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남 문화비평] '나 혼자 산다' 사소한 대화 진지하게 바라보기
[이강남 문화비평] '나 혼자 산다' 사소한 대화 진지하게 바라보기
  • 이강남(문화평론가) (webmaster@straightnews.co.kr)
  • 승인 2018.08.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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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예능은 ‘관찰’이 대세다. 패널들 여럿이 줄줄이 앉아 타인의 삶을 관찰하며 서로서로의 인생에 대해 코멘트하는 게 포맷의 전부다. 어찌 보면 단조로워 보이는 컨셉인데도 ‘나 혼자 산다’ ‘미운 우리새끼’ ‘전지적 참견 시점’ 등의 프로그램이 전부 이런 구성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중에서도 ‘나 혼자 산다’는 2013년에 시작해 아직까지도 주목을 받고 있다. 명실공히 ‘관찰예능’의 원조라고 볼 수 있는 작품이다. 그야말로 ‘나 혼자 사는’ 독신자 게스트들이 살아가는 개성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아직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MBC 예능프로그램 '나혼자 산다'
MBC 예능프로그램 '나혼자 산다'

지난 3일 ‘나 혼자 산다’ 방송분에서 재미있는 장면이 있었다. 래퍼 사이먼디(쌈디)가 새집으로 이사를 간 모습이 그려졌다. 그러면서 쌈디의 부모님이 비밀번호를 누르고 자연스럽게 아들의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송출됐다.

이 장면을 본 모델 한혜진(패널)은 “부모님한테 집 비밀번호 잘 안 알려주는데…”라는 코멘트를 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타 패널들은 오히려 한혜진에게 질문을 던졌다. “다 알려주지 않나?” “숨길 게 없는데?” “알려주지 않나요?”라는 반론 공세가 이어졌다.

더 나아가서 개그맨 박나래는 “왜죠? 집에 누가 있나 봐요?”라며 한예진에게 결정타(?)까지 날리며 방송의 재미를 선사했다. 결국 한혜진이 당황하며 화제를 돌리는 걸로 이 장면은 마무리 됐다.

“집에 누가 있나 봐요?”라는 박나래의 공격은 분명 방송으로서는 아주 재미있는 흐름이었다. 그러나 이른바 ‘진지병’ 걸린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이 방송에서 유일하게 ‘나 혼자 산다’의 취지에 걸맞은 발언을 한 사람이 한혜진이며 나머지 패널들의 발언이 오히려 부적절했다는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성인이 된 자식들이 부모의 품을 떠나 ‘나 혼자 사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경제적 사정이 어려워 그 시기가 늦어질 순 있겠지만, 언젠가는 독립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은 다들 공유하고 있다. 이것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한 아이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인 것이다.

아무리 자식이라 해도 한 사람의 어른이다. 따라서 부모에게 사는 집 비밀번호를 알려줘야 한다는 건 다소 지나친 처사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한혜진이 했을 법한) 이런 생각이 마치 부모에게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어서 그런 것처럼 몰아가는 ‘나 혼자 산다’ 패널들의 분위기는 부적절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따로 사는 자식들이 부모에게 비밀번호를 알려주는 게 온당한 처사인 경우도 있다. 부모의 돈으로 자식이 집을 얻었을 때다. 실질적인 소유주가 부모라면 자식에게 비밀번호를 요구한들 거부할 명분이 없다. 완벽하게 독립적인 공간을 얻고 싶다면 부모가 해준 집보다 조금 초라하더라도 자기 집을 얻어서 나가야 하는 게 원칙이다.

한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래퍼 중 하나인 쌈디가 부모의 도움을 받아 집을 얻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쌈디가 부모님에게 비밀번호를 알려줘야 할 ‘의무’는 사실 없는 것이다. 쌈디가 원해서 알려준 것이라면 아무도 불만을 제기할 순 없겠지만 그게 당연한 건 절대 아니다.

비밀번호 이슈가 중요한 것은 자식들이 꼭 부모에게 뭔가를 숨겨야 하기 때문이 아니다. 아무리 부모자식간이라도 서로 간의 공간을 얼마나 확보해 주느냐가 결국에는 개인 간의 가치관 존중 문제로까지 연결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독립된 가정을 꾸려 새 식구를 맞이했을 경우 ‘공간 확보’ 문제는 엄청나게 중요한 이슈가 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젊은 부부들이 (시)부모로부터 독립된 부부생활을 영위하지 못하는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다. 시도 때도 없이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으로 들어오는 (시)부모님 때문에 노이로제에 걸릴 것 같다는 절규를 우리는 수많은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흔히 접할 수 있다.

한국인들은 부모에게 꽤 늦은 시기까지 지원을 받기 때문에 나이든 부모의 요구사항을 좀처럼 외면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효심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이며, 그런 감정이 있었기 때문에 인간이 문명을 발전시켜 올 수 있었던 것도 맞다.

효(孝)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지만 그 효심의 방향이 부모와의 물리적 거리를 좁히는 방향으로만 지속된다면 정신적 독립의 시기는 계속 늦어질 수밖에 없다. 나이는 먹는데 정신적으로는 여전히 ‘부모의 자식’이라면 그 사람이 어른이 되는 시기는 자꾸 늦어지게 된다. 이건 결국 모두에게 손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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