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 실증 연구, 의학 단독 영역 아닌 다제학 융복합 산물
치유농업, 연관산업 및 후방산업 포함한 시장 규모 5.4조 추정
유럽은 치유농업에 소득 보전해주고 공적보험(사회보험)과 연계
치유농업 발전, 인식 전환 및 부처 간 협업체계 구축 서둘러야
힐링산업협회에 사회적 혁신의 모티브 제공하는 역할 주문


[스트레이트뉴스=김태현 선임기자] ‘치유’로 번역되는 힐링(Healing) 또는 웰니스(Wellness)가 학계와 산업계의 화두로 급부상한 시대지만, 치유가 의료의 영역인지 힐링의 영역인지를 두고 부처 간 조율 또는 협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런 사정은 1, 2차산업에 머물다 3차산업으로 발돋움한 농업, 특히 치유농업 분야에서도 절실하다. 지난 7일 국회에서 ‘2018 힐링의 산업적 전망과 과제’ 정책세미나가 개최된 이후, 국내 치유농업의 주요 연구자인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김경미 박사(농업연구관)를 찾았다.

전북 완주군 이서면에 위치한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스트레이트뉴스
전북 완주군 이서면에 위치한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스트레이트뉴스

_치유농업을 알기 쉽게 간단히 정의하자면?

“일상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 그리고 정신질환자, 우울증 환자, 약물중독자, 학습장애자처럼 심신의 건강이 좋지 않아 사회적으로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치유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든 농업 활동을 말한다.”

_치유농업연구실은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

“농업진흥청에는 국립농업과학원과 국립식량과학원, 국립원예특작과학원, 국립축산과학원, 이렇게 네 개의 과학원이 있는데, 우리는 원예특작과학원 내 도시농업과에 속해 있다. 진흥청의 기본 미션인 ‘연구개발’ 및 ‘현장보급’에 따라 우리 연구실도 농업활동이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와 발현 메카니즘을 규명하고 있다. 질적 관리와 표준화, 치유농업 활동에 필요한 인프라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다.”

_치유농업의 법적 근거는?

“도시농업육성법에 정의돼 있고, ‘농업농촌및식품산업기본법’ 제43조 2항에도 ‘치유농업의 진흥’ 항목이 포함돼 있다.”

_시행하는 자격증제도는 있나?

“아직은 없다. 하지만 현재 힐링이나 치유와 관련된 민간 자격증이 무려 3,000여 개나 되고, 농업 분야에만도 800여 개가 있어서 거의 범람 수준이다. 수요자와 공급자를 잘 매칭(matching)시키고 건강한 시장이 만들어지도록 하려면 정부와 지자체의 개입이 필요하다. 치유농업은 일반 도시농업과 달리 전문가 개입이 필요한데, 농림부 등과 협의해서 전문 국가자격증제도를 추진하고 있다. 현재 민간에 ‘농촌교육농장품질인증제도’가 있다. 위생관리나 안전성, 서비스 수준, 운영자 마인드 등에서 잘 짜인 선도적 모델이라 향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농진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도시농업과 內 치유농업연구실의 김경미 박사(농업연구관) ⓒ스트레이트뉴스
농진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도시농업과 內 치유농업연구실의 김경미 박사(농업연구관) ⓒ스트레이트뉴스

_치유농업의 시장 규모는 얼마나 되나?

“2013년 추정치는 1조6,000억 원인데, 교육, 복지와 재활, 고용, 금융, 연구개발 같은 연관산업, 후방산업까지 고려하면 5조4,000억 원 규모로 추정된다. 내년에 정확한 실태조사를 할 예정이다.”

_치유농업 관련 예산을 요청했다가 심의에서 탈락했다고 들었다.

“그렇다. 국가 연구개발(R&D)은 국가과학기술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만 기재부에서 예산을 받을 수 있다. 이번에 농업의 치유 기능에 대한 효과를 검증하기 위해서 심의위원회 의료생명분과에 50억 원 규모의 예산을 요청했지만,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탈락했다.”

