 새로운 거물급 신인이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성공이 예고된 ‘실험’

대중문화의 흥미로운 점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트와이스라는 그룹의 입지전적 성공은 지금까지 한국과 일본에서 각각 성공했던 기존의 모델을 재해석하며 결합시키는 시너지를 창출했다. 6월 15일부터 방송이 시작된 엠넷 ‘프로듀스48’이 바로 그 결과물이다.

‘프로듀스48’이라는 방송 프로그램부터가 한일 합작 그 자체다. 앞부분의 ‘프로듀스’는 엠넷의 효자 프로그램 ‘프로듀스101’을 의미한다. 2016년 걸그룹 버전, 2017년 보이그룹 버전의 방송을 진행했던 ‘프로듀스101’은 각각 아이오아이, 워너원이라는 거물급 그룹들을 배출하며 엠넷 역사상 최고의 프로그램으로 등극했다.

프로그램이 시작될 때만 해도 연습생이었던 이들을 ‘스타’로 성장시키는 과정은 시청자들을 매료시켰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이 모티브 자체는 일본에서 온 것이다. ‘프로듀스48’에서 48이라는 숫자가 상징하는 부분이 바로 그것이다.

Mnet의 프로듀서48
Mnet의 프로듀서48

이미 일본 최고의 걸그룹이 된 AKB48은 아키하바라의 한 극장에서 ‘만날 수 있는 아이돌’이라는 컨셉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발품만 팔면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아이돌을 전국구 스타로 성장시킬 수 있었던 데에는 프로듀서 아키모토 야스시의 절묘한 아이디어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총선거’ 개념이다.

팬들이 직접 투표를 해서 AKB48의 선발멤버들을 뽑는다는 발상은 일본 전체를 열광시켰다. AKB48뿐 아니라 SKE48, HKT48, 노기자카46 등은 ‘AKB사단’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그룹은 다르지만 총선거에서 이들은 함께 출마를 해서 팬들의 선택을 받는다. 한국의 엠넷은 이 투표 개념을 TV프로그램으로 연결시켜 전무후무한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프로듀스101’의 판권은 현재 중국으로 수출돼 다시 한 번 엄청난 신드롬을 만들었다.

1 + 1 > 2

‘프로듀스48’은 그야말로 한국과 일본의 두 성공사례를 그대로 결합시켰다. 기본적으로 ‘프로듀스101’의 진행 방식을 따라가되 참가자의 절반은 일본인으로 채웠다. 심지어 그 일본인 중에는 AKB사단의 인기 멤버들이 포함돼 있다.

‘프로듀스48’에 대한 일본인들의 관심이 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한국에서 이미 정점까지 올라간 소녀시대나 트와이스 멤버가 일본으로 가서 다시 오디션을 받는 셈인데, 여기에서 성적이 좋지 않으면 이건 그야말로 자존심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프로듀스101’의 거듭된 성공으로 시청자들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는 안준영PD는 이미 한일 대결이라는 폭발적인 소재를 프로그램에 적극 활용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일단 일본인 인기멤버 미야와키 사쿠라(일본 AKB사단 인기멤버)와 한국 연습생 장원영의 센터 대결 구도가 프로그램 초반부의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프로그램 특성상 누군가는 시청자들의 찬사를 받지만 누군가는 지탄을 받게 될 수 있다. 어떤 국면에서는 한국인 팬과 일본인 팬이 온라인에서 격돌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랑이건 갈등이건 그것이 넓게 보면 교류의 한 형태라는 점이다.

한국과 일본은 과거의 역사로 인해 갈등할 수밖에 없는 사이지만, 또 그런 한편 서로가 없이는 21세기를 살아가기 힘든 사이이기도 하다. 싸우는 것보다 더욱 무서운 것은 소통의 부재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오디션과 경쟁이라는 문화적 코드로 엮인 ‘프로듀스48’가 정부도 하지 못했던 한일 간의 벽 깨기를 해내길 기대해 본다.


주목도가 높은 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