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이트뉴스 김현진기자] 한국지엠의 연구개발(R&D) 법인 분할 사태를 놓고 '먹튀'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에 대한 책임론이 커지고 있다. 자신의 구조조정 원칙까지 어기며 공적자금을 투입한 한국지엠의 경영정상화 작업이 오히려 부메랑으로 날아온 양상이다.
지난해 9월 취임한 이동걸 회장이 취임 일성으로 내세운 구조조정 원칙은 '이해당사자의 고통분담'과 '부실기업의 독자생존'으로 요약된다. 산은의 지원에 기대기 전에 이해당사자들의 뼈를 깎는 노력으로 부실기업을 독자생존이 가능한 수준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계획이었다.
이런 원칙은 금호타이어와 STX조선 처리 과정에서 일정 부분 성과를 거뒀다. 지난 2013년부터 채권단 관리하에 8조원의 혈세가 투입되고도 독자생존하지 못한 STX조선에 이동걸 회장은 '더 이상의 자금 투입은 없다'며 노사를 설득했고 결국 STX조선은 고정비를 감축시켜 법정관리를 면했다.
해외 매각을 둘러싸고 오랜 기간 노사 갈등을 보인 금호타이어에 대해서도 이동걸 회장은 중국 더블스타에 매각되지 않으면 법정관리에 들어갈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노사를 설득, 극적 합의를 이끌어낸 바 있다.
문제는 이러한 구조조정 원칙이 한국지엠에는 적용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올해 초부터 제너럴모터스(GM)와 협상을 시작한 산은은 우여곡절 끝에 지난 4월 경영정상화 협약을 체결하며 향후 10년간 국내시장 철수를 막는 것으로 결론을 맺는 듯 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한국지엠의 부실원인도 제대로 밝혀내지 못한 채 당시 7억5000만달러(약 8100억원)에 달하는 공적자금 투입을 결정해 논란이 됐다. 부실기업에 혈세 투입은 없다는 원칙을 어긴 것이다.
이동걸 회장은 또 "GM과 우리가 똑같은 조건으로 (자금투입을) 한다는 것이 마지노선"이라고 했던 원칙도 지키지 못했다. 산은은 7억5000만달러 전액을 신규 자금출자로 지원한 반면 GM은 36억달러를 대출 방식으로 투입했다. 산은이 투자한 자금은 출자전환이라 변제시 후순위로 밀려난다.
한국지엠에 대한 지분율을 지켜 비토권(거부권)을 얻기 위한 선택이었다고는 하지만 GM의 상황이 개선되지 않아 10년 뒤 한국시장에서 철수한다면 산은의 지분은 유명무실해 질 수 있다는 시각이 대체적이다.
그러나 6개월이 지난 지금은 8100억원의 혈세를 투입하고도 GM에게 뒤통수를 맞게 된 가성비 나쁜 협상이 되고 말았다. 협약 체결 당시 한국지엠의 법인분할 의도를 파악하고도 이를 막을 장치를 마련하지 않았았기 때문이다. 결국 자금투입 조건을 GM보다 후퇴시키면서까지 지켜낸 비토권도 결과적으로 무용지물이 됐다.
물론 한국지엠의 법인분리가 국내시장 철수를 위한 사전포석이라고 100% 확신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번 사태를 통해 GM의 일방독주에 손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한 산은의 무능함이 고스란히 드러남에 따라 이 회장의 리더십에도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리더십에 입은 상처를 앞으로 만회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당장 한국지엠의 법인분할 사태는 산은에게 불리하게 돌아갈 공산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동걸 회장이 해결해야 할 다른 기업 구조조정도 상황이 녹록치 않는 실정이다.
호반건설로 팔려다가 모로코 사피 복합화력발전소 부실 문제가 불거지며 협상이 깨진 대우건설은 몇년 간은 매각이 힘든 상황에 처했다. 대우건설 주가가 적정 매각가 수준을 크게 밑돌고 있고 잠재적 매수자도 나타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대우조선해양 역시 지난 3년간의 수주 부진과 낮은 선가로 내년부터는 적자가 예상되고 있다. 이동걸 회장이 국감에서 "애초에 인수하지 말았어야 할 회사"라고 말한 KDB생명은 산은조차 내다버린 회사로 평가됨에 따라 매수자가 나타날 가능성은 더 낮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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