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에 나타난 자본주의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은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자본가들의 무한 이윤획득에 의해 세계 경제는 불균등하고 불공정해지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강대국의 힘이 거세지면서 각종 모순적 요소가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을 알기 위해선 현대 경제의 중요한 쟁점들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 쟁점들의 핵심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경제학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과 논쟁을 우리가 알아야 할까? 몰라도 무방한 것들이 있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 경제학 논쟁이 경제 정책으로 이어지고, 그 정책은 보통 누군가에게는 유리하고 누군가에게는 불리할 뿐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스트레이트뉴스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경제의 주요 요소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본지 선임기자 현재욱의 저작인 「보이지 않는 경제학」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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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은 훌륭한가?

은퇴한 펀드 매니저 해리 아트만은 고비 사막 한가운데에 앉아 몽골의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먼 옛날의 카라반처럼 낙타와 함께 고비 사막을 횡단하는 것이 그의 오랜 꿈이었다. 해발 1,500미터의 사막에서 바라보는 하늘의 별은 그가 뉴욕에서 평생 바라보았던 별을 다 합친 것보다 많았다. 대부분의 사람이 하늘에 저렇게 많은 별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살아간다고 생각하자 문득 슬픔이 밀려왔다.

달빛에 젖은 모래언덕은 20년 전 그레이트스모키 산맥 정상에 쌓여 있던 눈처럼 하얗게 빛났다. 그때 그는 어린 시절 한동네에 살았던 스텔라와 함께 겨울 산을 올랐다. 버너 위에서 커피가 끓기 시작하자, 해리는 스텔라의 손을 잡고 물었다. “나하고 결혼해줄래? 너와 함께 행복해지고 싶어.”

두 사람 모두 행복하지 않았다. 10년 만에 그들은 헤어지기로 합의 했다. 양쪽의 변호사가 일사천리로 법적 절차를 진행했고, 최종 서류에 서명하기까지 어떤 다툼도 없었다. 짐을 챙기고 문을 나서기 전, 스텔라는 마지막으로 집안을 한 번 둘러보고는 담담하게 말했다. “해리, 당신은 변했어. 내가 알던 그 해리가 아니야.”

스텔라는 얼마 전에 아홉 번째 생일을 맞은 딸 첼시를 데리고 캘리포니아로 떠났다. 그레이트스모키에서 스텔라와 함께 보낸 일주일이 해리의 마지막 휴가였다. 그 후로 20년간 손에서 일을 놓지 못했고, 스텔라와 헤어 진 뒤에도 연애다운 연애를 해본 적이 없었다.

모건스탠리에서 10년 의 경력을 쌓은 해리는 후원자를 모아 헤지펀드 회사를 만들었다. 그는 모든 것을 잊은 듯 비즈니스에 전념했다. 그에게 돈을 맡긴 펀드 가입자들은 매년 굉장한 배당금을 챙겼고, 언제나 해리를 신뢰했다.

“잠이 안 오시오?” 등이 꾸부정한 중국인이 고량주 한 병을 들고 텐트 밖으로 나왔다. 네이멍구자치구 바오터우에서 고용한 안내인이다. 그의 팔뚝은 통나무처럼 굵고 손바닥은 돌처럼 딱딱해 보였다. 손톱 하나는 시커멓게 멍든 채 찌그러져 있었다. 그에 비하면 해리의 손은 하얗고 부드러웠다. 해리는 중국인에게 그동안 무슨 일을 했는지 물어보았다.

“닥치는 대로 했지. 농사도 지어보고, 벌목도 해보고, 공사장에서도 일하고. 일곱 식구를 먹여 살리는 게 쉬운 일이 아닙디다.”

“그래서, 얼마나 돈을 버셨습니까?”

“하루 벌어 하루 먹기 바쁜데 어떻게 돈을 모으겠소? 그놈의 돈이 다 어디서 굴러다니는지 원. 그래도 공사판에서 일할 때가 짭짤했지.”

“중국의 건설 경기가 워낙 좋으니까요. 올해 굴삭기만 10만 대 넘 게 팔렸다고 하더군요.” 

“건설업을 하십니까? 선생은 돈이 아주 많은 것 같은데, 고층빌딩 을 수십 채 지었나 봅니다.”

“건설업은 아니지만 가끔 그쪽 사정을 들여다보기는 했습니다.”

잠이 쏟아지는지 중국인은 텐트로 돌아갔다. 해리는 지난 20년 동 안 그가 한 일을 곰곰 생각해 보았다. 하루하루가 전쟁 같았지만 그의 업무는 계산하고, 비교하고, 판단하고, 결정하고, 전화하고, 키보드를 치는 게 전부였다. 그것은 ‘증권’이라고 불리는 종이쪽과의 전쟁이었다. 만약 증권으로 탑을 쌓는다면, 그가 마지막 1년간 취급했던 증권 만으로도 432파크애비뉴(뉴욕 맨해튼에 있는 초고층 아파트)보다 높이 쌓 아올릴 수 있을 것이다.

해리가 월가를 떠나기로 결심한 것은 지난해 봄이다. 거리에 쏟아 져 나온 사람들이 화창한 봄 날씨를 만끽하던 4월 마지막 주 토요일 오후, 모건스탠리에서 같이 일했던 친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 때 스카이다이빙을 즐겼던 모험가답게 48층 꼭대기에서 뛰어내렸다. 그가 낙하산을 짊어지는 것을 깜빡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그는 월가에서 가장 잘나가던 채권 트레이더였다. 해리는 학생 시절 밑줄을 그어가며 읽었던 경제학 책들을 떠올려 보았다. 지금은 거의 다 잊어버렸지만, 그때의 경제학 교과서들은 대부분 생산과 소비에 관한 이론을 중요하게 다루었다. 수요와 공급곡선은 실물의 흐름이었고, 과잉공급은 경기 침체의 원인이었다.

월가 사람들은 다르게 말했다. “우리는 뭐든 많을수록 좋아.” 당시 경제학 교수들 가운데 파생금융상품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는 월가에서 보낸 20년간 한 번도 ‘생산’이란 걸 해본 적이 없다. 그저 남이 만든 증권 쪼가리들을 이리 옮기고 저리 옮기며 시세차익을 거두었을 뿐이다.

손톱이 찌그러진 중국인은 한평생 생산활동에 종사했다. 손등의 피부가 나무껍질처럼 변하도록 일했지만 가족을 부양하기도 힘들었다. 해리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 삶은 저 중국인의 삶보다 훌륭한가? 그는 고개를 저으며 일어섰다.

바람이 쓸고 지나가 자 지평선 너머로 우수수 별이 떨어졌다. 해리는 여행을 하는 동안 계속 이 문제를 반추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여행이 끝난 후에는 무엇을 할지, 아직 거기까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무엇을 하든, 어차피 한 번은 그가 살아온 삶에 대해서 정리 할 필요가 있었다. 시간은 충분하다. 그의 앞에는 2,000킬로미터의 사막길이 놓여 있다. 미지의 길이다. <계속>

※ 이 연재는 저자(현재욱)와 출판사(인물과사상사)의 동의로 게재한 글입니다. 무단 도용을 금지하며, 위반 시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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