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주의와 민족주의의 대립으로 본 건국절 논란
태극기부대, 오늘도 서울 시내 5곳에서 '문 탄핵' 외쳐
태극기부대가 태극기를 들 수밖에 없는 이유는?
진정한 광복은 남남과 남북이 하나 될 때 실현 가능


광복 73주년 겸 정부수립 70주년 경축식이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렸습니다. ‘평화’를 주제로 준비된 이번 경축식에는 독립유공자와 유족들, 4부 요인과 각 정당대표, 종교계 대표, 주한외교단, 시민 등 2,200여 명이 함께했습니다.

경축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의 경제협력 비전과 한반도 평화 번영을 강조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남북경협 효과 170조 원 전망 ▲경기와 강원 접경지 통일경제특구 설치 ▲동아시아 철도공동체 제안 ▲남북 및 북미 간 비핵화 대화 촉진 등을 제시했습니다.

경축사를 하는 문재인 대통령(2018.08.15)(자료:jtbc 화면 갈무리)
경축사를 하는 문재인 대통령(2018.08.15)(자료:jtbc 화면 갈무리)

그러나 2018년 대한민국의 현실에 진정한 의미의 광복은 아직 멀게만 느껴집니다. 두 개의 태극기와 하나의 인공기가 펄럭이기 때문입니다.

1919년인가, 1948년인가?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도 1948년 건국을 당연시해서 받아들였습니다. 1919년이 건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전체 다수의 의견은 저는 1948년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지난 14일 평화방송 라디오에 출연한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대위원장이 건국절 논란에 대해 한 발언입니다.

대한민국 건국절은 상해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이 맞을까요, 이승만 정부가 출범한 1948년이 맞을까요? 이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진보와 보수가 명확히 갈리는 지표이기도 합니다.

진보 진영은 우리 헌법이 상해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점에서 1919년을 건국절로 봅니다. 주장의 근거는 지금까지 공포된 모든 헌법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대한민국임시헌장>

“존경하고 경애하는 우리 이천만 동포 국민이여, 대한민국 원년 3월 1일, 우리 대한민족이 독립을 선언하면서부터 남녀노소, 모든 계급, 모든 종교를 가리지 않고 하나로 단결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 법령 제1호 선서문 1919.4.11제정-

대한민국임시헌장선포문(자료:국립중앙도서관)
대한민국임시헌장선포문(자료:국립중앙도서관)

<대한민국제헌헌법>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헌법 제1호 1948.7.17 공포-

<대한민국헌법>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대한민국헌법 전문 1987.10.29 전부개정-

반면, 보수 진영은 국가 성립의 세 가지 요소인 국민, 영토, 주권이 모두 갖춰진 1948년을 건국절로 봅니다. 그래서 이승만 전 대통령을 국부로 내세웁니다. 이런 생각은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이 건국 73주년 기념세미나에서 한 발언에도 잘 드러나 있습니다.

“나라를 아이에 비유하자면 1919년에 임신은 됐을지 모르나, 아이가 태어난 생일은 1948년 8월 15일입니다.”

이승만 정부 당시 대한민국정부공보처에서 발행한 관보. 헌법 전문에 ‘기미3・1운동’이 명시되어 있고, 날짜도 ‘대한민국30년 9월 1일’로 되어 있다.(자료:국립중앙도서관)
이승만 정부 당시 대한민국정부공보처에서 발행한 관보. 헌법 전문에 ‘기미3・1운동’이 명시되어 있고, 날짜도 ‘대한민국30년 9월 1일’로 되어 있다.(자료:국립중앙도서관)

그러나 정작 이승만 전 대통령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 전 대통령은 제헌국회 의장 시절 ‘대한민국 30년’이라고 했습니다. 대통령에 취임할 때도 ‘대한민국 30년’이라는 연호를 썼으며, 그해 8월 15일 개최된 정부 출범 행사도 ‘건국축하식’이 아니라 ‘정부수립축하식’이라 불렀습니다. 1919년을 건국된 해로 봤던 거지요.

국가주의 對 민족주의의 싸움

건국절 논란은 지난 2006년 뉴라이트 사학자 이영훈의 언론 기고문에서 시작됐습니다. 이후 이명박 정부 들어 한나라당이 건국절 제정 법안을 발의하는 등 불을 붙였고, 박근혜 정부는 국정교과서까지 만들었습니다. 자유한국당은 당 혁신선언문에 ‘1948년 건국’을 명시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싸움은 국가주의와 민족주의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지점입니다. 우리나라의 역사는 누가 만들어 갈까요?

이 질문에 국민이라고 답한다면, 그는 민족주의 역사관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에게 건국절은 광복을 위해 피 흘리며 죽어간 애국지사들, 그리고 독립을 위한 그들의 활동이 모두 포함되는 1919년이 됩니다.

하지만 국가라고 답한다면, 그는 국가주의 관점으로 역사를 바라봅니다. 따라서 국가 성립의 세 가지 요소가 충족된 1948년을 건국절로 생각합니다.

이 경우, 광복을 위해 투쟁한 독립투사들, 애국지사들은 우리 건국의 역사에서 사라집니다. 안중근 의사도, 임시정부도, 백범 김구 선생도 사라집니다. 그래서 이승만 전 대통령이 국부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친일파가 건국의 일등공신으로 등극하는 거죠.

