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안보협력회의 벤치마킹한 동북아 다자평화안보체제
미래 비전 제시하며 중・러 끌어들인 문재인 대통령
대북제재 관련, 안보리 상임이사국 프랑스 첫 기착
이념적・경제적으로 얽힌 동북아, 다자안보체제 쉽지 않아
칸트의 평화 구조화, 핵심은 집단 안보체제와 시장경제
동북아 다자평화안보체제의 열쇠는 미국의 태도 변화


프랑스 파리 공식 일정을 마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는 바티칸으로 향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문 대통령이 전달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초대에 응답했다. 프랑스 파리와 이탈리아 로마, 바티칸시국, 벨기에 브뤼셀, 덴마크 코펜하겐을 차례로 순방하는 이번 유럽 5개국 순방에서, 한반도 평화와 관련, 관심을 끄는 방문지는 프랑스 파리와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가 개최될 벨기에 브뤼셀이다. 파리에서는 대북제재 (일부)해제와 관련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인 프랑스의 지지를 얻고, 브뤼셀에서는 세계 각국 정상급 인사들을 만나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정착에 대한 협력을 당부할 예정이라서다. 바티칸 방문 역시 대미압박이라는 측면에서 빠질 수 없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올해 신년사로부터 출발한 한반도 평화 분위기가 세 차례에 걸친 남북정상회담과 사상 첫 북미정상회담을 거치며 종전선언을 향해 나아가는 지금, 종전선언 및 평화협정 주체를 비롯, 완전한 북핵 사찰, 남북군축, 동북아 다자평화안보체제 구축, 주한미군 철수, 미중 무역전쟁 등 다양한 프로세스와 걸림돌이 산적해 있다. 스트레이트뉴스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현재를 진단하고 향후 진전될 상황을 예측하기 위해 남북한과 미・중・러가 지난 10여 개월 동안 밟아온 궤적을 심층 추적한다.<편집자주>

<목차>
①평화와 번영 “꿈★은 이뤄진다”
②‘동북아 다자평화안보체제’ 가능한가?
③문, 교황 방북으로 대미압박 나서
④동북아 新평화질서, 과정과 결과 사이

[스트레이트뉴스=김태현 선임기자] 종전선언과 북한 비핵화로 시작해 동북아 다자평화안보체제로 향하는 한반도 평화 로드맵이 구체화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베를린에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방안’을 발표한 이후 여러 차례 동북아 다자평화안보체제를 언급했고, 제73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방점을 찍었다.

제73차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하는 문재인 대통령(2018.09.26현지시간) ⓒ스트레이트뉴스DB
제73차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하는 문재인 대통령(2018.09.26현지시간) ⓒ스트레이트뉴스DB

이낙연 국무총리도 지난달 13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개최된 제4차 동방경제포럼 전체세션 기조연설에서 “남북한과 러시아, 중국, 일본, 몽골 등 동북아 국가들과 미국이 참여하는 철도공동체가 구성된다면, 역내 경제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고 동북아 다자평화안보체제를 구축하는 데도 기여할 것”이라며 힘을 보탰다.

동북아 다자평화안보체제는 올해 우리 정부가 밟아온 남북 양자형 구도와 남북미 3자 구도에 이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닿아야 할 종착지로 굳어졌다. 그러나 그 과정에는 수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향후 프로세스는 문정인 통일외교안보 특보가 디자인한 대로 갈 수 있을까?

동북아 다자평화안보체제의 배경

국가 간, 지역 간에 발생하는 갈등과 대립을 공식적으로 조율하고 해소하는 방법으로는 ‘동맹’과 ‘안보협력’이 있다. 동맹은 한미동맹, 북중동맹처럼 우호국끼리 모이는 것이고, 안보협력은 적국과 한 테이블에 앉는 것이다.

