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날품팔이에게 무슨 휴가가 있으랴마는
사장이 가족여행을 떠나는 바람에 나도 덩달아 나흘 간 쉬게 되었다.

금요일 저녁에 서울에서 두 친구가 내려와 하룻밤 놀다 갔다.
얼굴 본 지 십 년이 더 되었는데, 기억이 흐릿하여 정확히 셈할 수가 없었다.

토요일에는 마을 청년회 야유회가 있었다.
나는 청년회 총무여서 회를 뜨러 새벽에 삼천포에 다녀왔다.

함양을 지나고부터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폭우가 쏟아졌다.
조선 땅은 생각보다 넓다.

용궁수산시장 안에 있는 삼순엄마상회는 우리 마을의 오랜 단골집이다.
농어와 광어 회를 각각 8kg씩 뜨고, 구워 먹으려고 전어도 2만 원어치 샀다.

마을에 돌아오니 사람들이 그늘나무 아래 돗자리를 깔고 있었다.
모처럼 화창한 날씨, 고기는 입에서 녹고 술은 달았다.

숯불 앞에 쪼그리고 앉아 전어를 굽고 있는데,
이웃집 아줌마가 상추쌈을 입에 넣어 주며 말했다.

"재욱 씨, 우리하고 오래 같이 살아요."

말하자면 사연이 긴데, 원래 올가을쯤 이 마을을 뜰 생각이었다.
그래서 틈틈이 빈집을 알아보고 있었다.

여름 농어가 맛있다더니 빈말이 아니었다.
가슴속 응어리가 스르르 녹으며 모든 계획이 백지화되었다.

"그럽시다."

참, 나도 어지간히 싼 인간이다.
상추쌈 한입에 홀딱 넘어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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