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뉴욕 팰리스호텔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의 고위급 회담 결과를 설명하고 있는 모습.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뉴욕 팰리스호텔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의 고위급 회담 결과를 설명하고 있는 모습.

[스트레이트뉴스 고우현기자] 8~9일 뉴욕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폼페이오-김영철 북미 고위급회담이 갑작스럽게 연기되면서 핵협상이 낙관에 봉착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미국 언론들은 회담 연기가 북한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면서 핵신고와 제재완화를 둘러싼 양국의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은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7일(현지시간) 양국간 외교가 '모래수렁에 빠졌다'고 전했으며, 워싱턴포스트(WP)는 실무 수준의 협의가 진전되지 못한 것이 회담 연기 이유라고 지적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북한이 회담을 연기했다고 전하고 북한이 제재 완화를 얻어내기 위해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무부와 청와대는 이번 회담 취소가 일정상의 문제일 뿐이라고 강조하면서 북미 비핵화협상의 동력이 약화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것을 경계했다. 다만 고위급회담 일정이 조만간 다시 잡히지 않는다면 비관론이 더욱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북한이 미 중간선거 이후 북미 협상 전략을 재정비하는데 필요한 시간을 벌기 위해 회담을 연기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북미 고위급회담 일정이 잡히는 과정을 살펴보면 폼페이오 장관이 고위급회담 개최를 서둘렀고 북한은 미국의 채근에 마지못해 회담 개최에 동의했다가 선거 결과가 나온 직후 회담을 연기하자고 제안한 것으로 파악된다. 김영철 등이 베이징발 미국행 비행기편을 예약했다가 취소한 사실은 이를 뒷받침하는 정황이다. 

폼페이오 장관이 북미 고위급회담을 처음 언급한 것은 지난달 중순께로, 10월 안에 고위급회담을 열자고 북한에 공개적으로 제안했지만 북한이 호응하지 않으면서 회담 개최 일정이 두세차례 미뤄졌다. 미 국무부는 최종적으로 선거일 하루전인 5일에서야 8일과 9일 뉴욕 개최 일정을 확정 발표했는데 결국 하루만에 취소된 것이다. 

폼페이오 장관이 회담 개최를 서두른 것은 지난달 6일 평양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나눈 대화에 바탕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폼페이오 장관에게 분명한 비핵화 의지와 함께 풍계리 핵실험장을 비롯한 일부 시설에 대해서는 제재완화 이전이라도 사찰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김 위원장은 3차 남북정상회담에서도 이같은 뜻을 밝힌 바 있다. 다만 김 위원장은 비핵화를 위해 북미간 신뢰구축이 중요함을 누누이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폼페이오 장관은 '제재완화 이전 사찰'을 허용한 김 위원장의 약속을 조속히 실현하기 위해 스티브 비건 특별대표-최선희 부상 실무회담을 서둘렀지만 북한은 호응하지 않았다. 결국 폼페이오 장관은 자신이 직접 나서기로 하고 고위급회담을 추진했다가 이마저도 무산됐다.

폼페이오 장관이 북한과 실무회담 및 고위급회담을 서두르는 것은 '실질적 비핵화 진전'이 이뤄져야 협상이 동력을 잃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미 국무부가 고위급회담 연기를 일정상의 문제로 설명하고 곧 다시 일정을 잡을 것이라고 밝힌 것은 미국이 여전히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약속을 이행할 것을 기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북한은 폼페이오-김정은 면담 이후에 여러 경로를 통해 미국의 대북 제재 완화를 촉구해왔다. 김 위원장이 나서서 대북제재를 직접 비판하는가 하면 외무성 관리의 기고문에서는 중단한 핵개발의 재개를 암시하기도 했다. 

이는 양측이 폼페이오-김정은 면담 결과를 달리 해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폼페이오 장관은 김 위원장이 풍계리 핵실험장 등에 대한 사찰 허용을 약속한 것으로 보는 반면, 북한은 이에 동의하지 않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이에 따라 미 국무부나 청와대의 기대와 달리 고위급회담이 상당히 늦춰질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북한은 미 중간선거가 북미 핵협상에 미칠 영향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탄핵문제가 불거질 수도 있는 상황에서 비핵화를 진전시키는 것이 위험하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크다. 미 국내정치가 혼란에 빠지면 대북정책 방향도 종잡을 수 없게 될 우려가 크다고 보는 것이다. 과거 미 중간선거에서 집권 여당이 의회 지배력을 상실한 경우 북미 핵협상이 어려움을 겪었던 전례가 두 차례나 있었다.  

북한은 당분간 상황을 관망하면서 미 국내정치의 향배를 주시할 전망이다. 북한이 폼페이오-김정은 면담 이전부터 갑작스럽게 제재완화를 강조하기 시작한 것도 관망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선(先) 대북제재 완화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시간을 벌기 위해 의도적으로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다.

결국 북미간 비핵화 협상은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서서히 동력을 잃어갈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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