_탈락한 이유는 뭔가?

“심의 결과가 ‘이 분야는 농업에서 할 분야가 아니다’라고 나왔다. 의료 분야에서 해야 한다는 의미다. 치유라는 용어가... 치유농업은 의료를 보조하는 분야가 아니라 복지 기능을 포함하기 때문에 관련 분야를 치유농업이라는 범주로 한데 묶어서 바라봐야 한다. 치료와 치유는 다르다. 그런데 치유농업을 농업의 보조 기능 정도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있기 때문에 ‘왜 그쪽에서 하려고 하느냐’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아직 인식에 차이가 많다는 생각이다.”

_치유농업 태동기에 해외에서는 어땠나?

“거의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인식이 부족했던 탓에 이걸 어느 부서에서 주관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시비가 많았던 것이다. 그런데 치유농업 관계자들이 지역 단위 보건서비스를 개발하거나 할 때 의료인들을 참여시켜가면서 끊임없이 노력했고, 그 결과 국가 차원에서 ‘아, 이게 중요한 거로구나’ 하는 공감대를 얻을 수 있었다.”

미국 캘리포니아 윈냇카(Winnetka) 지방에 위치한 ‘킨드레드 스피릿 케어팜(Kindred Spirits Care Farm)’의 직원이 거위를 안고 있다. 이 케어팜은 치유 중심의 유럽식 그린케어(green care) 치유농장을 벤치마킹했다. ⓒ스트레이트뉴스
미국 캘리포니아 윈냇카(Winnetka) 지방에 위치한 ‘킨드레드 스피릿 케어팜(Kindred Spirits Care Farm)’의 직원이 거위를 안고 있다. 이 케어팜은 치유 중심의 유럽식 그린케어(green care) 치유농장을 벤치마킹했다. ⓒ스트레이트뉴스

_현재 유럽의 치유농업은 어떤가?

“네덜란드와 노르웨이, 이탈리아, 벨기에, 프랑스 등 유럽에서는 치유농업이 매우 활성화돼 있다. 치유농업을 공적보험(사회보험)과 연계시킨 국가도 많다. 예를 들어 벨기에 정부는 농가가 일정 기간 치유농업 관련 활동을 하면 소득까지 보전해 준다. 네덜란드의 경우에는 치유농장만 1,200여 개소인데도 신시장이 계속 생겨나면서 시장 규모가 커지고 있다. 실제 치유 효과는 말할 나위도 없다.”

_우리 치유농업을 활성화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자원 간 유기적인 연계가 필요하다. 일본을 예로 들면, 우리의 보건복지부에 해당하는 후생성과 농림수산성이 협업해서 농복연계사업을 추진, 장애인 재활훈련을 치유농업 영역에 포함시켰다. 이에 따라 사회복지기관과 농장은 장애인을 고용하고 재활훈련을 실시한다. 이런 농장을 ‘복지농원’이라 부른다. 우리는 장애인 재활훈련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시설 기준이 너무 복잡하고 엄격하다. 이걸 좀 완화시켜야 하고, 시설 지원 측면에서도 농림부와 고용노동부의 협업이 필요하다. 당연히 협업을 위한 연구개발도 절실하다. 국가가 전체적으로 융복합을 강조하고 있지만, 부처별 인식 정도가 다르고 성과압박도 있어서 쉽지 않다. 이 문제도 풀어가야 한다.”

_현재 우리나라 치유농장은 어디까지 와 있나?

“에코감귤교육농장, 참빛생태체험학교, 농부가나폴리농원, 물사랑교육농장 등 10여 곳에서 사회적 약자들과 학생, 일반인을 대상으로 각종 치유활동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시범사업을 하고 있다. 이제 시작단계다.”

_시민들의 인식 제고와 저변 확대가 중요해 보인다. 힐링산업적인 차원에서 상품화 연구도 하고 있나?

