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에 나타난 자본주의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은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자본가들의 무한 이윤획득에 의해 세계 경제는 불균등하고 불공정해지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강대국의 힘이 거세지면서 각종 모순적 요소가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을 알기 위해선 현대 경제의 중요한 쟁점들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 쟁점들의 핵심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경제학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과 논쟁을 우리가 알아야 할까? 몰라도 무방한 것들이 있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 경제학 논쟁이 경제 정책으로 이어지고, 그 정책은 보통 누군가에게는 유리하고 누군가에게는 불리할 뿐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스트레이트뉴스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경제의 주요 요소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본지 선임기자 현재욱의 저작인 「보이지 않는 경제학」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경제로 세상을 이해하자

왜 경제학에는 그렇게도 학파가 많은가? 얼른 꼽아 보아도 고전주의학파, 신고전주의학파, 새고전파, 마르크스학파, 케인스학파, 네오케인스학파, 슘페터학파, 오스트리아학파, 행동주의학파, 시카고학파, 구제도학파, 신제도학파, 공공선택학파 등 열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다. 이 모든 학파의 이론을 다 알 필요는 없다.

애덤 스미스, 카를 마르크스, 앨프리드 마셜, 존 메이너드 케인스, 밀턴 프리드먼 등 경제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몇 사람의 핵심 사상을 이해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무엇보다 그 많은 논쟁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을 기억해 두자.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논쟁은 계속될 것이다. 철학이 모든 학문의 아버지라면 철학의 본령을 지켜야 한다. 철학은 답이 나와도 계속 그 답을 의심하는 학문이다.

어느 학파의 주장을 따를 것인가는 지적 능력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대부분의 사람은 각자 처한 입장에 따라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 그럼에도 경제학은 이 세상을 이해하는 데 길잡이 역할을 한다. 그레고리 맨큐는 그의 저서인 『맨큐의 경제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세 가지로 정리했다.

① 경제학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② 경제학을 공부하면 경제활동에 더 지혜롭게 참여할 수 있다.
③ 경제학을 공부하면 경제정책이 달성할 수 있는 것과 그 한계를 이해하게 된다.

첫 번째는 내가 경제를 공부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인간이라면 피치 못할 질문이다. 그런데 이 물음의 답을 좇다 보면 어느새 더 근원적인 질문으로 돌아가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이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 경제학은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에 대해 쓸 만한 단서와 꽤 괜찮은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두 번째 효용은 장담할 수 없다.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와 케인스를 제외하면 경제학자 가운데 주식투자로 돈을 번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파생금융상품에 대한 연구로 노벨 경제학상을 공동으로 수상한 로버트 머튼Robert Merton과 마이런 숄스Myron Scholes는 한 헤지펀드 회사의 이사직에 함께 취임했는데, 그 회사는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때 파산하고 말았다.

월가에는 천재적인 금융 전문가와 아이비리그 출신 고학력자들이 차고 넘친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월가 전체가 거의 망할 뻔했다. 침팬지와 앵무새가 주식 전문가와의 가상대결에서 더 높은 수익을 올린 사례도 있다.

세 번째로 경제정책의 한계, 이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정책의 한계를 넘어서 그 해악과 숨은 의도까지 간파할 수 있어야 한다. 버스요금이 얼마인지도 모르는 자들이 만드는 노동정책이 남구로역 인력시장을 기웃거리는 나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새로운 교육정책이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정책 입안자들이 어느 편에서 정책을 설계하고 집행하는지, 왜 정부는 인민대중 다수가 반대하는 정책을 밀어붙이는지, 그 정책으로 인하여 누가 이득을 보고 누가 손해를 보는지, 그 정책을 선택하는 대가로 포기해야 하는 기회비용은 무엇인지, 우리 사회가 가진 자원은 공평하게 분배되고 있는지 두 눈 똑바로 뜨고 감시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권력과 언론을 틀어쥔 자들이 특정 계층을 위한 정책과 법령을 밀어붙이는 모습을 볼 때마다 늘 이런 의문이 떠오른다. “우리가 알고 있어도 저들이 저럴까?” 노동자를 쥐어짜고 노동조건을 더욱 열악하게 만드는 법안을 내밀면서 ‘노동자니 법안 개정을 지지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을까?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고 말한 동료 정치인을 배신자로 몰아붙이면서 담뱃값을 왕창 올릴 수 있을까? 경제혁신3개년계획이 성공했다고 자화자찬하는 동시에 같은 입으로 경제가 위기라고 국민을 겁박할 수 있을까? 오천만 시민이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훤히 알고 있어도 저들이 저럴수 있을까?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몇 개의 법안으로 한 국가의 경제가 살아난다고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1인당 GDP 4만 달러 시대를 앞당기려면? 국민소득촉진법을 제정한다. 방만한 재정지출을 축소하려면? 정부부채의 한도를 법으로 정한다(실제로 미국에는 이런 법이 있다). 부동산거품의 붕괴를 막으려면? 거품붕괴금지법을 만든다. 선출직 공직자의 공약 파기를 막으려면? 공약파기가중처벌법으로 엄하게 처벌한다. 세계 최고의 자살률을 줄이려면? 자살금지령을 대통령령으로 시행한다.

법은 본질적으로 어떤 행위를 ‘못하게’ 하는 속성을 갖고 있다. 금제하고 처벌하는 강제력을 바탕으로 브레이크 역할을 하는 것이 법이다. 따라서 어떤 법을 만들 때 무엇을 ‘잘하게’ 하는 기능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예를 들어 학생들이 시험을 치를 때 부정행위는 법으로 단속할 수 있지만 법으로 공부를 잘하게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

국가 경제는 그 자체로 총체적이고 복합적인 문제일 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와 긴밀하게 얽혀있어서 국내법 한두 개 바꾼다고 해서 즉각 달라지지 않는다. 경제가 그렇게 단순한 문제였다면 멕시코는 벌써 미국을 따라잡았고 아르헨티나는 진즉에 독일 같은 경제 강국이 되었을 것이다. 노동자를 맘대로 해고할 수 있고, 노동자의 임금을 국가가 정하고, 불평하는 노동자는 언제든 수용소에 보낼 수 있으며, 게다가 국정교과서까지 채택한 북한은 왜 저 모양이란 말인가?

서두에서 이야기했듯 호모 사피엔스는 지상의 생존경쟁에서 그 어떤 종보다도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먹이사슬의 최상위를 점유한것에 그치지 않고, 우주적 시각으로 지구 생태계를 내려다보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 인간은 지표면에서 벌어지는 사회현상조차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시야를 가로막은 산등성이를 수없이 넘어야 한다. 그 산은 편견의 산일 수도 있고 오독誤讀과 무지無知의 산일 수도 있다. 하나의 산을 넘을 때마다 우리는 눈앞에 펼쳐진 새로운 풍경에 감탄하거나 분노할 것이다. 그리고 왜 인간의 삶에 앎이 필요한지 절감하게 될 것이다. <계속>

※ 이 연재는 스트레이트뉴스가 저자(현재욱)와 출판사(인물과사상사)의 동의로 게재한 글입니다. 무단 도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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