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에 나타난 자본주의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은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자본가들의 무한 이윤획득에 의해 세계 경제는 불균등하고 불공정해지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강대국의 힘이 거세지면서 각종 모순적 요소가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을 알기 위해선 현대 경제의 중요한 쟁점들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 쟁점들의 핵심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경제학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과 논쟁을 우리가 알아야 할까? 몰라도 무방한 것들이 있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 경제학 논쟁이 경제 정책으로 이어지고, 그 정책은 보통 누군가에게는 유리하고 누군가에게는 불리할 뿐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스트레이트뉴스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경제의 주요 요소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본지 선임기자 현재욱의 저작인 「보이지 않는 경제학」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경제란 무엇인가?

나는 경제에 대한 정의를 책이 아닌 삶에서 배웠다. 단골 음식점에서 칼국수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음식점은 중년 부부가 운영하는 작은 가게다. 부인은 요리사, 남편은 서빙 및 배달 담당이다. 솥에서 육수가 부글부글 끓는 동안 맞은편 벽에 걸린 텔레비전에서는 경제 전문가들의 토론이 진행되고 있었다. 수출이 줄고 있다, 가계부채가 늘고 있다, 경제가 어렵다, 주로 이런 내용이었다. 음식점 사장이 칼국수 두 그릇과 김치 한 접시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을 때, 나는 툭 던지듯 물었다. “도대체 경제란 뭘까요?” 사장은 생각도 않고 대답했다. “경제? 먹고사는 문제죠, 뭐.” 먹고사는 문제.

이보다 간결한 정의가 있을까. ‘먹고살다’라는 말은 ‘생계유지’와 동의어다. 그 말에는 안정적인 일자리, 일정한 소득, 균형 잡힌 지출 관리, 실현 가능한 계획 등의 개념이 모두 함축되어 있다. 그러므로 먹고사는 일은 삶의 기본이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경제는 어렵지 않다. 일을 해서 돈을 벌고 필요한 데 쓰는 것이 경제다. 쓰고 남은 돈을 저축하면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할 수 있다. 저축은 미래의 소비이므로 결국 인간의 경제활동은 벌어서 쓰기getting and spending, 즉 먹고사는 것이 전부다.

경제활동의 목적은 물질적 효용 또는 편익을 얻기 위함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개념은 ‘물질material’이다. 경제는 물질을 초월한 관념이 아니라 몸으로 느끼는 물질의 이야기다. 따라서 경제활동의 대상은 몸(뇌)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유형·무형의 자원이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일컬어 ‘재화와 서비스goods and services’라고 한다. 재화와 서비스가 시장에서 팔리는 이유는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에
의해서 생산되지만 쓰레기나 오염물질처럼 경제에 도움이 안 되는 것도 있다. 이를 ‘비재화bads’라고 한다.

경제활동은 크게 생산production과 소비consumption로 구분할 수 있다. 우리가 어디서 무엇을 하건 반드시 둘 중 하나, 혹은 두 과정 모두에 참여하게 된다. 분배distribution는 생산과 소비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현상이다. 경제학 교과서에는 삼각형 하나를 그린 다음에 세 개의 꼭짓점 위에다 생산·분배·소비를 올려놓은 그림이 나온다. 이것으로 경제활동의 순환 관계를 설명하지만 분배는 생산-소비의 결
과일 뿐이다. 밥을 지어서(생산) 먹으려면(소비) 사람 수대로 그릇에 담아 밥상 위에 올려놓고 숟가락을 얹는다. 이것이 분배다.

한 농부가 텃밭에 감자를 심는 장면을 떠올려 보자. 그는 토지, 거름, 씨감자, 농기구 등의 생산요소와 자신의 노동력을 결합하여 감자라는 재화를 생산하려고 한다. 수확하기까지 김을 매고 농약을 치고 꽃을 따는 등 노동력이 추가로 투입될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이 생산활동이다.

감자를 캐는 날, 농부는 잠시 작업을 멈추고 일손을 보태러 온 지인과 함께 뽕나무 그늘에서 오이를 안주 삼아 시원한 막걸리를 마신다.

이때 두 사람의 행위는 소비활동이다. 수확한 감자를 창고에 잘 갈무리한 다음, 농부는 지인에게 고맙다며 품삯 10만 원과 함께 햇감자 한 상자를 안겨준다. 이로써 생산에서 분배까지, 한 사이클이 순조롭게 마무리되었다. 이제 두 사람이 생산활동에 참여한 대가로 얻은 소득을 소비할 일만 남았다.

최종 생산물이 서비스상품인 경우에는 대체로 생산과 소비가 동시에 이루어진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다듬을 때, 미용사 입장에서 보면 생산활동이고 고객 입장에서 보면 소비활동이다. 학원 강의, 치과 의사의 치료, 여행 가이드, 동시통역, 가수의 공연 같은 서비스상품은 생산과 동시에 소비된다. 대부분의 경제학 교과서에서 노동을 생산 요소의 하나로 설명하지만 알고 보면 노동도 생산현장에서 소비되는 일종의 서비스상품이다(생산요소에 대해서는 제2장에서 좀더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분배는 ‘어떻게 나눌 것인가’ 하는 문제다. 노동자가 받는 일당 또는 월급은 생산활동에 참여한 대가로 노동자에게 할당된 몫이다. 분배 시스템이 공정하다면, 노동자는 최종 생산물에 기여한 만큼 보상받을 것이다. 그 노동자를 고용한 사람의 기대보다 높은 성과를 내면 특별상여금을 받을 수도 있다.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것이다. 누가 더 가져가면 다른 누구는 그만큼 덜 가져간다. 성과급은 경쟁을 부추기는 유력한 수법이다. 이렇게 인간의 노동력을 어떤 쪽으로 쏠리게 하는 힘을 ‘경제적 유인incentive’이라고 한다. 처벌과 보상, 모두 경제적 유인이다.

최종 생산물의 일부는 정부가 가져간다. 정부가 차지하는 몫을 화폐단위로 산정한 것이 ‘세금’이다. 기업은 법인세로, 사용자와 노동자는 소득세의 형태로 제 몫의 일부를 떼어 국세청에 납부한다. 소비하는 데에도 세금이 붙는다. 감자 수확을 도운 일꾼이 쉬엄쉬엄 담배를 피웠다면 4,500원짜리 담배 한 갑을 샀을 때 이미 3,318원의 세금을 낸 것이다(담뱃값에는 부가가치세 433원, 담배소비세 1,007원, 개별소비세 594
원, 지방교육세 443원, 건강증진부담금 841원이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개인과 기업의 소득이 정부로 이전되어 다시 국민복지에 쓰이는 것을 ‘재분배redistribution’라고 한다. 분배와 재분배는 민생民生의 근본이다.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므로 제11장에서 자세히 논하자. <계속>

※ 이 연재는 저자(현재욱)와 출판사(인물과사상사)의 동의로 게재한 글입니다. 무단 도용을 금지하며, 위반 시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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