“현재 ‘부착형 화분’, ‘물 만드는 화분’, ‘치유농업 가상 사이버체험 프로그램’ 등 몇 가지를 연구하고 있다. 화분의 목적은 식물을 일상생활 가까이에서 접하도록 하는 것이다. 부착형 화분은 아래쪽에 서랍이 있어 수분 공급이 간편하고 화분 자체에 자석이 부착되어 있어 사무실 파티션, 철문 등에 손쉽게 부착할 수 있다. 공교육 시장에 이미 적용되고 있는 아이템인데, 디자인 고급화에 힘쓰고 있다.”

치유농업연구실 입구에 설치된 ‘부착형 화분’ ⓒ스트레이트뉴스
치유농업연구실 입구에 설치된 ‘부착형 화분’ ⓒ스트레이트뉴스
치유농업연구실 회의 공간 벽면에 설치된 ‘부착형 화분’ ⓒ스트레이트뉴스
치유농업연구실 회의 공간 벽면에 설치된 ‘부착형 화분’ ⓒ스트레이트뉴스

“물 만드는 화분은 업계의 기대가 상당한 아이템이다. 공공기관이나 호텔 로비 같은 데 가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풀이나 관목을 많이 볼 수 있다. 생물은 정기적으로 수분을 공급해야 하고 관리에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심지어 꽤 규모가 있는 종합병원들도 조화를 쓴다. 하지만 치유의 관점에서 보면 식물은 비용을 따질 수 없을 만큼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이 아이템은 공기 중에 있는 수분을 전기장치로 포집해서 식물에 제공하기 때문에 물을 줄 필요가 전혀 없다. 호텔과 종합병원뿐 아니라, 요양병원이나 요양원 등에 계시는 와병환자들의 심신 안정과 쾌적한 환경 조성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도시농업과 로비와 연구실 곳곳에 배치된 ‘물 만드는 화분’. 화분 하단부에 설치된 전기장치가 공기 중에 포함된 수분을 포집해 나무뿌리에 자동으로 공급하며, 화분 당 월 전기료는 600~800원 수준으로 매우 저렴하다. ⓒ스트레이트뉴스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도시농업과 로비와 연구실 곳곳에 배치된 ‘물 만드는 화분’. 화분 하단부에 설치된 전기장치가 공기 중에 포함된 수분을 포집해 나무뿌리에 자동으로 공급하며, 화분 당 월 전기료는 600~800원 수준으로 매우 저렴하다. ⓒ스트레이트뉴스
타이머와 결합해 소형 ‘물 만드는 화분’의 최적 수분 공급 주기를 실험하는 모습 ⓒ스트레이트뉴스
타이머와 결합해 소형 ‘물 만드는 화분’의 최적 수분 공급 주기를 실험하는 모습 ⓒ스트레이트뉴스

“키넥트라고 이름 붙인 치유농업 가상 사이버체험 프로그램은 게임에 중독된 아이들을 위해 연구하고 있는 아이템이다. 작물을 키우고 재배하는 등 치유농업을 사이버상에서 체험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일본이나 유럽에 이미 등장한 동물로봇과 유사한 개념이라고 보면 된다. 지금은 동작인식프로그램으로 구성돼 있어 상용화까지는 좀 멀지만, 연구가 계속되고 4차산업 수준의 가상현실까지 접목된다면 상당한 치유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치유농업 가상 사이버체험 프로그램 중 ‘향기에 따른 뇌파 및 심박변동성 측정’ 연구실 ⓒ스트레이트뉴스
치유농업 가상 사이버체험 프로그램 중 ‘향기에 따른 뇌파 및 심박변동성 측정’ 연구실 ⓒ스트레이트뉴스
치유농업 프로그램의 효과를 측정하기 위해 전북 순창군 소재 ‘예담솔농장’의 만성질환자들을 대상으로 뇌파를 측정하는 모습(자료:치유농업연구실) ⓒ스트레이트뉴스
치유농업 프로그램의 효과를 측정하기 위해 전북 순창군 소재 ‘예담솔농장’의 만성질환자들을 대상으로 뇌파를 측정하는 모습(자료:치유농업연구실) ⓒ스트레이트뉴스

_우리 치유농업의 미래는?

