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이트 연재-보이지 않는 경제학] 〈15〉지대 추구는 부를 생산하지 않는다
[스트레이트 연재-보이지 않는 경제학] 〈15〉지대 추구는 부를 생산하지 않는다
  • 현재욱 선임기자 (jeffhyun@naver.com)
  • 승인 2018.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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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에 나타난 자본주의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은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자본가들의 무한 이윤획득에 의해 세계 경제는 불균등하고 불공정해지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강대국의 힘이 거세지면서 각종 모순적 요소가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을 알기 위해선 현대 경제의 중요한 쟁점들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 쟁점들의 핵심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경제학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과 논쟁을 우리가 알아야 할까? 몰라도 무방한 것들이 있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 경제학 논쟁이 경제 정책으로 이어지고, 그 정책은 보통 누군가에게는 유리하고 누군가에게는 불리할 뿐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스트레이트뉴스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경제의 주요 요소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본지 선임기자 현재욱의 저작인 「보이지 않는 경제학」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지대 추구는 부를 생산하지 않는다

보통 ‘3대 생산요소’라고 하면 자본·토지·노동을 떠올린다. 어느 경제학 교과서에나 그렇게 나와 있다. 생산요소factors of production란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하는 과정에 투입되는 자원을 의미한다. 흔히 자본capital을 돈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경제학에서 자본은 생산 과정에 사용되는 장비와 설비를 의미한다.

좀 더 친절한 경제학 교과서는 기업企業, firms과 가계家計, households 사이에서 이 세 가지 생산요소가 어떻게 투입되고 보상받는지를 그림으로 보여준다. 이를 ‘경제순환모형도’라고 한다. 예를 들어 가계는 기업에 자본·토지·노동을 제공하고 기업은 가계에 이윤·지대·임금을 지불한다. 이 모형도만 놓고 보면 가계가 얻는 소득이 대단할것 같다. 임금뿐만 아니라 지대와 사회에 살면 누구라도 쉽게 부자가 될 것처럼 보인다.

완전한 착각이다. 가계는 주로 가족 단위로 생활하는 소비활동의 주체이고, 여기에는 모든 자연인이 포함된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재벌 총수, 수천만 달러의 연봉을 받는 월가Wall street의 은행가, 프리미어리그의 구단주, 중동의 왕족들까지 모두 가계로 분류된다. 도널드 트럼프와 빌 게이츠도 가계의 일원이다. 이런 사람들이 이윤·지대·임금을 모두 챙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해 보인다. 연봉도 받고 배당도 받고, 꿩 먹고 알 먹고 둥지 털어 불 때는 격이다.

그러나 가계의 90퍼센트 이상은 시장에 내놓을 만한 게 몸밖에 없다. 임금이라도 제대로 받으면 다행이라 하겠다. 게다가 현대 사회의 기업들은 토지는 물론이고 자본(장비와 설비)까지 모두 갖춘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런 경제순환모형도는 세상을 이해하는 데는 별 도움이 안 된다. ‘기업-가계의 상호관계’보다는 차라리 ‘자본가-노동자의 관계’로 파악하는 것이 훨씬 쉽고 간결하다. 토지와 자본을 소유한 자본가capitalists는 자본재와 노동력을 구입하여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판매함으로써 이윤을 획득한다. 노동자workers는 임금을 받고 재화와 서비스를 소비한다. 이렇게 간단히 정리된다.

자본가는 굳이 생산활동을 하지 않아도 돈을 벌 방법이 많다. 토지나 건물을 임대함으로써 고정적으로 임대수입을 챙길 수 있다. 위험risk도 별로 없고 수입이 짭짤해서 많은 자본가가 선호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임대사업으로 아무리 많은 돈을 벌어도 건물주의 통장 잔고만 불어날 뿐 그 사회의 부가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이 새로운 부를 창출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의 소득을 빨아들여 제 몫을 늘리는 행위를 ‘지대 추구地代追求, rent-seeking’라고 한다.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것은 부를 증가시키는 활동이다. 그러나 지대 추구 행위는 재화와 부를 생산하지 않는다. 기존의 부에 숟가락을 하나 더 얹을 뿐이다. 돈이 오가는 거래에서 누구에게 아주 좋은 거래는, 다른 누구에게는 아주 나쁜 거래일 가능성이 높다. 지대 추구행위는 빈곤층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고 사회양극화를 부추긴다.

금지할 수는 없지만 최대한 억제함으로써 한 사회의 자원이 좀 더 생산적인 곳에 투자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 보수 언론의 나팔수들은 사회주의를 하자는 것이냐며 격렬한 비난을 퍼붓는다. 그렇다. 불로소득에 좀 더 높은 세금을 부과하고 그렇게 확보한 재원으로 생산적 활동을 지원하는 것이 사회주의라면 바로 그것을 하자는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미국 정부가 수천만 달러의 혈세를 풀어서 금융위기의 주범인 금융기관들을 수렁에서 구한 것은 사회주의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2008년 이후에도 ‘자본주의는 선善, 사회주의는 악惡’이라는 이분법을 쓰는 사람이 있다면 시대착오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냉전시대에 벌써 사라졌어야 할 자들이 낡은 외투를 입고 21세기의 뒷골목을 어슬렁거리는 모습은 매우 기이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아직도 미련이 남은 매카시의 유령이거나, 자본주의의 거품에서 태어난 탐욕의 화신이다. <계속>

※ 이 연재는 저자(현재욱)와 출판사(인물과사상사)의 동의로 게재한 글입니다. 무단 도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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