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에 나타난 자본주의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은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자본가들의 무한 이윤획득에 의해 세계 경제는 불균등하고 불공정해지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강대국의 힘이 거세지면서 각종 모순적 요소가 심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을 알기 위해선 현대 경제의 중요한 쟁점들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 쟁점들의 핵심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경제학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과 논쟁을 우리가 알아야 할까? 몰라도 무방한 것들이 있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 경제학 논쟁이 경제 정책으로 이어지고, 그 정책은 보통 누군가에게는 유리하고 누군가에게는 불리할 뿐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스트레이트뉴스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경제의 주요 요소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본지 선임기자 현재욱의 저작인 「보이지 않는 경제학」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비트코인은 화폐인가?

비트코인Bitcoin 스스로는 화폐라고 말한다. 비트코인 개발자와 사용자들은 비트코인을 ‘암호화폐cryptocurrency’라고 정의했다. 화폐면 화폐지, 암호화폐는 또 무엇인가?

일단 블록체인block chain에 대해 이해하고 넘어가자. 블록체인은 비트코인의 기반이 되는 기술이다. 쉽게 말해서 ‘거래 장부를 만드는 방법’이다. 블록block은 장부의 한 페이지이고, 연결고리chain로 이어져 있다. 장부 한 페이지의 마지막 줄과 다음 페이지의 첫 줄은 일치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따라서 장부에 기록된 모든 데이터가 연속성을 갖는다. 누가 한 페이지(블록)의 숫자를 고치려고 하면 연결된 수만 페이지(블록)가 연쇄적으로 변경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모든 블록의 암호를 풀어서 접속한 다음 모든 블록의 숫자를 다 바꾸어야 하므로 사실상 위·변조가 불가능하다.

보통의 경우 금융 거래를 하려면 은행에 개인 장부를 개설하고 은행이 장부를 관리한다. 이런 운용방식을 중앙집중식이라고 한다. 누구나 한두 개씩 갖고 있는 예금 통장이 은행이 만든 장부다. 그런데 블록체인은 수만 개로 분산된 장부를 만들어서 은행이 아닌 수만 명의 개인이 나누어갖는 시스템이다. 은행을 거치지 않고 개인 간에 거래가 이루어지고, 그 거래 기록은 새로운 블록에 저장된다.

이렇게 은행을 제치고 개인과 개인이 거래하는 방식을 피투피P2P, peer-to-peer 방식이라 한다. 한 번 기록된 장부는 변경할 수 없다. 한 블록의 마지막 줄과 연결된 블록의 첫 줄이 같아야 하므로, 한 블록에 새로운 데이터가 입력되면 전체 블록이 한꺼번에 이를 검증한다.

블록체인은 꽤 괜찮은 아이디어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술적 방법론을 가리키는 말이지 화폐 자체는 아니다. 블록체인 장부에서 사용하는 화폐단위가 바로 비트코인이다.

결론적으로, 비트코인은 화폐가 될 수 없다. 비트코인은 화폐의 세 가지 기능에 부합하지 않는다. 첫째, 교환의 매개 기능을 하기에는 너무 불편하다. 결제가 인증되고 거래가 성립될 때까지 짧게는 10분, 길게는 며칠씩 걸린다면 화폐로서 경쟁력이 없다. 둘째, 가치의 척도가 되기에는 가격의 변동 폭이 너무 크다. 1미터 길이였던 자가 며칠 뒤에 10미터로 늘어나거나 30센티미터로 줄어들면 자로 쓸 수 없다.

비트코인 옹호자들은 언젠가 비트코인 가치가 안정될 거라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그때 가서 할 말이다. 지금은 화폐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 셋째, 부富의 저장수단이 되려면 앞의 두 가지 기능이 안정적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비트코인의 거래가격이 지금의 몇 배로 뛴다 하더라도 그것은 시세차익에 대한 기대가 반영된 것이지, 비트코인의 내재 가치를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비트코인 자체에 내재된 가치는 0에 가깝다.

나는 무엇보다도 비트코인의 수량이 한정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비트코인의 총 통화량이 2,100만 비트코인으로 확정되었을 때 비트코인의 운명은 결정되었다. 만약 경제가 성장을 멈추고 현재의 상태를 영원히 유지한다면 그래도 된다. 그러나 세계 경제는 매년 2~3퍼센트씩 성장하고 있다. 2,100만 비트코인이라는 고정된 통화량으로 성장하는 경제에 대응하려면 1비트코인의 가치를 끝없이 평가절상해 나가야 한다.

계산하기 쉽게 경제가 매년 10퍼센트씩 성장한다고 가정해 보자. 쌀 한 가마 값이 오늘은 1비트코인, 내년에는 0.909비트코인, 2년 후에는 0.826비트코인, 3년 후에는 0.751비트코인, 이런 식으로 물가가 계속 떨어진다. 그게 무슨 문제냐고 반문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가가 떨어지면 사람들은 돈을 움켜쥐고 되도록 소비를 안 하려고 한다. 내일 세일하는 걸 뻔히 알면서 오늘 물건을 살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상품을 가진 사람은 물가가 더 떨어지기 전에 더많이 팔아치우려고 한다. 그래서 물가는 더 빠른 속도로 떨어진다. 물가가 떨어지고 소비가 위축되면 기업은 생산설비를 축소한다. 결국 경제성장은 멈추고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게 된다. 이런 경우를 경제학에서는 디플레이션deflation(통화수축)이라고 부른다. 경제가 원만하게 돌아가려면 경제의 몸집에 맞추어 적절한 양의 통화를 공급해야 한다.

