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 연재-보이지 않는 경제학] 〈24〉금본위제 시대
[ST 연재-보이지 않는 경제학] 〈24〉금본위제 시대
  • 현재욱 선임기자 (jeffhyun@naver.com)
  • 승인 2019.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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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에 나타난 자본주의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은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자본가들의 무한 이윤획득에 의해 세계 경제는 불균등하고 불공정해지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강대국의 힘이 거세지면서 각종 모순적 요소가 심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을 알기 위해선 현대 경제의 중요한 쟁점들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 쟁점들의 핵심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경제학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과 논쟁을 우리가 알아야 할까? 몰라도 무방한 것들이 있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 경제학 논쟁이 경제 정책으로 이어지고, 그 정책은 보통 누군가에게는 유리하고 누군가에게는 불리할 뿐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스트레이트뉴스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경제의 주요 요소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본지 선임기자 현재욱의 저작인 「보이지 않는 경제학」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금본위제 시대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초기의 은행은 단순히 ‘금 보관소’였다. 주로 금세공업자와 환전상이 귀금속을 취급했고, 거래가 많은 상인들은 은행에 금을 맡겨놓는 것이 여러 모로 편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금을 맡기는 사람이 수수료를 물어야 했지만 본질적으로 오늘날의 예금과 별 차이가 없다. 네덜란드의 중앙은행이었던 암스테르담은행도 예금자에게 이자를 지급하지 않고 수수료를 받았다.

은행가는 부자들이 금을 맡기면 보관증을 써주고 그 금을 금고 깊숙한 곳에 잘 보관한다. 어느 몰락한 귀족이 노름빚을 갚기 위해 런던 교외에 있는 자신의 저택을 매물로 내놓는다. 돈 많은 신흥 부르주아가 그 집을 접수한다. 당연히 돈(금)을 지불한다.

몰락한 귀족은 집값으로 은행가가 써준 금 보관증을 받고 저택의 소유권을 새로운 주인에게 양도한다. 바로 이 금 보관증에서 현대적 의미의 화폐가 시작되었다.

금 보관증은 화폐로서 큰 인기를 끌었다. 금보다 가볍고, 지갑에 수십 장씩 들어가니까 들고 다니기 좋고, 여차하면 은행에서 진짜 금으로 바꿀 수 있으니, 이보다 멋진 화폐가 또 어디 있을까? 이렇게 금과 연동된 화폐제도를 ‘금본위제金本位制, gold standard’라고 한다.

금본위제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피렌체의 플로린Florin 금화처럼 금으로 주조한 화폐를 유통시키는 방법으로 이를 금화본위제金貨本位制라 한다. 가장 확실한 금본위제이지만 무거운 금화를 들고 다녀야하는 단점이 있다.

둘째는 금지금본위제 地 本位制인데, 은행에 보관한 금괴를 담보로 지폐와 보조화폐를 발행하는 방법이다. 금화, 금반지, 금목걸이 등으로 가공되기 전의 금, 즉 금괴와 골드바 같은 금덩어리를 ‘금지금金地金, gold ingot’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금 보관증은 일종의 금지금본위제 화폐였다. 이렇게 언제든 금으로 바꿀 수 있는 돈을태환화폐兌換貨幣라고 한다.

금 보관증의 인기에 힘입어 금본위제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1717년, 유럽에서는 영국이 가장 먼저 금본위제를 실행했다. 당시 금본위제를 제안한 과학자 아이작 뉴턴Isaac Newton, 1642~1727은 왕립조폐국의 최고책임자였다.

1818년 네덜란드가, 1871년에 독일과 일본이, 1873년에는 프랑스가 이끄는 라틴통화동맹이, 1875년에 덴마크를 포함한 북유럽 국가가, 1881년에 아르헨티나가, 1893년에는 러시아, 1900년에 미국이 금본위제를 채택했다.

금본위제하에서 물가는 안정적이었고, 화폐 간 교환비율도 지금처럼 복잡할 게 없었다. 화폐에 표시된 금의 무게만 계산하면 간단하게 환율이 나왔다. 환율과 물가가 안정되자 국제 교역도 활발해졌다. 가장 성공적인 국가는 영국이었다.

산업혁명의 선두주자인 영국은 세계 제일의 공업국이자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었다. 20세기 초까지 영국의 파운드화는 세계 무역결제의 60퍼센트를 차지했다. 마침내 자본주의는 번영의 길을 찾은 듯싶었다. 그러나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대공황이 모든 것을 망쳐버렸다.

전쟁비용을 대느라 막대한 돈(금)이 고갈되었고, 유럽 국가들은 중앙은행에 보관한 금보다 많이 화폐를 찍어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유럽의 화폐는 제1차 세계대전(1914~1918)과 대공황(1929)을 겪으며 금태환 기능을 잃어버린다. 1931년 영국이 금본위제를 포기하자 24개국이 뒤를 따랐다.

제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미국은 기나긴 대공황의 수렁에서 완전히 빠져나왔다. 유럽에서 수많은 젊은이가 죽어나갈 때, 미국은 군수물자를 유럽에 팔고 유럽은 금으로 값을 치렀다. 처음에는 돈(금)을 받고 무기를 팔았지만 연합국의 재정이 바닥나자 미국은 외상으로 물자를 제공했다. 그야말로 과자 만들 듯 무기를 찍어냈다.

미국은 연합국에 항공기 1만 4,795대, 전차 7,056대, 지프차 5만 1,503대, 트럭 37만 5,883대, 기관총 12만 1,633정, 화약 34만 5,735톤, 기관차 1,981량, 구축함 105척, 어뢰정 197척, 군화 1,541만 켤레, 식품 447만 8,000톤을 공급했다.

미국은 이미 20세기 초에 세계 최고의 공업국이었다. 1912년에 수출규모에서 영국을 추월했고,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에 포드사는 세계 최대의 자동차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쟁이 끝날 무렵, 미국은 전 세계 금의 75퍼센트, 세계총생산의 50퍼센트를 점유한 어마어마한 부자 나라가 되어 있었다. 그때까지도 돈 하면 역시 금이었다. <계속>

※ 이 연재는 스트레이트뉴스가 저자(현재욱)와 출판사(인물과사상사)의 동의로 게재한 글입니다. 무단 도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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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자유인 2019-02-28 15:2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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