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씨네마당 창립 발대식에서 김병준 비대위원장이 생각에 잠겨 있다.
1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씨네마당 창립 발대식에서 김병준 비대위원장이 생각에 잠겨 있다.

[스트레이트뉴스 고우현기자] 전당대회를 앞두고 지지율 상승 등 순항하던 자유한국당이 일부 의원들의 5·18 민주화운동 폄훼 발언으로 위기에 봉착했다. 적극적으로 사태 수습에 나서는 모양새지만, 여야 4당이 문제가 된 의원들과 당을 겨냥해 집중포화를 날리고 있어 국면 전환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한국당은 황교안 전 총리, 홍준표 전 대표,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 당 대선 주자로 거론되는 이들이 모두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하면서 당 안팎의 관심이 모아졌다. 이 기간 당 지지율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순항하는 듯 했다. 

김경수 경남지사의 댓글 조작 공모 혐의 실형 판결도 한국당 입장에서는 기회로 보였다. 한국당은 김 지사 실형 판결 등을 고리로 대여 공세 고삐를 죈다는 계획이었으나, 지난 8일 김진태·이종명 의원이 주최한 '5·18 진상규명 공청회' 이후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다. 

이 공청회에서는 "5·18은 폭동", "5·18 유공자라는 이상한 괴물집단" 등 폄훼 발언이 쏟아졌다. 이같은 발언을 두고 여야 4당은 일제히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한편 문제가 된 공청회를 주최하고 해당 공청회에 참석해 폄훼 발언을 한 김진태·김순례·이종명 의원에 대한 윤리위 제소 등 제명 절차를 밟겠다는 데 뜻을 모았다. 정의당은 이들에 대한 검찰 고소·고발까지 나섰다. 

한국당내 상황도 만만치 않다. 장제원·김무성·홍철호 의원 등이 해당 발언에 부정적인 입장을 내놓았고, 무소속 서청원 의원과 이재오 한국당 고문 등 당 원로들도 성토했다. 

상황이 악화하자 토론 주최자인 김진태 의원은 "공청회 참석자들의 발언은 주관적인 것이고 향후 객관적인 평가를 받을 것"이라며 "'진짜유공자' 분들에게 상처를 주려는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김순례 의원도 "이유를 불문하고 제 발언으로 인해 상처받으신 국민 여러분과 5·18 유공자 및 유족 여러분들께 사과의 말씀을 올린다"고 전했다. 

특히 나경원 원내대표가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하는 등 섣부른 대응으로 화를 키웠다는 평가를 받은 당 지도부 역시 대국민 사과와 함께 진상 파악에 나섰다. 서둘러 사태를 수습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운영위 제소, 검찰 고발에 따른 후속 조치가 이어지면서 비판 여론을 조기에 불식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런 가운데 이번 사태와 관련해 5·18 단체와 광주·전남지역 사회·정가가 분노하며 강도높은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이들은 각종 법적 대응, 한국당 항의 방문, 성명 발표, 의원직 자진 사퇴 요구 운동 등으로 역사 왜곡 행위 근절에 나서면서 상황이 일파만파 확산될 전망이다.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에서 홍영표 원내대표를 비롯한 참석의원들이 '5.18 망언, 역사부정, 한국당은 사죄하라'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에서 홍영표 원내대표를 비롯한 참석의원들이 '5.18 망언, 역사부정, 한국당은 사죄하라'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5·18 기념재단과 5월 3단체(유족회·부상자회·구속부상자회), 광주시민사회단체·정당들은 11일 광주 동구 5·18 민주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민주주의와 국민을 우롱하는 5·18 왜곡·폄훼 행위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들 단체는 공청회에서 나온 망언들을 "진상규명을 방해하기 위한 의도적인 발언이자 범죄행위"라고 규정하고 △한국당의 망언 국회의원 제명·사과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서 강한 징계 △5·18 왜곡·폄훼 처벌 특별법 제정 △지만원 구속 수사 △역사 왜곡 민관 공동대응·강력 처벌 △재발방지책 마련 등을 촉구했다.

광주·전남 정치권과 교육계도 이번 사태에 대해 엄중한 입장이다.

광주시의회·광주 북구·동구의회, 전남도의회 의원들과 민주당 전남도당은 이날 기자회견 또는 성명·논평 발표를 통해 "전 세계가 경의를 표하는 5·18의 숭고한 정신을 훼손하는 일부 세력의 만행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한국당은 지만원씨가 '5·18 북한군 개입 거짓 주장'을 하도록 방조했다. 북한군 개입설은 학살의 주범이자 내란음모 수괴로 실형 선고를 받은 전두환씨조차 사실이 아니라고 밝힌 바 있다"며 "민주주의를 우롱하고, 역사를 퇴행시키려는 태도"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한국당은 소속 의원인 김진태·이종명·김순례 의원의 5·18 왜곡 행위에 대해 당차원의 사과와 출당, 의원직 사퇴를 비롯해 국회법상 모든 수단을 동원해 강력 대처해 달라"고 촉구했다. 

정의당 광주시당 청년학생위원회도 이날 논평을 통해 "한국당은 반란 군인들의 학살을 부정하고, 반인륜적 범죄 행위를 옹호하는 반헌법행위를 했다"며 "국회는 해당 의원들을 즉각 제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휘국 광주시교육감도 이날 확대간부회의 발언에서 "한국당 의원들이 터무니없는 망언으로 국민적 분노를 일으키고 있다"며 제1 야당인 한국당에는 대국민 사과를, 교육부에는 5·18 교육 강화를 요구했다.

전남대학교 민주화교수협의회와 전남대 5·18 연구소도 성명을 냈다. 이들은 "5·18에 대한 법적·역사적 평가는 이미 끝났을 뿐 아니라 전 세계가 주목하는 민주·인권·평화의 지표로 자리매김돼 가고 있음에도, 급기야 국회에서 제1야당의 국회의원이 주관하고 여러 의원들이 참석한 공청회에서 5·18에 대한 악의적 왜곡과 폄훼가 자행됐다"며 "공공의 이익을 대변하는 책임있는 정당의 태도라 볼 수 없다"고 꼬집었다. 

민교협과 연구소는 ▲김진태·이종명·김순례 한국당 의원 윤리특별위원회 제소·제명 ▲한국당 김병준 비대위원장과 나경원 대표의 대국민 사과·재발 방지책 약속 ▲지만원을 비롯한 공청회장 망언자와 폭력 행사자들에 대한 형사처벌 ▲5·18 진상조사위가 진상규명의 장이 되도록 국회가 책임 있는 행동을 보일 것을 촉구했다.

한편 여야 4당은 김진태·이종명·김순례 의원을 국회 윤리위에 제소키로 했으며, 5·18 유공자인 최경환 민주평화당 의원과 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오는 14일 지만원씨와 의원 3명을 고소할 계획이다. 일부 5·18 유공자 30여 명은 국회 앞에서 지만원 구속과 한국당 의원 사퇴를 촉구하는 천막 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저작권자 © 스트레이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