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삶에게 안부를 묻다> 김경환 지음, 검둥소 펴냄

죽음은 소멸이지만 거대한 관계의 사슬로 보면 변화다. 죽음의 눈으로 삶을 보면 아름다운 시간을 살아가기 위한 이들의 오늘이 오롯이 놓여있다. 그런 의미에서 살아있는 시간은 죽어가는 순간이고 죽음을 준비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언젠가 예기치 못하게 죽는다는 사실을 안다면 더 적극적으로 살 수 있지 않을까. 죽음에 대한 감수성을 가진 사람이 더 용기 있고 생명력 넘치는 이유와 같다.

매일 죽음을 맞는 장례지도사의 일상을 보고, 그들의 고민에 가까이 다가가다 보니 죽음에 대한 생각을 조금씩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죽음은 추상이 아니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우리가 치러온 죽음을 소환했다. 그 시간 내내 무겁고 슬펐지만, 마침내 서로가 위안이 될 수 있었다. 

<죽음이 삶에게 안부를 묻다>는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이 지난 10년 동안 만난 산 이와 죽은 이의 이야기다. 병마와 노환에 시달리다 힘겹게 죽음을 맞이한 사람,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쓸쓸한 죽음, 타워크레인에 깔려 조각난 육신, 연달아 가족 셋을 떠나보낸 유족, 국가폭력에 희생당한 농민, 한국전쟁 때 학살당한 민간인들.... 

오늘도 죽은 이를 만나러 가는 산 이가 있다. 그에겐 살아있는 사람보다 죽은 이와의 약속이 더 많다. 망자의 부름에 응하는 것이 그들의 일이다. 한때 따뜻한 피가 돌았을 부드러운 육신. 가만히 들여다보면 죽은 이가 산 이에게 숨결처럼 조용히 말을 건네는 듯하다. ‘괜찮다, 다 지나간다.’ 깊은 침묵이 위로를 전한다. 이럴 때면 삶과 죽음이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동전의 앞뒷면 같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생명은 죽음과 붙어 다닌다.

죽음을 맞는 일은 슬프고 암담하다. 생성과 소멸이 자연의 이치지만 그것을 몸으로 깨치고 받아들이는 일은 쉽지 않다. 죽음 앞에서 비루해지지 않기를, 두려움을 몸 안에 가두고 소멸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를 구한다. 

삶의 지혜를 갖춰 죽음을 맞이하기란 실로 어려운 일이다. 누구나 배우고 준비할 시간은 부족하기 마련이다. 소멸의 외형 안에는 숙려의 깊이, 슬픔의 무게가 담겨있다. 존엄한 삶이 존엄한 죽음을 예비한다. 건강할 때 죽음을 맞을 마음도 다지며 준비해야 할 일이다.

잘 죽기 위해서는 잘 보내야 한다. 삶의 시간이 누적될수록 보내는 시간이 늘어난다. 부고에 놀라지 않는 나이, 이별의 시간이 자연스러워진다. 보내는 일의 종착점은 떠나는 시간일 테니 그 전까지는 마음을 담아 위로를 전하려 한다.

어느 순간 멈추어버리고 만 시간이 있다. 누군가에게 그 시간은 살아서 지옥을 만나는 순간이다. 세월호의 꽃다운 아이들, 아름다운 소녀에서 시간이 멈춰버린 할머니들, 한국전쟁 때 아무 이유도 없이 학살당해 구천을 떠도는 원혼들, 국가폭력에 스러져간 노동자 농민들, 평생을 가난과 불평등에 시달리다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가난한 이웃들…. 채 100년을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안타까운 죽음이 있다.

통곡하는 이들 곁에서 함께 아파하고 고통을 나누길 바라는 사라도 있다. 남아있는 이들이 무겁게 짊어졌다가 조금씩 가벼워지는 삶을 살아낼 일이다. 살아서 지옥문을 여는 이들을 위해 곡을 하는 마음이, 그 수고로움을 저버리지 않을 때 우리의 삶은 조금 더 풍부해진다 믿는다.

그들을 애도하는 일은 살아있는 우리를 위한 위로이다. 존엄한 죽음을 받아들이며 오늘을 사는 지혜를 깨우치고 싶어 하는, 죽음을 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우리의 몫이라 생각한다.

이 책은 사랑과 후회, 아픔과 고통, 외로움과 가난, 폭력과 저항에 대한 기록이며 평범한 이웃의 최후에 관한 기록이다. 책에는 모두 스무 편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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