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영변핵시설 폐기보다 진전된 조치 내놔야
미국, 종전선언에 더한 전향적 조치 제시 필요
'핵 신고 제외' 강경화 중재안, 먹힐지도 관전 포인트
미국 중간선거(11월 6일)는 또 다른 압박 카드

[스트레이트뉴스=김태현 선임기자] “김정은 위원장과 만나서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서 했던 약속을 이행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을 계속하고자 평양에 간다.”

폼페이오 美 국무장관이 이번 4개국 순방의 첫 번째 방문지인 일본에서 평양으로 출발하기 직전(6일) 자신의 트위터에 남긴 글이다.

제2차 북미정상회담을 두고 북한과 미국은 그동안 치열한 ‘밀당’을 벌여왔다. 북한은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완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최선희 외무성 부상을 중국과 러시아로 보낸 바 있다.

그에 대응해 미국은 수차례에 걸쳐 제재 완화 가능성을 차단해왔다. 특히 폼페이오국무장관은 일본 아베 신조 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북한의 비핵화 완성까지 대북제재는 유지돼야 한다”고 강조했고, 미 국무부 역시 대변인 보도자료를 통해 “북한의 비핵화가 완성될 때까지 압박을 지속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이번 방북에서 북한 비핵화를 위한 가시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을 방문해 대화를 나눈 美폼페이오 국무장관과 강경화 외교부장관(자료:AFP)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을 방문해 대화를 나눈 美폼페이오 국무장관과 강경화 외교부장관(자료:AFP)

대북제재 해제와 완전한 비핵화 사이

북한과 미국, 양측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대북제재 해제’와 ‘완전한 비핵화’다. 그 사이에 비핵화 로드맵과 종전선언에 이은 평화협정, 핵 신고, 그리고 이른바 ‘미래 핵’과 ‘현재 핵’이 협상 카드로 끼어 있다.

선제적 조치를 취한 쪽은 북한이다. 북한은 이미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쇄했다. 그 자리에는 각국의 언론인들이 함께했다. 유관국 전문가들이 참관한 가운데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영구폐쇄하기로 약속했고, 현재 일부 해체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미국의 상응조치’라는 전제가 달려 있긴 하지만, 플루토늄 재처리 시설과 우라늄 고농축 시설이 밀집돼 있는 영변핵시설을 영구 폐기하는 등 추가조치도 취해나가기로 했다.

현재 북한이 요구하는 것은 지금까지 보인 선제적 조치에 대한 미국의 상응조치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북한과 미국의 입장이 엇갈린다.

미국은 풍계리와 동창리를 ‘미래 핵’으로 보면서 ICBM 등 ‘현재 핵’에 대한 실질적인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북한은 이미 선제적 조치를 취했으니, 일단 미국이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내놔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 조치는 다름 아닌 종전선언이다.

그러나 미국은 정치적 선언에 불과한 종전선언을 쉽사리 내놓을 생각이 없다. 폼페이오 장관의 4차 방북이 돌연 연기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후 북한은 조선중앙통신 등을 통해 “종전선언에 연연하지 않겠다”며 영변핵시설 폐기 약속을 다시 거둬들이는 듯한 행보를 보였고,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비핵화와 관련 “시간은 많다. 급하게 가지는 않겠다”고 선언하는 등 압박으로 선회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모두 이른바 ‘밀당’이다.

협상의 관건은 ‘+α’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9월 평양공동선언으로 다시 대화의 물꼬가 트였고,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연거푸 친서를 교환한 끝에 “사랑에 빠진” 사이가 됐다.

북한과 미국이 주고받을 것은 무엇일까? 분명한 것은, 이미 나온 북한의 영변핵시설 폐기 제안과 종전선언을 맞교환하는 카드로는 미국이 제2차 북미회담에 동의할 수 없다는 점이다. 미국이 그동안 “종전선언을 위해서는 완전한 핵 신고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이는 선제적 조치를 취해 온 북한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다. 미국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가기 충분한 대목이다. 이것이 폼페이오 장관이 일본으로 향하는 전용기에서 이번 방북의 목적을 묻는 질문에 “미국과 북한 사이에 충분한 신뢰를 쌓는 것”이라고 말한 이유다.

이제 북한은 영변핵시설 폐기 약속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미국 역시 ‘완전한 핵 신고 이후 종전선언’이라는 카드를 고집할 수 없다. 이런 상황이라면 ‘밀당’의 의제는 ‘+α’ 옵션일 수밖에 없다. 북한은 영변핵시설 폐기 약속에 미국이 원하는 옵션을 더해야 하고, 미국은 종전선언에 북한이 원하는 옵션을 더해야 하는 것이다.

마침 폼페이오 장관도 그 옵션에 관해 언급했다. 일본으로 향하는 전용기 안에서 “옵션에 대한 논의를 진전시켜 나가고 있다”고 말했던 것.

그 옵션에 ‘핵 신고’도 포함될까? 외교가에서는 미국이 ‘핵 신고’ 요구를 강하게 주장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흘러나온다. 강경화 외교부장관이 워싱턴포스트(WP)와 한 인터뷰에서 “미국이 북한의 핵 신고 요구를 미루고 핵 시설의 ‘검증된 폐쇄’를 받아들일 것”을 제안한 것도 이런 관측의 배경이다.

핵 신고를 대신해 미국이 받아들일 수 있는 ‘+α’로는, 영변5MW 원자로와 플루토늄 재처리 시설, 우라늄 고농축 시설 등을 폐쇄하는 1단계 조치에서 한발 더 나아간 2단계 조치가 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이 ‘그에 상응하는 조치’로 받아들일 수 있는 ‘+α’는 종전선언에서 한발 더 나아간 조치일 수 있다. 그런 조치로는 대북제재 중 예외조항 확대 또는 미국의 독자 제재 중 일부 해제를 통해 남북경협이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는 방안들이 논의될 수 있다.

“남과 북은 조건이 마련되는 데 따라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사업을 우선 정상화화고, 서해경제공동특구 및 동해관광공동특구를 조성하는 문제를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는 9월 평양공동선언도 이런 관측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일부 해제 문제는 획기적인 비핵화 조치가 나오지 않는 한 협상 테이블에 오르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이 종전선언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한 것은 종전선언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미국이 “시간은 많다”고 한 것은 시간이 없다는 의미로 읽힌다. 폼페이오 장관이 최근의 언론 인터뷰에서 “(북미정상회담이) 10월에 개최될 가능성이 있지만, 그 후가 될 가능성이 더 크다”고 한 발언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결국 오는 11월 6일 열릴 미국의 중간선거가 양측의 협상 의지를 키울 카드 중 하나로 작용할 전망이다. 만약 공화당이 상하원 선거에서 패하면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행보가 크게 위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평양에서는 ‘영변핵시설 폐기’라는 1단계 조치에 더한 ‘+α’와 종전선언에 더한 ‘+α’를 두고 ‘밀당’이 진행되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장관이 제시한 중재안을 미국 측이 어떻게 수용할지, 북한이 미국의 체면을 얼마나 세워줄지에 제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 여부가 달려 있다. 결과는 불과 몇 시간 후에 있을 강경화-폼페이오 실무 만찬에서 드러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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