동맹 간 대결이 격화된 냉전시대, 동서로 나뉘어 극한대결로 치닫던 유럽은 1975년 다자안보체제인 ‘유럽안보협력회의(CSCE, Conference on Security and Cooperation in Europe)’를 창설했다. 대화가 시작되자 역내에 안정이 찾아왔고, 경제발전으로 이어졌다. CSCE는 냉전 종식에 기여하면서 1993년 ‘유럽안보협력기구(OSCE)’로 상설화됐다.

핀란드 헬싱키에서 유럽안보협력회의 창설에 합의하는 각국 정상들(1975.08.01)(자료:Courtesy Gerald R. Ford Presidential Library)
핀란드 헬싱키에서 유럽안보협력회의 창설에 합의하는 각국 정상들(1975.08.01)(자료:Courtesy Gerald R. Ford Presidential Library)

문재인 대통령이 “유럽으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고 있다”며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종착지로 동북아 다자평화안보체제를 선택한 배경이다. 그러나 지난해까지만 해도 다자평화안보체제를 언급할 조건이 성숙되지 않았다. 경색된 남북관계와 미・중의 소극적인 대응 탓이었다.

① 동북아 다자평화안보체제의 첫 번째 조건 : 동맹국의 태도

박근혜 정부 당시만 해도 미국, 중국, 일본 등 주변국은 동북아 안보협력에 소극적이었다. 중국과 일본은 동북아 평화보다는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영토분쟁 및 지역패권경쟁에 열심이었고, 미국은 북중동맹을 관리하고 동북아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여전히 한미동맹과 미일동맹 강화에 몰두했다.

한반도 전역에 걸쳐 남남갈등을 촉발시켰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는 그 과정 중 일부다. 박근혜 정부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도입을 발표한 직후, 그동안 계속 발전해왔던 한중관계는 급속도로 악화됐다.

그러나 불과 1년 만에 다시 복원됐다. 중국을 상대로 한 문 대통령의 설명과 설득이 통해서다. 문 대통령은 무엇을 설명하고 설득했을까? 그간의 과정을 돌이켜보면 단순히 남・미・일, 북・중・러 간 대결구도 유지에 관한 것이 아니라, 북핵 완성 이후 펼쳐질 동북아 다자평화안보체제에 관해서였음을 유추할 수 있다.

북한 미사일 시험발사 직후 추가 대북제재 표결에 만장일치로 합의하는 유엔안보리(2017.06.02)(자료:Reuters/AP)
북한 미사일 시험발사 직후 대북 추가제재 표결에 만장일치로 합의하는 유엔안보리(2017.06.02)(자료:Reuters/AP)

예상대로였다. 지난해 말,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을 완성하고 미국이 적극적 대응으로 선회하면서 동북아 안보 지형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반신반의하던 중국은 동북아 다자평화안보체제에 확신을 갖게 됐고, 그것으로 첫 번째 조건이 갖춰졌다. 물론, 미국과 유엔안전보장이사회(UNSC, United Nations Security Council)의 대북제재 역시 첫 번째 조건 성숙에 크게 기여했다.

② 동북아 다자평화안보체제의 두 번째 조건 : 남북관계 개선

남북관계 개선 없는 동북아 안보협력은 불가능하다. 주변 4강인 미・중・러・일이 남북한과 긴밀히 얽혀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북한이 핵미사일 실험에 몰두하는 바람에 남북관계는 물론 북미관계까지 극한 대립으로 치달았다.

동북아 국가들의 연결 축인 남북이 대치하는 국면이라면, 설령 주변 4강과 함께 다자평화안보체제 창설에 성공한다 해도 남・미・일 동맹과 북・중・러 동맹의 충돌로 실패한 6자회담 이상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올해 초 신년사에서 ‘평창겨울올림픽’을 언급하고 대표단과 선수단까지 파견하면서 두 번째 조건 성숙을 위한 물꼬를 스스로 텄다. 김정은 위원장이 ‘한번 건드려본다’는 식으로 화해 무드 조성에 나선 것으로 보는 전문가는 없다. 첫 번째 조건이 성숙된 이후, 김 위원장은 두 번째 조건 즉 남북관계 개선을 주도하고 나섰던 것이다.

