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찬영 '줄리엣과 도시 광부는 어떻게 마을과 사회를 바꿀까?'

[스트레이트뉴스 김세헌기자] 작년 한 해 동안 6개 대륙, 42개 나라에서 모두 239차례에 걸쳐 BFFP(Break Free From Plastic)라는 행사가 열렸다. ‘플라스틱에서 벗어나자’는 이 캠페인에 약 1만 명의 시민이 함께했다. 시민들은 거리와 공원, 강과 바다 등에서 플라스틱 쓰레기를 치우는 일에 힘을 보탰다. 이들이 모은 플라스틱 쓰레기의 양은 무려 18만7851개나 됐다.

시민들은 이렇게 모은 쓰레기들 중 상품 브랜드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을 추려 개수를 기록했다. 가장 많이 버려진 브랜드는 코카콜라로, 모두 9216개에 달했다. 다음으로 펩시코와 네슬레 등의 순이었다. 이들 세 기업의 쓰레기가 전체 플라스틱 쓰레기의 14%를 차지했다.

시민들의 활동은 기업의 책임을 일깨웠다. 행사에서 플라스틱 쓰레기 브랜드 순위 3위~5위로 지목된 네슬레, 글로벌 식품기업 다농, 제과업체 몬델레즈 인터내셔널은 오는 2025년까지 모든 제품의 포장을 재활용 가능한 재질로 바꾸겠다는 '비전'을 내놓았다.

이 이야기를 관통하는 핵심은 세상은 비록 느리지만 분명히 나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 평범한 시민들이나 작은 단체 또는 벤처기업, 익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주역이 돼 세상을 바꾸는 데 힘을 모으고 있다.

사회 문제를 시민 스스로 해결하려는 시도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지만 특히 21세기에 들어와서는 그 흐름이 더욱 두드러지고 방법은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는 모습이다. 기술과 네트워크, 정보의 발달이 가세하고 이전까지 각각 별개로 여겨지던 시민-행정-기업 간 협력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큰 흐름을 ‘사회 혁신(Social Innovation)’이라고 부른다.

<줄리엣과 도시 광부는 어떻게 마을과 사회를 바꿀까?>는 세계 전역에서 이루어진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30가지 사회 혁신 실험을 심도 깊게 소개한 책으로, 사회 혁신의 다양한 길과 방법을 검토하고 한국 사회의 나아갈 좌표를 모색한다. 

책 제목에 등장하는 ‘줄리엣’은 네덜란드 데 퀘벌의 도시 재생 실험에서 사용하고 있는 에너지 화폐의 이름이라고 한다. 공동체가 지역에서 생산한 재생 에너지를 더 쉽게 관리할 수 있도록 돕는 가상화폐다.

에너지 단위인 줄Joule에서 따와 ‘줄리엣Jouliette’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도시 광부’는 우리나라 구로구 독산4동에서 쓰레기 재활용을 돕는 시민들이다. 재활용과 노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 고안했지만 이제는 시민과 행정을 잇는 가교 역할까지 맡는다. 

이 책을 보면 환경을 보호하는 에너지 재생 가상화폐 줄리엣, 마을의 쓰레기를 줄이고 주민과 행정의 가교를 잇는 도시 광부,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혈액 공급 체계를 세워 수많은 생명을 살린 드론 등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시민, 기업, 단체, 자원봉사자, 정부와 행정기구들, 과학기술과 플랫폼들의 다각도의 노력이 ‘사회 혁신’이라는 흐름으로 모아진다.

책은 특히 사회 혁신을 미래를 위한 전략 어젠다로 상정하고 발전시켜나가고 있는 유럽의 현황과 자료를 상세히 분석한다. 나아가 이를 한국의 현실과 대비해 우리 사회 혁신이 나아갈 바를 모색한다. 

이 책은 무엇보다 다양하고 참신하게 이뤄지고 있는 사회 혁신의 현장을 입체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다양성 자체가 사회 혁신의 중요한 방법론일 수도 있어서다.

책은 죽은 항구도시에 환경 유토피아를 건설한 네덜란드 데 퀘벌, 거주자우선주차제도를 공유주차제로 대체한 독산4동, 웨이스티드 프로젝트를 통해 주민들끼리 사귀고 배워 가면서 쓰레기를 절감한 암스테르담 사례 등 주민 참여의 여러 모습을 다양하게 짚어본다. 

기술이 사회 혁신에 참여하는 사례도 집중 점검한다. 매우 첨단적이거나 고급 기술이 적용될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스마트폰을 이용해 간단하게 안질환을 진단하는 장비 등 첨단 기술이 아니라 시민의 품에 돌아온 이른바 ‘적정 기술’이 활약하는 것이다.

인라이튼이라는 국내 기업은 배터리를 되살려 쓰는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이것만으로도 대기업이 주도하는 가전 제품 소비 시장 지형에 상당한 변화를 준다. 원래 무기로 개발됐고 요즘에는 취미 활동이나 사진 촬영에 많이 쓰이는 드론을 아프리카에서 생명을 구하는 수단으로 사용한 벤처기업 짚라인의 실험 또한 기술이 사회 문제 해결에 어떻게 활용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물론 사회 혁신이란 용어는 아직 우리 사회에는 그다지 익숙하지 않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은 이미 21세기 초엽부터 많은 관심을 기울여왔다. 2003년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의 사회혁신센터는 '스탠퍼드 소셜 이노베이션 리뷰'를 창간하면서 사회 혁신을 “사회적 필요와 문제에 대한 참신한 해법을 발명하고 지원을 확보하고 실행하는 과정”이라고 정의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취임하면서 백악관에 ‘사회 혁신 및 시민참여국’을 마련했다. 

「줄리엣과 도시 광부는 어떻게 마을과 사회를 바꿀까?」  윤찬영 | 바틀비
「줄리엣과 도시 광부는 어떻게 마을과 사회를 바꿀까?」 윤찬영 | 바틀비

유럽도 일찍부터 사회 혁신에 관심을 뒀다. 세계 금융 위기를 겪은 직후인 2009년엔 이미 사회 혁신이 유럽연합의 정책 어젠다로 격상됐고, 폭넓은 정책과 프로그램, 기관들을 통해 주류로 자리 잡았다. 과거 같으면 행정의 손길에만 맡겨두거나 시장 논리에 의한 접근에 치우쳤을 많은 사안들이 시민과 행정, 기업과 연구소, 온라인 플랫폼과 기술적 개선에 의해 바뀌고 있다.

사람이나 단체만이 아니다.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려는 사업에 투자하는 이른바 임팩트 투자도 규모가 빠르게 늘고 있다. 글로벌 임팩트 투자 네트워크(GIIN, Global Impact Investing Network)에 따르면, 설문에 답한 225개 투자자들은 2017년 한해 1만 1136개 사업에 약 355억 달러(약 40조 원)의 임팩트 투자를 감행했고 2018년 투자 예상 규모는 약 384억 달러(약 43조 원)로 2017년보다 8%가 늘어날 전망이다.

미국과 유럽의 이런 빠른 변화에 비하면 우리 사회의 관심은 아직 많이 부족하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사회혁신수석’이 만들어지고(1년 만에 시민사회수석으로 바뀜), 행정안전부에 ‘사회혁신추진단’을 꾸리는 등 이 흐름을 수용하려는 노력은 있지만 아직 결실이 많지 않고 무엇보다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크지 않은 편이라고 책은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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