더 큰 문제는 부의 집중이 빨라진다는 점이다. 경제가 성장하는 한 비트코인의 구매력은 계속 올라간다. 비트코인이 비싸진다는 것은 비트코인을 빌렸을 때 높은 이자를 물어야 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쌀장수가 연리 5퍼센트로 10비트코인을 빌려서 쌀 10가마를 샀다 치자. 복리로 계산하면 3년 후에 11.57625비트코인을 갚아야 하는데, 이는 쌀 15가마에 해당하는 돈이다. 물가가 하락하면 실질금리는 더 높아진다. 따라서 비트코인을 꽉 쥐고 있는 사람은 점점 더 부자가 된다. 비트코인을 많이 보유한 사람은 남의 노동 성과를 싸게 구입할 수 있으므로 굳이 힘든 일을 할 필요가 없다.

어떤 사람은 ‘가치에 대한 믿음의 공유’로 비트코인도 화폐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 믿음은 어느 날 갑자기 ‘자, 이제부터 이것이 가치 있다고 믿기로 하자’고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금에 대한 믿음은 수백 년에서 수천 년의 ‘경험’을 통해 축적된 것이다. 비트코인에 투자한 사람들은 비트코인이 빠른 시간 안에 그런 믿음을 얻게 되기를 바라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오랫동안 화폐로 사용되었던 금과 비교해 보자. 금은 소량이긴 하지만 계속 생산되고 있다.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연평균 증가율을 보면 세계총생산은 2.9퍼센트, 세계 인구는 1.2퍼센트, 금 생산량은 1.6퍼센트, 미국 연준의 본원통화 공급량은 22.5퍼센트 증가했다.

경제성장률과 비교했을 때 달러라는 법정화폐는 지나치게 많이 발행되었기 때문에 신뢰를 잃을 만하다. 그래서 비트코인 같은 암호화폐가 동력을 얻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통화량을 2,100만 비트코인으로 고정한 것은 비트코인 개발자의 실수다. 그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화폐의 속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것 같다.

암호를 풀어서 비트코인을 취득하는 과정을 금을 캐는 것에 빗대어 채굴mining이라고 한다. 비트코인 채굴 과정에도 노동이 들어간다. 암호를 풀기 위해 수고한 사람이 있기 때문에, 혹은 전기를 많이 잡아먹은 컴퓨터가 있기 때문에 비트코인이 시장에 공급된다.

그러나 그 노동은 무의미한 노동이다. 예를 들어 누가 앞산을 바라보며 천 번 절했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그에게 1,000원을 지불하지는 않는다. 시장은 의미 있는 노동, 즉 부의 생산에 기여한 노동에만 값을 지불한다. 거래소에서 비트코인을 구입한 투자자는 비트코인에 투입된 노동에 어떤 의미를 부여했을까? 단언하건대 아무런 의미도 부여하지 않았다. 투기의 물결에 뛰어들었을 뿐이다.

비트코인 투자자의 99퍼센트는 비트코인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렇지만 비트코인 가격이 계속 오를 것이라고 기대하고 비트코인에 투자했음이 분명하다. 그 점에 대해서는 그들 자신이 가장 잘 알 것이다. 시세차익을 노리는 투자자나 투기꾼에게 무엇을 사고파는 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게 튤립이든 그림이 든 주식이든 아파트든 돈만 남으면 되는 것이다.

2018년 1월, 문재인 정부가 비트코인을 규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300만 투자자가 거칠게 반발했다. 정치인이나 경제인 모두에게 조심스러운 주제였지만 작가 유시민의 논평은 정곡을 찔렀다. “블록체인은 건축기술이고, 비트코인은 집이다. 사람들이 집에 모여 도박하는 것을 단속하려고 하자 건축을 탄압한다며 항의하는 꼴이다.”

비트코인 거래 대부분은 거래소에서 이루어진다. 다시 말해 블록체인 장부가 아닌 거래소가 만든 장부 위에서 기존의 화폐와 비트코인이 교환되고 있다. 거래소는 18세기 환전소와 다를 게 없다. 거래소의 수익은 환전수수료다. 따라서 거래량만 늘면 만사형통이다.

비트코인 투자자들은 블록체인 장부에 접속할 일이 없고,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에도 전혀 관심이 없다. 비트코인을 실거래에 사용하지도 않는다. 그들이 신경 쓰는 것은 비트코인과 다른 화폐의 환율뿐이다. 비트코인에 대한 원화 환율이 올라야 돈을 번다. 그래서 사람들이 돈을 싸들고 거래소로 몰려들기를 기대한다. 여기서 거래소와 투자자의 이해가 일치한다. 그들 입장에서 보면 거래소를 규제하는 어떤 정책도 용납할 수 없다.

비트코인 거래소는 개인을 대행하여 전자지갑을 만들고 비트코인을 관리해 준다. 이 거래소에 비트코인을 맡기는 것은 은행에 돈을 예치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것 역시 탈중앙화에 역행하는 행태이고, 비트코인의 본래 취지를 거스르는 것이다. 현행 화폐제도에 문제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암호화폐의 문제점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비트코인이 화폐가 되려면 시장에서 화폐의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계속>

※ 이 연재는 스트레이트뉴스가 저자(현재욱)와 출판사(인물과사상사)의 동의로 게재한 글입니다. 무단 도용을 금합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스트레이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