제3차 남북정상회담에 앞서 무개차에 동승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2018.09.18)(자료:평양공동취재단)
제3차 남북정상회담에 앞서 무개차에 동승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2018.09.18)(자료:평양공동취재단)

이후 남북 정상은 세 차례 만남을 통해 남북관계를 급속히 끌어올렸고, 사상 최초로 북미정상회담까지 성사돼 남북 양자형 구도는 남북미 3자 구도로 옮아갔다. 중국과 러시아도 아래와 같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 동북아 다자평화안보체제를 언급했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하려면 당연히 (북한의 체제 보장에 대한) 국제적 보장이 필요하며, 러시아는 요구되는 만큼의 기여를 할 준비가 돼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폭스뉴스.07.16)-

“중국은 북미 양측이 더욱 많은 성과를 거두도록 대화를 유지하고 마주보며 나가는 것을 지지한다. (중략) 이런 프로세스를 추진하는 주요 당사국은 북미지만, 모든 유관국은 이를 위해 각자 노력할 필요가 있다. (중략) 6자회담은 여전히 없어서는 안 될 다자 플랫폼이다.”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中國新聞網,09.28)-

동북아 다자평화안보체제 구축을 위한 미래 비전

다음은 지난 12일 문 대통령이 영국 BBC방송 인터뷰에서 한 발언이다.

“(남북 간의) 본격적인 경제협력은 제재의 완화에 따르되, 그때까지 경제협력을 위한 사전준비들을 미리 해 두자는 것이다. 공동조사, 공동연구, 앞으로의 방안들에 대한 협의, 이런 것들이 포함된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라는 옳은 선택을 할 경우에 북한의 경제적인 번영이나 아주 밝은 미래가 보장될 수 있다는 것을 북한에 분명히 제시하는 의미가 있다.”

문 대통령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라는 채찍과 별개로 틈만 나면 강조해온 미래 비전이라는 당근이다. 미래 비전은 당면한 위기를 돌파하는 데 중요하다. 문 대통령은 미래 비전을 북한뿐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에도 분명한 어조로 제시했다.

먼저, 러시아에는 “한반도 평화체제가 확대돼 동북아 다자평화안보체제, 유라시아 공동번영을 이뤄야 한다”며 “가스와 철도, 항만, 전력, 북극항로, 조선, 일자리, 농업분야, 수산분야 등 ‘9개의 다리(nine bridge)’를 놓아 경제협력을 증진하자”고 제시한 상태다.

이와 관련, 문 대통령이 사례로 든 것은 ‘유럽석탄철강공동체’다. 유럽석탄철강공동체가 지금의 유럽연합(EU)으로 이어진 것처럼, 동북아 6개국과 미국이 참여하는 동아시아철도공동체가 동북아 다자평화안보체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계산이다.

러시아 국빈 방문 당시 정상회담에 앞서 인사를 나누는 문재인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2018.06.22)(자료:AFP/NTB Scanpix by Sergei Karpukhin)
러시아 국빈 방문 당시 정상회담에 앞서 인사를 나누는 문재인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2018.06.22)(자료:AFP/NTB Scanpix by Sergei Karpukhin)

동아시아철도공동체에는 중국과 몽골도 포함된다. 특히 문 대통령은 “다자체제를 통해 동북아의 평화체제를 만들고, 경제적인 공동교류, 특히 중국이 역점을 두고 있는 일대일로 사업을 통해 경제적 상호의존도를 높여나가는 과정이 중요하다”며 중국의 역할을 주문했다.

동북아 평화와 공영이라는 목표를 향한 한국의 미래 비전인 ‘신북방정책’에 대응하는 주변국 정책으로는 러시아의 ‘신동방정책’,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이 있다. 일본의 ‘8대 분야 경제협력’과 몽골의 ‘발전의 길 이니셔티브’도 빠질 수 없다.

