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에 나타난 자본주의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은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자본가들의 무한 이윤획득에 의해 세계 경제는 불균등하고 불공정해지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강대국의 힘이 거세지면서 각종 모순적 요소가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을 알기 위해선 현대 경제의 중요한 쟁점들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 쟁점들의 핵심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경제학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과 논쟁을 우리가 알아야 할까? 몰라도 무방한 것들이 있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 경제학 논쟁이 경제 정책으로 이어지고, 그 정책은 보통 누군가에게는 유리하고 누군가에게는 불리할 뿐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스트레이트뉴스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경제의 주요 요소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본지 선임기자 현재욱의 저작인 「보이지 않는 경제학」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부의 기준은 상황에 따라 다르다

해리 아트만과 낙타는 길을 잃었다. 병에 걸린 안내인이 집으로 돌아가고부터 모든 것이 엉망으로 꼬였다. 예정대로라면 벌써 세 번째 거점에 도착했어야 하는데, 90시간 넘게 모래벌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온 길을 되짚어 돌아가는 것조차 불가능해 보인다.

여행은 성패를 떠나서 죽고 사는 문제가 되었다. 해는 천천히 지평선 너머로 기울고 있다. 해리는 낮 동안 따뜻하게 달궈진 바위를 찾아 텐트를 쳤다. 견과류와 통조림으로 간단하게 요기를 마친 그는 랜턴을 켜고 혼란에 빠진 머릿속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첫째 목표는 살아남는 것이다. 둘째 목표도 살아남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짐의 무게를 최소화하고 꼭 필요한 것만 갖고 간다. 해리는 매트리스 위에 그가 가진 모든 물건을 늘어놓고 목록을 작성해 보기로 했다.

사흘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낙타 한 마리, 가죽주머니에 담긴 물 2리터, 참치통조림 5개, 닭고기통조림 2개, 소고기육포 약 300그램, 땅콩 한 봉지, 20개입 비스킷 한 봉지, 초콜릿 세 조각, 껌 한 통, 칭다오 캔 맥주 2개, 약간의 설탕과 소금. 여기까지 썼을 때 해리는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함을 깨달았다. 낙타는 열흘 정도는 버텨줄 것이다.

식량은 아무리 아껴 먹어도 나흘이면 바닥날 것 같다. 분말수프를 끓이려면 물이 필요하므로 물도 넉넉하다고 볼 수 없다. 그 전에 그와 낙타를 곤경에서 구해 줄 사람을 만나야 한다.

지친 낙타를 위해 짐의 무게를 최대한 줄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막상 목록을 들여다보니 버릴 것이 없어 보인다. 배터리가 떨어진 휴대전화를 생존목록에서 제외하는 데는 긴 고민이 필요하지 않았다. 캐논 카메라와 렌즈 한 세트는 어찌할까? 값으로만 따지면 그가 가진 물건 중에서 가장 비싼 물건이다. 아마 다른 모든 물건에다 낙타 한 마리를 얹어도 카메라 한 대 값에 못 미칠 것이다.

그러나 목숨보다 귀한 것은 없다. 그는 눈물을 머금고 카랑해 마지않는 최고급 람보르기니가 옆에 있다 해도 자갈투성이 사막에서는 차라리 굶주린 낙타 한 마리가 더 나을 것이다. 애덤 스미스의 견해대로, 타타르족에게는 가축이 부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뉴기니의 부족사회에서 부를 가늠하는 전통적인 기준은 보유한 돼지의 머릿수였다.

해리는 카메라 삼각대의 다리 하나를 부러뜨려 가볍고 튼튼한 지팡이를 만들었다. 재산 목록에서 카메라 삼각대가 지워지고 지팡이 하나가 추가되었다. 지금 해리에게는 삼각대의 가치보다 지팡이의 가치가 더 높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부가 증가했다고 할 수 있다.

짐을 추스르고 떠난 지 닷새째 되는 날, 해리와 낙타의 걸음발은 눈에 띄게 느려졌다. 해리는 바위산 뒤편에서 어슬렁거리는 늑대 무리를 보았다. 낙타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려 하지 않았다. 윈체스터 연발소총과 실탄 한 상자를 버린 것은 잘못된 판단이었음이 분명하다. 혹시 몰라 열 발의 총알을 남겨 두었지만 쓸모가 없어 보인다. 인간의 선택이 항상 합리적인 것은 아니다.

낙타와 해리는 거친 땅에 주저앉아 마지막 식수인 캔 맥주를 나누어 마셨다. 낙관적인 해리는 주어진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해 보기로 했다. 늑대가 돌아다닌다는 것은 이곳도 제법 살 만한 곳이라는 이야기 아닐까? 어쩌면 근처에 늑대가 좋아하는 양이나 염소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양떼를 몰고 다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해리는 텐트를 치고, 불에 탈 만한 것을 모조리 긁어모았다.

때에 찌든 속옷과 양말, 빈 플라스틱 통 따위를 쌓고 책과 수첩을 올려놓았다. 낙타 등에 얹었던 길마(짐을 실을 때 쓰는 안장)도 땔감으로 보태졌다.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해리는 남은 휘발유를 모두 붓고 불을 질렀다. 해리는 시계를 보며 정확히 1분 간격으로 총알을 한 발씩 불 속에 던져 넣었다. 총성이 잇달아 울리고, 화약 냄새를 맡은 늑대 무리는 모두 사라졌다.

다음 날, 길고 검은 털로 뒤덮인 개 한 마리가 모래언덕 위에서 컹컹 짖었다. 곧이어 말을 탄 사내들이 언덕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사막 한가운데서 부의 태반을 태워버린 미국인을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계속>

※ 이 연재는 스트레이트뉴스가 저자(현재욱)와 출판사(인물과사상사)의 동의로 게재한 글입니다. 무단 도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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