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구의 직언직설] '유감'이 유감스럽다
[홍승구의 직언직설] '유감'이 유감스럽다
  • 홍승구(흥사단 시민사회연구소장) (betterman89@gmail.com)
  • 승인 2019.02.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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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구 전 흥사단 사무총장
홍승구 전 흥사단 사무총장

최근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몇 사람이 저지른 5·18망언에 대해 공분이 일고 있다. 이에 대해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일부 의원들의 발언이 5·18 희생자들에게 아픔을 줬다면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고 한다. 그래서 필자는 유감이 무슨 뜻인지 찾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유감’을 찾으면 네 가지 뜻풀이가 나온다. 첫째 느끼는 바가 있음, 둘째 운향과의 한 품종(식물), 셋째 고려 문종 때의 학자(?), 넷째 마음에 차지 아니하여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게 남아 있는 느낌 등이다. 일단 사전에 나온 순서대로 적기는 했으나 주로 쓰이는 것은 네 번째 뜻인 것으로 기억한다. 즉 일반적으로 ‘유감이다’, 또는 ‘유감 있냐?’ 라고 말할 때는 ‘마음에 차지 않아 불만스럽

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원내대책회의에서 나경원 원내대표가 발언하고 있다.<br>
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원내대책회의에서 나경원 원내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다’거나 ‘기분 나쁘다’는 뜻으로 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유감’을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없는 사과의 뜻으로 쓰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고위 공직자나 재벌이 불법을 저지르고 검찰에 소환되어 사진 찍는 선(이른바 포토라인)에 서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 정답처럼 되어 있다. 더구나 기자나 불법 행위를 저지른 자의 친구들은 범법자가 사과했다고 온 사방에 대고 떠든다. 

‘유감’이라는 단어는 사과의 표현이 아니다. 그런데 권력자(재벌, 고위 공직자)들은 자신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라는 명확한 표현 대신 ’유감‘이라는 말도 안 되는 표현을 쓰는 것이 궁금해서 그 이유를 살펴보았다.

김호와 정재승이 쓴 책 ’쿨하게 사과하라‘에 의하면 사과는 19세기와 20세기 ‘루저(loser)’의 언어에서 21세기 ‘리더(leader)’의 언어로 부상했다고 한다. 19세기와 20세기에는 사과는 패배자가 하는 것이고 나약한 자의 상징으로 보았다. 그래서 아직도 19세기나 20세기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들은 잘못을 저질러도 사과하지 않으려 발버둥 친다.

대표적인 사례가 1990년 5월 아키히토 일왕이 일본을 방문한 노태우에게 사용한 ‘통석의 염‘이라는 표현이다. 당시 정부는 일왕이 한국 침략과 지배에 대해 사과했다고 떠들었다. 그러나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다는 단어인 ’통석의 염‘은 사과의 뜻이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이 대다수 의견이다.

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원내대책회의에서 나경원 원내대표가 발언하고 있다.<br>
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원내대책회의에서 나경원 원내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법원이 19일 새벽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데 대해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특검 대변인인 이규철 특검보는 이날 오전 긴급 브리핑에서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 결정은 특검과 피의사실에 대한 법적 평가에 있어 견해 차이 때문으로 판단된다"면서 "매우 유감"이라고 밝혔다. (출처: 연합뉴스)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임명된 특별별검사보(특검 대변인)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특별검사의 입장을 밝힌 내용을 보도한 기사다. 물론 나중에 영장을 재청구하여 이재용이 구속되기는 하지만 여기서 ‘매우 유감’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쉽게 말하면 ‘매우 기분 나쁘다’는 뜻이다.

특별검사는 심혈을 기울여 이재용 부회장을 조사하고 뇌물공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상 횡령, 국회에서의 증언 감정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니 매우 기분이 나빴을 것이고 그래서 ‘매우 유감’이라고 입장을 밝힌 것이다. ‘유감’이라는 표현은 바로 이럴 때 쓰는 것이다. 

사람이나 조직은 누구나 실수를 저지르고 잘못할 수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실수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사람과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과하지 않으려는 자들이 있다. 일왕이나 일본 수상 아베가 대표적이며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 국회의원, 재벌 총수들이 그런 경우가 있다. 반면에 인류를 감동시킨 사과도 있다. 

1970년 12월 독일 총리 빌리 브란트는 폴란드 바르샤바 유대인 추모비 앞에서 무릎 꿇고 사과한다. 이 모습을 찍은 사진은 전 세계에 알려져 많은 사람이 감동했고 인류는 1·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유대인을 학살한 독일을 신뢰하기 시작했다. 

사과는 사과 받는 사람이 사과라고 느낄 수 있어야 진정한 사과다. 사과하는 사람이 사과했다고 판단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사과 받는 사람이 사과라고 느껴야 사과가 되는 것이다. 21세기에 사과는 패자나 나약한 자의 상징이 아니라 현자의 상징이다. 

‘유감’, 사과할 때 쓰지 말고 기분 나쁠 때 쓰자. ‘유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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