“자연으로 갈 수밖에 없다.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는 것은 모두의 지향점이고, 자연을 벗어나서는 거기 도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치유농업도 그중 하나다. 국민들의 건강 증진이 목표이니만큼, 네덜란드나 이탈리아처럼 범부처 협업 국민건강증진프로젝트를 시작하자고 이미 제안해 놓은 상태다. 보건의료계, 고용계, 노동계 등과의 협업이 쉽지는 않지만, 노력한다면 많은 부분을 치유농업에 담아낼 수 있다고 본다. 작년까지 치유농업 도입단계가 끝났고, 올해부터 2022년까지는 정착단계인데, 치유농업 세부 분야별 선도 모델들이 등장하고 있는 만큼, 10년 후면 우리도 누군가의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_지난 7일 국회에서 열린 ‘2018 힐링의 산업적 전망과 과제’ 정책세미나에 참여해 주제발표를 했는데, 마지막으로 힐링산업협회에 당부하고 싶은 말은?

“힐링산업협회는 박람회를 열어 상품을 전시하고 발전 방향을 모색하려고 관련 세미나를 개최한다. 힐링 관련 산업을 하나로 묶어내고자 하는 매우 좋은 시도들이다. 그것도 좋지만, 연구자의 입장에서 한 가지 요청하자면, 거기에다가 사회적인 혁신의 모티브를 제공하는 역할도 담당해줬으면 한다.”

영국 정부는 치유농업계획에 따라 관련 기관 및 단체를 지원한다. 사진은 한 치유농장에서 동물을 돌보며 심신의 안정을 찾는 가족의 모습(자료:carefarminguk) ⓒ스트레이트뉴스
영국 정부는 치유농업계획에 따라 관련 기관 및 단체를 지원한다. 사진은 한 치유농장에서 동물을 돌보며 심신의 안정을 찾는 가족의 모습(자료:carefarminguk) ⓒ스트레이트뉴스

영국은 국가가 나서서 치유농업계획을 수립하고 각 기관별 파트너십을 구축한다. 네덜란드는 치유농업법 아래 각종 치유농업 관련 활동을 국민건강보험과 연계하고, 노르웨이는 이미 구축된 정부부처통합위원회가 치유농업과 관련된 교육, 보증, 품질관리에 국가재정을 지원한다. 프랑스와 벨기에, 그리고 이웃 일본도 국가와 지방정부가 치유농업을 직접 챙긴다.

이들 국가들이 치유농업을 위해 협업체계를 구축한 이유는 간단하다. 지속 가능한 성장에는 부처 간 협업이 필수적이고, 치유의 관점에서 농업은 의료뿐 아니라 복지, 고용, 교육, 여행 등 관련산업과 융복합될 수 있으며, 실제 상당한 치유 효과도 거두고 있기 때문이다.

90년대 초반 농장 단위로 출발한 유럽과 달리, 우리나라 치유농업은 2013년 본격적으로 출발해 이제 시작단계에 불과하다. 유럽 각국에 설립된 치유농장만 해도 최소 133개소(아일랜드)에서 최대 1,200개소(네덜란드) 규모다. 그에 비해 우리는 10개소에서 시범사업을 하고 있는 수준이다.

치유농업이 의료 분야라면 보건복지부가, 치유고용이 노동 분야라면 고용노동부가, 치유여행이 관광 분야라면 문화체육관광부가, 치유교육이 교육 분야라면 교육부가 맡아야 하고, 그렇게 되면 치유, 즉 힐링이나 웰니스라는 개념은 물론이고, 세계적으로 5,000조 원을 향해 달려가는 치유 관련 시장 자체가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특히 치유농업은 유럽 각국에 엄연히 존재할 뿐 아니라, 날이 갈수록 중요성이 증대되고 있다. 결국 농업이 힐링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정부 각 부처 간 협업과 융복합 마인드에 의한 혁신이 필수다. 이제 막 걸음을 뗀 치유농업을 대하는 정부 각 부처의 인식 전환이 요구되는 이유다.
bizlink@straigh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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