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적인 사례를 들어 '文정부의 국가주의' 비판
정작 국가주의 강화한 정부는 한국당 전신 정부들
신자유주의와 계획경제 사이에 위치한 한국경제
당내서도 마뜩잖은 시선...김위원장 입지 불안


“(문재인 정부 들어) 국가주의적 경향이 곳곳에 들어가 있습니다. 학교 사정에 맞게 하면 됩니다. 이런 부분까지 국가가 들어갈 필요가 있습니까?”

지난달 18일,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이 국가주의의 사례로 오는 9월 시행을 앞둔 ‘어린이 식생활 안전관리특별법’을 들면서 한 발언입니다. 특별법의 요지는 초중고교 내 자판기에 커피 등 카페인이 다량 함유된 음료 판매를 금지하는 것입니다.

경남 김해 봉하마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찾아 방명록에 서명하는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2018.07.30)(자료:KBS뉴스 화면 갈무리)
경남 김해 봉하마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찾아 방명록에 서명하는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2018.07.30)(자료:KBS뉴스 화면 갈무리)

김 위원장의 국가주의 비판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30일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에서는 ‘원가 공개’ 문제를 제기하며 국가주의 비판을 이어갔습니다.

“(기업에) 원가를 공개하라고 하고, 프랜차이즈(가맹사업)에는 음식 값이라든가 이런 것까지 국가가 전부 원가를 공개하겠다고 하니까 (중략) 이것이 국가주의의 대표적인 한 예가 아닙니까? 어떻게 ‘먹방’에 대해서 규제를 하겠다는 건지, 또 가이드라인을 정하겠다고 하는지, 이런 것 자체가 국가주의적 문화입니다.”

김 위원장이 국가주의를 비판하고 나선 이유는?

김 위원장이 뜬금없이 국가주의를 들고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요? KBS의 한 라디오 프로그램과 했던 인터뷰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시장이나 공동체가 알아서 할 일입니다. 지금 조선시대 백성도 아니고 할 수 있는데 왜 국가가 먹는 데까지 간섭을 하고, 시장에 개입해서 원가를 전부 공개해야 하고, 이렇게까지 나옵니까? 국가는 국가가 할 일을 하면 됩니다. 시장에서 생기는 모순을 치료하고 소득 균형을 더 강화하고 안보도 챙기고 이런 일에 전념해야 합니다.”

‘어린이 식생활 안전관리특별법’이나 ‘원가 공개’, ‘먹방 규제’는 김 위원장이 든 사례일 뿐입니다. 그가 국가주의를 비판하고 나선 배경에는 ‘시장’이 있습니다. 시장은 잘 알다시피 고전적 자유주의자인 애덤 스미스가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한다고 했던 현장입니다.

결국 김 위원장이 국가주의를 비판하고 나선 데는 사회민주적 요소를 강화해가는 文정부에 대항해 시장의 기능을 신봉하는 신자유주의를 강조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풀이됩니다. 자유한국당의 비대위원장으로서 휘청대는 당을 추스르고 정부・여당과의 차별성을 부각시키는 데 ‘시장’만큼 확실한 사안도 없겠지요.

(자료:manwithoutqualities)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자료:manwithoutqualities)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그러나 정계 안팎에서 번지수가 틀렸다는 말들이 나왔습니다. 이른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너무 낮다는 지적들도 있었습니다. 김 위원장의 의중을 간파한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의원의 발언이 대표적입니다.

“완전 자유시장에 맡길 수도 없는 나라고, 어느 정도 국가의 역할이 있어야 하는데, (시장에 맡기면) 갈수록 국가의 역할이 작아지고 자본의 역할이 커집니다. 전체적인 흐름으로 본다면 문재인 정부가 국가주의적으로 더 강화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더 약화돼가고 있습니다.”

행정학자 출신인 김 위원장의 발언은 한국이 신자유주의 국가라는 전제로부터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맞을까요? 틀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을 추스르기 위한 전략으로도 한참이나 틀렸습니다. 왜 그런지 살펴보겠습니다.

신자유주의보다 공산・사회주의 계획경제에 더 가까웠던 한국경제

시장의 자유가 국가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 주장의 허구성을 파악하려면 신자유주의 프레임의 출발점으로 평가받는 모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그 모임은 애덤 스미스와 발터 오이켄을 잊지 못한 36인의 지식인이 모여 자유주의 혁신에 대해 논의했던 1947년 몽패를랭협회입니다.

극단적 시장 근본주의자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가 주최한 그 모임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은, 하이에크와 함께 신자유주의의 양대 거목으로 인정받는 시카고대 경제학 교수 밀턴 프리드먼입니다.