주변국과 미래 비전을 공유함으로써 동북아 다자평화안보체제 구축을 가속화하고, 동시에 동북아 다자평화안보체제 구축을 통해 신경제지도를 그리려는 문 대통령의 의중이 읽히는 대목이다.

7박9일 유럽 5개국 순방의 포인트

다자안보협력체 논의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구소련이 해체되기 직전이던 지난 1989년, 방한한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노태우 대통령과 함께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체 창설에 공감한 바 있다.

이후 비공식 다자기구들이 생겨났고,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아세안안보포럼(ARF) 등 동아시아의 다자기구는 살아남았지만, 현재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문 대통령의 동북아 다자평화안보체제가 중국과 러시아의 지지를 받는 배경은 무엇일까? 중국 왕이 외교부장의 언급(中國新聞網,09.28)에 답이 있다.

“현 시점에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가속하려면 안보리가 명확하고 일치된 신호를 보낼 필요와 책임이 있다. (중략) 안보리는 국제적인 보장을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핵심은 ‘북한의 체제 보장’에 대한 주변국 보증이고, 미국의 일방주의를 견제하는 완충장치로써 동북아 다자평화안보체제가 필요하며,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써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프랑스 국빈 방문 도중 정상회담을 위해 만난 문재인 대통령과 마크롱 대통령(2018.10.16현지시간)(자료:UPI by David Silpa)
프랑스 국빈 방문 도중 정상회담을 위해 만난 문재인 대통령과 마크롱 대통령(2018.10.16현지시간)(자료:UPI by David Silpa)

이 대목에서 왕이 외교부장이 유엔안보리의 '일치된 신호와 책임‘을 거론한 것은 매우 큰 의미를 가진다. 동북아 다자평화안보체제를 견인하는 조건에는 북한의 체제 보장에 대한 주변국 보증뿐 아니라, 남북경협, 더 나아가 북한개방을 위한 대북제재 해제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미・영・중・러・프) 중 미국과 중국, 러시아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미・영 對 중・러 구도다. 이 구도는 대북제재 (일부)해제를 두고도 유효한 전선이다.

문 대통령이 대북제재 (일부)해제와 관련,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중 미국 다음으로 설득할 대상은 영국보다 프랑스다. 이것이 이번 유럽 5개국 순방길에 프랑스를 첫 기착지로 선택한 배경으로 지목되는 이유다.

동북아 다자평화안보체제 구축을 위해 해결해야 할 사안들

종전선언으로 출발해 핵・미사일 리스트 신고와 사찰 등 북한 비핵화 조치 → 대북제재 (일부)해제 → 남북경협 → 평화협정 → 동북아 다자평화안보체제로 이어지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숱한 난관을 극복해야 가능하다.

여타 과정도 순탄치 않겠지만, 특히 동북아 다자평화안보체제 구축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강하다.

① 복합적 대립구조에 대한 고민

국제관계 전문가들은 동북아 다자평화안보체제가 1975년 창설된 유럽안보협력회의를 벤치마킹한 것으로 본다. 유럽안보협력회의가 냉전 당시 유럽의 안정과 평화에 크게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당시의 유럽과 지금의 동북아는 다르다.

1970년대 유럽에는 동서 간 단순대립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동북아는 이념과 경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념적으로는 한미동맹과 미일동맹, 북중동맹, 북러신우호조약이 버티고 있다. ‘한・미・일 對 북・중・러’ 구도가 여전히 탄탄하다.

경제적으로는 미국과 중국이 세계패권을 두고 무역전쟁을 벌이는 가운데, 한중협력과 일중협력이 증대되고 있다. 한・중・일은 역사를 두고 끊임없는 갈등을 겪고 있고, 일・중・러는 영토문제로 시끌벅적하다. 그 와중에 미국까지 영토분쟁에 끼어들려는 형국이다.

복잡하다. 유럽안보협력회의 같은 방식으로는 이처럼 복합적인 대립구조를 하나로 묶어서 해결해 내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당사국들의 머리가 제각기 복잡해지는 이유다.

