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에 나타난 자본주의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은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자본가들의 무한 이윤획득에 의해 세계 경제는 불균등하고 불공정해지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강대국의 힘이 거세지면서 각종 모순적 요소가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을 알기 위해선 현대 경제의 중요한 쟁점들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 쟁점들의 핵심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경제학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과 논쟁을 우리가 알아야 할까? 몰라도 무방한 것들이 있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 경제학 논쟁이 경제 정책으로 이어지고, 그 정책은 보통 누군가에게는 유리하고 누군가에게는 불리할 뿐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스트레이트뉴스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경제의 주요 요소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본지 선임기자 현재욱의 저작인 「보이지 않는 경제학」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노동의 몰락

부의 원천인 노동이 천덕꾸러기가 된 것은, 노동을 ‘비용’으로만 간주하는 자본의 생리 때문이다. 생산활동에 참여한 사람은 ‘최종 생산물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 이것은 노동자의 권익을 정당화하는 합리적 근거이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최종 생산물에 대한 권리를 자본가가 독차지한다. 자본과 노동이 나누어 가져야 할 권리를 자본이 독점해 버리면 노동은 단순한 비용으로 전락한다. 노동이 비용으로 전락하면 사회 구성원들은 노동을 존중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인식은 자본가에게서 노동자에게로 확산된다. 결국에는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을 하찮게 여기고 돈벌이의 수단쯤으로 인식하게 된다.

노동자는 생산의 주체인가, 아니면 생산의 도구인가? 이는 단순한 이익분배의 문제를 넘어서 인권의 경계를 결정하는 중요한 논점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군인이라는 특수신분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군대를 ‘국방 서비스를 생산·공급하는 조직’이라고 정의할 때, 군인은 생산의 주체인가, 생산의 도구인가? 군인은 국방 서비스를 생산하는 노동자다. 그 서비스의 소비자는 일반 시민이다. 다시 말해 군인은 시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일을 하고, 시민은 안전 서비스를 제공받는 대가를 군인에게 지불해야 한다. 이것은 시장 논리로 볼 때 당연한 것 같은데 우리 사회는 국방 서비스를 시장에서 뚝 떼어내 신성불가침의 영역처럼 취급한다.

징병제를 실시하는 국가에서 군인의 인권은 제한되는 경우가 많다. 일단 신체의 자유를 일정 기간 박탈당한다. 군인에게는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일을 할 선택의 자유가 없다. 국가가 일방적으로 정한 복무규율을 지켜야 하고, 상급자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부상을 입거나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심지어는 사법부의 보호도 받지 못하고 국방부 소속의 군사법정에서 재판을 받는다.

이렇게 개인의 인권을 극단적으로 침해하는 제도가 정당성을 갖는 이유는 무엇인가?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인가? 공공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이유만으로 개인의 권리를 침해해도 된다면 그 사회는 민주적인 사회가 아니다. 징병제도가 최소한의 정당성을 갖는 이유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일정 기간 그 일을 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다시피 모두가 그 일을 하지는 않는다. 어쩔 수 없는 사유로 병역을 면제받는 사람은 다른 방식으로 국방 서비스를 생산하는 데 기여해야 공평하다. 만약 사회 구성원의 일부에게만 이런 불이익을 강요한다면 그들은 고대 사회의 노예와 무엇이 다른가?

고대 사회에서 노예는 가축과 비슷하게 취급되었다. 가축처럼 사고팔렸으며, 노예가 다치면 재산상의 손실로 간주했다. 기원전 1700년 무렵에 바빌로니아 사회에서 시행되었던 함무라비 법에는, “귀족이 평민이 소유한 노예의 눈을 쳐서 빠지게 하였거나 노예의 뼈를 부러뜨렸으면, 그 값의 2분의 1을 주인에게 물어야 한다”라는 조항이 있었다. 실명이나 골절은 노동력의 절반을 상실한 것으로 판단했다는 뜻이다. 노예와 가축은 생산의 주체가 아니라 생산의 도구다.

노동자를 노동력으로만 보면, 노동자에게서 노동만 남고 ‘사람’이 사라져 버린다. 군인을 병력으로만 볼 때 군번만 남고 인격이 지워지는 것과 비슷하다. 제복은 인격을 지우는 강력한 상징체계다. 색상과 디자인이 통일된 군복, 교복, 죄수복, 작업복은 그것을 입은 사람의 인격을 효과적으로 제거한다. 인격이 사라지면 노동은 비용이 된다. 

그때부터 노동은 수량으로 치환되고, 생산성으로 평가받고, 처벌과 보상으로 통제되는 관리대상이 되어버린다. 인격이 사라진 노동은 단지 노동시장에서 소비되는 소모품일 뿐이고, “노동능력이 떨어지면 쓰레기처럼 버려진다.” 그리고 “노동시장으로부터 벗어나는 순간 사회적으로도 ‘무용지물’ 취급을 당한다.”12 이쯤 되면 경제학은 ‘사람의 활동을 다루는 학문’이 아니라 ‘돈벌이의 효율을 높이는 기술’이 되어 버린다. <계속>

※ 이 연재는 저자(현재욱)와 출판사(인물과사상사)의 동의로 게재한 글입니다. 무단 도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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