그는 신자유주의의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해 구소련과 중국, 인도, 북한, 베트남과 같은 국가는 공산・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채택한 탓에 경제개발에 실패했지만, 한국과 대만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시장의 자유를 택한 덕분에 탁월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박정희 정부가 집행했던 경제정책들은 밀턴 프리드먼의 주장에 합리성이 결여되어 있음을 단적으로 입증해 보입니다. 치열한 60, 70년대 개발시대를 살아낸 우리네 아버지, 할아버지들은 “박정희 대통령은...”으로 시작하는 대한뉴스의 다음 꼭지로 경제기획원에 대한 소식을 귀가 닳도록 들었습니다.

경제기획이란, 경제를 기획한다는 말입니다. 경제기획원이 부처 이름이었으니, 기획의 주체는 국가입니다. 그럼 국가는 경제를 어떤 방식으로 기획했을까요? 기획이라는 단어에 내포된 제어, 조정, 통제의 의미를 손쉽게 구현해 낼 수 있는 방식은 기업을 휘어잡는 것입니다. 박정희 정부는 철도와 항만, 공항, 우편, 전기 등 대부분의 공공재 관련 기업을 국영화함으로써 국가경제 기획의 기틀을 잡았습니다.

신자유주의의 양대 산맥인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와 밀턴 프리드먼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신자유주의의 양대 산맥,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와 밀턴 프리드먼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다음으로 중요한 기획은 철강, 자동차, 조선 등 전략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해당 산업 관련 품목의 수입을 제한하고 자금을 지원하는 등 정책적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배려 덕에 삼성, 현대, 락희화학(럭키), 금성(현 LG), 선경합섬(현 SK), 롯데, 포항제철(현 포스코)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은 국제기업과 다국적기업을 거쳐 초국적기업으로 발전해 나갈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산업화 과정에 보인 국영화, 전략산업 육성, 무역규제 정책들은 민영화와 시장의 자유를 신봉하는 신자유주의 프레임보다는 국가가 시장에 적극 개입하는 공산・사회주의 계획경제에 훨씬 더 가까웠습니다.

한국의 사례는 밀턴 프리드먼의 ‘계획경제=실패, 자유시장=성공’이라는 등식이 허구임을 입증했습니다. 또한 계획경제를 채택한 중국과 인도, 베트남이 엄청난 성장을 구가하고 있는 현실, 반대로 선진 제국의 세계화에 희생되어 시장의 자유를 채택한 남미 및 아프리카 국가들이 과거보다 더 궁핍해진 현실도 그런 사실을 뒷받침합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한국은 어떤 경제정책을 운용하고 있을까요?

한국 경제정책의 현 주소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나 G20정상회의(Group of 20),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등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고, 노조 억제 등 친기업 정책을 펼치는 걸 보면 시장의 자유를 지지하는 것도 같고, 경제 주무부처의 명칭이 경제기획원과 유사한 기획재정부인 걸 보면 계획경제의 관성이 여전히 작용하는 것도 같습니다.

답은 미국의 정치학자 찰머스 존슨(Chalmers Johnson)의 ‘발전국가론’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발전국가론은 일본, 대만, 한국처럼 시장경쟁에 기초한 자본주의를 채택하면서도 국가의 개입과 규제를 지지하는 ‘국가주도형 자본주의’ 또는 ‘시장 통제형 국가’에 관한 이론입니다. 이 이론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신자유주의 프레임의 나라이기는 하지만, 완전한 시장의 자유에는 미치지 못한 ‘발전국가’쯤 됩니다.

찰머스 존슨이 발전국가의 특징에 대해 정리한 아래 내용들을 보면 현재 우리나라의 경제정책이 어디쯤에 위치해 있는지 단박에 알 수 있습니다.

▲ 정부가 투자와 제조업 분야, 대외경쟁력의 급속한 성장에 중점을 두고 산업정책, 무역정책, 금융정책 및 기타 정책에 개입
▲ 외국기업 또는 경기하강 국면으로부터 보호받으면서 라이벌 기업이나 세계시장에 맞서 자력 성장이 기대되는 기업들로 인한 경쟁력 있는 경제 가치에 대한 동시적 믿음
▲ (천천히 증가하는) 단일민족으로 구성된 인구, 고급 인적자원, (부분적으로 이전의 농지개혁 덕에) 비교적 균등한 소득 분포, (산업화 과정 동안) 유능한 관료와 권위적 정부의 존재 등 사회경제적, 정치적으로 유리한 전제조건들

위 세 가지 항목은 우리나라의 60, 70년대 개발시대를 가리킵니다. 현대화이론과 종속이론, 그리고 발전국가론으로 우리 경제정책의 좌표를 설정해 보겠습니다.