② 동맹 약화에 대한 우려

동북아 다자평화안보체제가 구축된다고 가정하면 문제는 조금 더 복잡해진다. 다자에 의해 평화체제가 구축될 경우, 미국과 중국, 러시아는 한미동맹과 북중동맹, 북러신우호조약이 약해지면서 지금까지 남북한에 유지해왔던 영향력을 잃을 것을 우려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차세대전투기로 선정해 도입한 F35A Fighter ⓒ스트레이트뉴스
한국이 차세대전투기로 선정해 도입한 F35A Fighter ⓒ스트레이트뉴스

당장 예상 가능한 피해는 남북이 군사적 긴장 완화에 이어 군축에 합의할 경우, 미국과 중국, 러시아의 무기 판매에 상당한 피해가 있을 것이란 전망이다. 또한 대북제재의 일부 또는 전부 해제는 미국과 일본 등 서방세계의 북한 진출을 의미하고, 이는 중국의 기회 박탈로 이어질 수 있다.

대북제재 해제는 북한을 향한 미국과 중국의 구애를 불러올 것이다. 북한을 둘러싼 G2의 전략 싸움은 불 보듯 뻔하다. 그 와중에 북한은 등거리외교로 몸값을 끌어올리려 할 것이다. 결국 중국의 민감한 대응은 평화 프로세스에 해로울 수 있다.

③ 주한미군 철수 문제 부상 가능성

문 대통령은 주한미군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밝혔고, 김 위원장도 이에 동의한 상태다. 그러나 종전선언 직후 주한미군 철수 문제가 급부상할 수밖에 없다. 대북 억제가 주요 임무였던 유엔사령부와 주한미군의 역할이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특히 국내 정치와 깊이 관련돼 있다. 판세 변화를 간절히 원하는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 보수 야권이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지지율 회복의 지렛대로 삼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역시 문재인 정부가 껴안고 가면서 포괄적으로 해결해야 할 사안이다.

동북아 다자평화안보체제 구축의 6개 당사국 ⓒ스트레이트뉴스/그래픽:김현숙
동북아 다자평화안보체제 구축의 6개 당사국 ⓒ스트레이트뉴스/그래픽:김현숙

한반도 평화 로드맵이 구체적으로 밝혀진 지금, 과제는 더 많아졌다. 평화 프로세스의 첫 관문인 종전선언, 특히 북미 간 종전선언조차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다. 동북아 다자평화안보체제로 가는 길은 아예 까마득하다.

그러나 ‘선 핵 폐기 후’라는 지금까지의 전제가 평화 프로세스에서 사라진 것만으로도 큰 성과를 이뤄낸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동북아 다자평화안보체제를 종착지로만 보지 않고, 북한 비핵화를 견인할 도구로도 활용하고 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각국에 미래 비전까지 제시해 놓았다.

올해 초 남북 양자형으로 시작해 3자 구도로 옮아갔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무사히 다자체제로 안착하는 데 결코 빠질 수 없는 주제가 있다. 각국의 경제적 이익이다. 철학자 칸트는 저서 ‘영구평화론’에서 평화 구조화에 대해 이렇게 썼다.

“무역을 하는 국가 사이에는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적다. (중략)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 사이에는 안보공동체를 쉽게 만들 수 있다. 궁극적인 평화 구조화는 집단적인 안보체제를 통해 가능하다.”

평화를 구조화하기 위해 칸트가 중점을 둔 것은 집단 안보체제이고, 조건은 시장경제와 무역이다. ‘냉전식 동맹안보’에서 ‘경제적 이익에 바탕을 둔 다자안보’로 이행할 때 보다 쉽게 평화를 구조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반도의 오늘과 딱 맞아떨어진다. 중국과 러시아가 문 대통령의 동북아 다자평화안보체제에 동의한 지금, 공은 ‘냉전식 동맹안보’의 효율성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미국에 넘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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