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에 나타난 자본주의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은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자본가들의 무한 이윤획득에 의해 세계 경제는 불균등하고 불공정해지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강대국의 힘이 거세지면서 각종 모순적 요소가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을 알기 위해선 현대 경제의 중요한 쟁점들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 쟁점들의 핵심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경제학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과 논쟁을 우리가 알아야 할까? 몰라도 무방한 것들이 있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 경제학 논쟁이 경제 정책으로 이어지고, 그 정책은 보통 누군가에게는 유리하고 누군가에게는 불리할 뿐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스트레이트뉴스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경제의 주요 요소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본지 선임기자 현재욱의 저작인 「보이지 않는 경제학」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돈이 부의 전부인가?

지금까지 노동이 부의 원천임을 길게 설명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돈이 곧 부라고 생각한다. 금과 은만이 화폐였던 스미스 시대뿐만 아니라 단순한 종이쪽이 화폐 역할을 하는 현대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금고에 고액권이 잔뜩 들어있든, 은행 통장에 아라비아 숫자로 찍혀있든, 돈이 많은 사람은 부자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이것은 착각이다. 돈은 부와 일치하는 개념이 아니다. 인구 100명의 소국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곳은 외부 세계에서 완전히 고립된 사회다. 이 나라에서는 매년 쌀이 100가마 생산된다. 쌀 한 가마 가격은 1만 원이다. 그렇다면 화폐단위로 표시된 이 나라의 국내총생산은 100만 원이고, 1인당 소득은 1만 원이다. 어느 날 국왕은 화폐를 새로 찍어서 국민 모두에게 1만 원씩 나누어주었다. 이제 1인당 소득은 2만 원이 되었으니 모든 국민이 2배로 잘살게 되었을까? 그렇지 않다. 보유한 화폐는 2배가 되었지만 그 돈으로 구입할 수 있는 재화는 여전히 쌀 한 가마뿐이다. 쌀 한 가마 값이 1만 원에서 2만 원으로 올랐기 때문이다. 이 경우 부와 화폐는 일치하지 않는다.

돈은 매우 미묘한 존재이다. 차곡차곡 쌓인 돈뭉치를 보면 고체임이 확실한데, 흐름을 보면 액체 같기도 하고, 주식시장에서 하루아침에 수조 원이 증발하는 것을 보면 기체였나 싶을 때도 있다. 돈의 본질을 알면 경제를 반쯤 이해한 것이나 다름없다(이에 대해서는 제3장에서 집중적으로 다루기로 하자).

화폐를 부와 동일시하는 이유는 돈이 가진 구매력 때문이다. 다시말해 화폐를 언제든지 시장에서 필요한 재화나 서비스와 교환할 수 있다. 교환비율은 일정하지 않다. 화폐와 상품의 가치가 늘 변하기 때문이다. 원래 화폐는 재화와 재화의 원활한 교환을 돕기 위해 고안된 수단일 뿐이다. 그런데 그 놀라운 편리성과 마법 같은 교환능력에 힘입어 필요 이상의 권능을 지니게 되었고, 최종적으로 재화와 노동을 지배하는 위치에 도달했다. 결국 경제활동의 목표는 더 나은 재화와 서비스가 아니라 화폐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화폐와 부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화폐가 부 자체는 아니기 때문에 화폐의 증식을 국가의 정책목표로 삼아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어떻게든 달러만 벌어들이면 된다’라는 식의 생각은 매우 위험하다. 국가의 역량을 외화벌이에 집중하고 내수시장과 지역 농업을 돌보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런 정책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식량은 벌어놓은 달러로 사다 먹으면 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상기온과 자연재해로 전 세계의 곡물 생산이 급감하면 어디서 식량을 사올까? 그때 가서도 화폐가 곧 부라고 우길 수 있을까?

진정한 부는 재화와 서비스다. 질 높은 재화와 서비스가 풍부하게 공급되는 사회가 부유한 사회다. 재화와 서비스는 노동으로 만들어진다. 노동에 대해 충분한 보상을 하지 않으면 노동은 점점 품질이 낮은 재화와 서비스만 생산하게 된다. 아니면 대우가 더 나은 외국으로 옮겨간다. 다시 말해 노동을 천대하면 부가 떠날 것이다. 부가 떠나면 내수시장은 점점 더 위축되고, 다수의 노동자는 점점 더 구매력을 잃게 된다. 구매력이 줄어들면 중소기업이 고품질의 재화를 생산하려는 의욕을 상실하고, 결국 값싼 외국 제품이 국내시장을 채우게 된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대기업들은 부가 대한민국을 떠나는 것에 관심이 없다. 수출로 벌어들인 외화를 잔뜩 쌓아놓고 있기 때문이다. 돈은 해외시장에서 벌면 되고, 노동력도 해외에서 구하면 된다. 그들은 해외에 더 큰 시장이 있기 때문에 내수시장을 키울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대한민국의 대기업들은 수십 년간 국가의 부양을 받으며 성장했다. 지금은 국가를 부양해도 될 만큼 충분히 몸집이 커졌지만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는 데 익숙하다. 그래서 더 낮은 법인세, 규제의 완화 혹은 철폐를 요구한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는 자유주의의 원리에 위배된다고 주장한다. 효율성을 위해 형평성을 희생하는 것이 시장의 정의라고 말한다. 그들이 국내의 노동력에만 의존하고 국내시장에서 성장을 도모했던 시절에는 애국심이니 민족자본이니 하는 어설픈 담론을 갖다 붙여야 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도 없다. 그들의 눈에는 시장만 보이고 국가는 보이지 않는다. <계속>

※ 이 연재는 저자(현재욱)와 출판사(인물과사상사)의 동의로 게재한 글입니다. 무단 도용을 금합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스트레이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