한국 경제정책의 현 주소 ⓒ스트레이트뉴스/그래픽:김현숙
한국 경제정책의 현 주소 ⓒ스트레이트뉴스/그래픽:김현숙

현대화이론은 신자유주의 프레임과 관계를 맺고 있고, 시장의 자유를 의미합니다. 종속이론은 공산・사회주의 프레임과 관계를 맺고 있고, 계획경제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발전국가론이 어떤 프레임인지는 명확치 않습니다. 따로 규정한 학자도 없습니다.

우리나라 경제정책의 근간이 신자유주의 프레임인 것은 확실합니다. 하지만 완전한 시장의 자유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도 명확합니다. 이런 체제의 모호성, 이것이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발생했고 지금도 발생하고 있는 숱한 경제적・이념적 논쟁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국가주의 헛발질, 순탄치 않을 김 위원장의 8월

한국경제를 공산・사회주의 계획경제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 시장경제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한국경제는 신자유주의라는 토대에 계획(기획)이라는 옷을 입혔다가 벗겼다가 하면서 자라왔습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겠습니다. 文정부에서 국가주의가 오히려 더 약화되고 있다는 이해찬 의원의 발언이 나오자, 김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만 그런 게 아니고, 역대 정부에서 쭉 해 온 것을 이제 끊어야 한다는 얘기였다”며 한발 물러섰습니다.

김 위원장의 후퇴는 우리 경제가 발전해온 역사에 비추어 볼 때, 文정부를 ‘국가주의’로 비난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가능했습니다. 실제로 국가주의는 자유한국당과 그 전신, 전신의 전신, 전신의 전신의 전신이 만들어놓은 것이니까요. 장발 단속, 스커트 길이 단속, 국기 하강식, 건전가요, 간판 소등 단속 같은 것들 말입니다. 비상대책위의 본격적인 출범에 즈음해 자신의 당내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작은 사안 몇 개로 ‘설레발’을 쳤다가 다시 거두어들인 모양새입니다.

그런데 앞으로가 더 걱정입니다. 지난달 30일, 김 위원장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했습니다. 이를 두고 당내에서 “김 위원장의 행보가 자유한국당의 정체성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 봉하마을 방문은 보여주기일 뿐이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날 자유한국당 소속 경남 출신 국회의원들은 봉하마을에 가지 않았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는 “노무현 정신을 따르는 인물을 누가 왜 자유한국당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모시자고 했는지 정말 알고 싶다”며 김 위원장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당내 입지 강화 작업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입니다.

더 큰 걱정은 따로 있습니다. 김 위원장의 발언에는 시장자유 강화로 가야한다는 의중이 깔려 있습니다. 자유한국당의 정체성과 맞아떨어지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지난 25일 현충원을 방문했을 때, 그리고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찾았을 때, 그는 방명록에 “모두, 다 함께 잘사는 나라”라고 적었습니다. 설명을 요구하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결국 우리 사회가 통합을 향해 가고, 그 다음에 힘을 모아 우리 국가를 새롭게 해 나가야 하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자유한국당 구성원들로서는 마뜩잖은 시선을 보낼 수밖에 없는 두루뭉술한 설명입니다.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이라며 최저임금을 두 차례에 걸쳐 27.3%나 인상한 것도 모자라, 10년 만에 감세 기조로 돌아서고, 부자 증세 등 각종 사회민주주의적 정책을 도입하고 있는 마당이라 더 그렇습니다.

신자유주의,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 기업 감세, 복지 축소가 정체성인 자유한국당입니다. 그런 당에 김 위원장의 우유부단하고 뜨뜻미지근한 행보는 ‘이상하게’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생각보다 집요한 설득작업이 필요해 보이는 부분입니다.

김 위원장은 8월부터 현장 행보에 나설 예정입니다. 현장에서 자유한국당에 대한 따가운 이야기를 들어보자는 취지랍니다. 이에 대해 당의 한 중진 의원은 “무너진 당을 보수하고 당이 가야할 길을 찾으려면 당내 이야기를 들어야지”라며 쓴 소리를 뱉었습니다.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은 당 정체성 확립, 계파갈등 해소에 따른 당내 결속, 인적청산, 이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합니다. 하지만 계파갈등과 인적청산은 손도 못 댄 상태에서, 당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국가주의를 들고 나섰다가 하루 만에 후퇴했습니다. 8월 현장 행보에서 어떤 대책이 나오더라도 당내 중진들은 시쳇말로 ‘물어뜯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김 위원장이 성과를 낼 수 있을까요? 당내 입지로 보건대, 지금으로서는 그의 8월이 순탄치는 않아 보입니다.
김태현bizlin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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