박근혜 정부 당시 한국사 교과서 발행체제 전환에 앞장선 황우여 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자료:연합뉴스)
박근혜 정부 당시 한국사 교과서 발행체제 전환에 앞장선 황우여 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자료:연합뉴스)

지난 2016년, 김영관 전 광복군동지회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면전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대한민국이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하이에서 탄생했음은 역사적으로도 엄연한 사실입니다. 왜 우리 스스로가 역사를 왜곡하면서까지 독립투쟁을 과소평가하고, 국란 시 나라를 되찾고자 투쟁한 임시정부의 역사적 의의를 외면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 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의 역사는 누가 만들어 갈까요?”라는 질문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 질문에 우리 국민 중 21%만이 국가라고 답한 바 있습니다. 당신의 답은 무엇인가요?

태극기를 들 수밖에 없는 이유

건국절 논란이 계속되는 데 대해 혹자는 김구 전 주석과 이승만 전 대통령의 싸움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또 어떤 이는 친일청산이 아직 이뤄지지 않은 반증이라고도 합니다. 진보 진영에서 자주 나오는 얘기들입니다.

이런 평가에 대한 증거이기라도 하듯, 우리나라에는 또 다른 의미를 가진 태극기가 펄럭입니다. ‘보수’를 자칭하는 이른바 ‘태극기부대’가 그들입니다. 폭염이 이어지는 오늘도 태극기부대는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서울역과 동화면세점 앞을 비롯, 서울 시내 5곳에 모여 집회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보수기독교계와 남성 혐오 커뮤니티인 '워마드' 회원들도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들이 태극기를 흔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도 모자라 성조기와 이스라엘국기까지 들고 나서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요?

몇 가지 이유가 이미 사회적으로 제시된 바 있습니다. 가짜뉴스 등 부정확한 정보와 선동, 어려운 시절 도와준 미국에 대한 기억, 여전히 남아 있는 유교문화에 의한 자발적 복종, 인지부조화 중 유도된 복종 패러다임과 같은 심리적 원인, 일부 기독교인들의 착각 등이 그런 것들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이유의 중심에는 역시 국가주의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나서는 시위대의 평균 연령은 매우 높습니다. 그들이 미처 개인 스스로 뭔가를 해 보기도 전에 국가주의를 주입받았던 세대들이고 보면, 이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시위 중인 태극기부대(자료:오마이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시위 중인 태극기부대(자료:오마이뉴스)

국민을 위해 국가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위해 국민이 존재한다는 이데올로기는 상시 전쟁 상태를 부각시키며 그들을 국가 우선주의, 국가 지상주의로 물들였습니다. 국가주의가 가장 흔히 사용하는 도구는 국기와 국가입니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의 건국절 논란은 국가주의와 연결되어 있고, 국가주의는 다시 군부독재 및 친일 잔재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태극기부대가 인지하건 말건 이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 연결점들이 해체되지 않는 한, 태극기부대는 앞으로도 태극기를 손에서 놓을 수 없을 겁니다.

그런 그들에게 대한민국 헌법에 국가가 최고의 권리를 갖는다는 조항이 단 한 줄도 없다는 사실, 오직 국가가 국민에게 해야 할 의무만 있다는 사실을 아무리 얘기해도 소용없을 것입니다.

아직 오지 않은 광복

“분단은 우리의 사고까지 분단시켰습니다. 많은 금기들이 자유로운 사고를 막았습니다. 분단은 안보를 내세운 군부독재의 명분이 되었고, 국민을 편 가르는 이념갈등과 색깔론 정치, 지역주의 정치의 빌미가 되었으며, 특권과 부정부패의 온상이 되었습니다. (중략) 정치적 통일은 멀었더라도, 남북 간에 평화를 정착시키고 자유롭게 오가며 하나의 경제공동체를 이루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진정한 광복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경축사에서 한 말입니다. 그동안 국가주의가 분단이라는 현실을 정치에 얼마나 나쁘게 이용해왔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문 대통령의 말대로, 완전한 광복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도보다리를 산책하며 대화를 나누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2018.04.27)(자료:ytn 화면 갈무리)
도보다리를 산책하며 대화를 나누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2018.04.27)(자료:ytn 화면 갈무리)

국가주의 관점을 가진 시민 개인에게 통일은 필수사항이 아닙니다. 국가의 결정이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국가주의를 걷어낸 시민 개인에게 통일은 반드시 이루어내야 하는 현안입니다.

현재 짧게는 경협을 포함한 남북교류, 길게는 통일을 위한 노력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쉽지는 않습니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대북제재 해제를 포함한 미국의 포괄적 조치가 이행순서를 두고 대립하고 있어섭니다.

문 대통령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남북 간 뿌리 깊은 불신을 걷어내고, 우리가 주인이라는 인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1919년과 1948년을 두고 벌이는 건국절이라는 소모적 논쟁은 이제 역사학자들에게 맡겨야 합니다. 대한민국을 부당하게 휘어잡았던 국가주의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민족주의 역시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야 합니다. 시청 광장과 광화문 광장에서 대치하는 두 종류의 태극기도 하나로 합쳐져야 합니다. 진정한 광복은 남남, 남북이 하나 될 때 비로소 실현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김태현bizlin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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