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사찰 폭로 사건이 점입가경이다.

20일 오후 자유한국당에서 ‘김태우 청와대 전 특별감찰반원의 민간인에 대한 전방위 불법 사찰’ 운운하며,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등을 서울중앙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조국 수석, 박형철 반부패비서관, 이인걸 특감반장, 모 행정관, 김태우 전 특감반원은 직권남용, 임종석 실장은 직무유기 혐의이다.

6.25전 때 그랬다던가. 국군이 어느 마을에 입성하니까 마을주민들이 모두 태극기를 들고나와 환영했는데 나중에 집안을 조사해보니 인공기가 수북하게 나왔다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살기 위해서일 터이다.

70년대 베트남전쟁이 한참일 때, 마을에 숨어든 베트콩을 잡기 위해 온 마을을 불사르고, 어린아이까지 차례차례 총살해도 끝까지 누가 베트콩이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는 베트남 국민의 이야기가 새삼 떠오르는 건 무슨 이유일까.

예전 공무원들은 그랬다. 정권이 바뀌어도 겉으로는 나름의 정치적 견해를 드러내지 않았다. 공무원이라는 사명감이 밑바닥에 자리하고 있었음이다. 그러나 요즘 공무원들은 좀 다르다. 공무원들이 저마다 정치적 목소리를 숨기지 않는다. 드러내놓고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거나 지지 정당을 옹호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김태우 청와대 특별감찰반원 사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김태우라는 공무원은 상황에 따라 태극기를 들거나 인공기를 든 것이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본인이 지지하는 정치집단의 깃발을 준비해 놓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 여론조사 (리얼미터)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 여론조사 (리얼미터)

국민 사이에서는 폐기되었다는 첩보 보고서도 이미 자유한국당에 넘어가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이야기가 솔솔 나온다. 자유한국당에서는 사전에 이미 차례로 폭로할 것을 다 준비해 놓고, 겉으로 첩보보고서 폐기가 실정법 위반이니 뭐니 하면서 본인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하면서 검찰의 수사를 지켜보겠다는 태도로 청와대를 압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김태우의 일련의 행동들이 제3자의 개입으로 계획되거나 의도된 것이 아니고 자연발생적인 것으로 돼야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자칫 되치기 당할 수도 있다고 우려하는 것일 게다.

아무튼 자유한국당은 이번 사건을 호기로 삼고 나경원 원내대표를 위시로 청와대를 향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모습이다.

청와대 역시 김태우와 자유한국당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면서 '설전'이 회오리 현상이다.

사건 초반 청와대는 “이번 반부패비서관실 소속 ‘특별감찰반(이하 특감반)’ 사태를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 특감반원의 비위를 공개하지 않고 조용히 무마하던 과거 관행부터 개선해야 한다고 판단하였다”라며 “정치권과 언론의 의혹 제기 등 예상되는 정무적 부담을 감수하면서, 향후 공직 감찰의 기강을 재정립하기 위하여 특감반원에 대한 청와대 차원의 정식감찰, 징계청구, 그리고 전원교체라는 유례없는 선택을 했다”라고 발표했다.

실제 청와대는 앞서 특감반원에 대한 전원교체를 과감히 단행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김태우 감찰반원에 대해 휴대폰은 포렌식했으나 컴퓨터는 포렌식하지 않았다는 발표를 내놓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일개 6급 공무원을 상대로 청와대가 너무 예민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정치권 등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조기 레임덕을 말하기 시작했다.

지난 14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의 12월 둘째 주(지난 11∼13일까지) 조사에서 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45%, 부정평가는 44%로 양자의 격차는 1%포인트에 불과했다.

표본오차가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라는 점을 감안하면, 긍정평가가 부정평가를 앞선다고 단언하기 힘들 만큼 박빙이다.

불과 2개월 전인 10월 둘째 주 문 대통령의 긍정평가(65%)와 부정평가(25%) 격차는 40%에 달했다. 양자의 격차는 두 달 사이 39%포인트나 줄어들었다.

안희정 지사의 낙마, 이재명 지사 논란, 청와대 수석의 음주운전 파문에 이은 김태우 사건까지 이 모든 것이 레임덕이 아닌 여권 내부의 권력투쟁이라고 진단하는 이도 있다.

어느 진보지 발행인은 “노무현 대통령의 가장 큰 업적이 무엇입니까. 청와대 문턱을 낮춘 것. 권력의 문턱을 낮춰 국민 눈높이로 맞춘 것 아닌가요”라며 "문재인 정부에서 나타나는 백가쟁명식의 일련의 현상들은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 즉 그만큼 민주화가 많이 진행됐다는 증거로 보는 것이 맞다"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이 과연 민주사회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일까. 아니면 권력투쟁의 한 단면일까. 그도 아니면 정말 아직 3년이 남은 문재인 정부가 과연 조기 레임덕을 맞은 걸까.

국권이 미약한 와중에서 먼저 살다 간 우리 어른들이 인공기와 태극기를 번갈아 들었던 모습과 공무원의 신분을 망각한 채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의 정강·정책을 목청 높이며 주장하는 오늘날 공무원의 모습, 과거 베트남 국민들이 베트콩을 끝까지 목숨을 걸로 감춰주던 모습이 3D 홀로그램처럼 선명하다.

“궁지에 몰린 미꾸라지 한 마리가 개울물을 온통 흐리고 있습니다. 곧 불순물은 가라앉을 것이고 진실은 명료해질 것입니다”란 청와대 공직자의 이 말, 믿어도 될까.

대한민국 공무원, 더불어민주당 공무원, 자유한국당 공무원, 바른미래당 공무원, 평화민주당 공무원, 정의당 공무원... . 공무원도 국민이니만큼 다양한 정치적 소견을 갖는 게 당연하다. 허나 본인 혼자 살려고 국민을 실망케하거나 혼란에 빠지게 하는 건 공복이 아니다. 사색당파에 줄 서는 공무원에게 시선이 곱지 않는 이유다.

공무원이 정치인처럼 철새가 늘어나는 요즘. 일부 박쥐 공무원의 비행이 새삼 떠돈다. 청와대 감찰반원도 예외가 아니다. 강력한 초음파로 첩보 탐색이 생명인 동굴 속 포식자, 박쥐 한 마리가 한 낮에 나섰다는 것이다. 그는 철새 조류, 나아가 가면을 쓴 포유류라는 평가도 나온다.  물론 그가 생존형 박쥐일 지, 세상의 수호신인 배트맨일 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지구에서 6000여만 년을 생존하며 인류와 함께 살아온 진짜 박쥐에게는 미안하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스트레이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