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 연재-보이지 않는 경제학] 〈25〉달러, 금과 동급이 되다
[ST 연재-보이지 않는 경제학] 〈25〉달러, 금과 동급이 되다
  • 현재욱 선임기자 (jeffhyun@naver.com)
  • 승인 2019.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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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에 나타난 자본주의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은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자본가들의 무한 이윤획득에 의해 세계 경제는 불균등하고 불공정해지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강대국의 힘이 거세지면서 각종 모순적 요소가 심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을 알기 위해선 현대 경제의 중요한 쟁점들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 쟁점들의 핵심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경제학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과 논쟁을 우리가 알아야 할까? 몰라도 무방한 것들이 있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 경제학 논쟁이 경제 정책으로 이어지고, 그 정책은 보통 누군가에게는 유리하고 누군가에게는 불리할 뿐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스트레이트뉴스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경제의 주요 요소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본지 선임기자 현재욱의 저작인 「보이지 않는 경제학」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달러, 금과 동급이 되다

1944년 7월 1일, 세계 44개국에서 파견된 730명의 경제 관료와 전문가들이 미국 뉴햄프셔 주의 한적한 시골 마을 브레턴우즈Bretton Woods로 속속 모여들었다. 참석자 중에는 거시경제학의 창시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도 있었다. 영국 대표였다.

대한민국 대표는 없었다. 일본의 식민지였으니 어쩔 수 없다. 아시아 국가로는 인도, 중국, 필리핀, 이란, 이라크 다섯 나라만 참여했다.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USSR이 자본주의 질서를 구축하는 회의에 참가
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미국의 적대국인 일본, 독일, 이탈리아는 초대받지 못했다.

유럽 전선에서는 연합군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성공하여 파리로 진격 중이었고, 태평양에서는 미군이 필리핀해 해전에서 일본 전투기 400대를 격추하고 항공모함 3척을 침몰시킨 후 일본 본토를 향해 한 발 한 발 조여들어가던 시점이다. 당시 조선 땅에서는 전세가 이미 기울었음을 알지 못하고 친일 변절자가 속출했으나,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 측에서는 벌써 전후戰後 세계의 질서를 준비하고 있었다.

호스트인 미국을 빼고 그 자리에 초대된(사실은 소집된) 사람은 43개국 726명이다. 미국은 그들에게 제안한다. “너희들 돈(금) 없지? 경제가 돌아가려면 돈이 필요하지? 그러니까 일단 종이로 돈을 찍어. 그 돈을 내가 보증해 줄게. 나는 금이 많고, 달러야말로 진짜 돈이니까. 그 대신 너희들의 종이돈은 내가 값을 매길 거야. 알았지?”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전쟁으로 만신창이가 된 유럽 국가들이 파괴된 시설을 복구하고 경제를 재건하려면 미국의 풍부한 물자가 필요했다. 미국의 물자를 사려면 달러를 확보해야 한다. 이런 사정은 신생 독립국들도 마찬가지였다.6 케인스가 세계중앙은행을 설립하고 세계화폐를 발행하자고 주장했지만 간단히 묵살되었다.

금본위제 시대의 20달러 지폐. ‘액면가와 같은 가치의 금화와 교환해 준다’라는 문구가 인쇄되어 있다. 이는 미국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향한 미국 정부의 약속이었다.
금본위제 시대의 20달러 지폐. ‘액면가와 같은 가치의 금화와 교환해 준다’라는 문구가 인쇄되어 있다. 이는 미국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향한 미국 정부의 약속이었다.

이렇게 해서 달러를 기준으로 다른 모든 통화의 환율이 정해졌다. 이것이 바로 ‘브레턴우즈 체제Bretton Woods System’다. 달러는 세계의 통화 중에서 유일하게 금과 동급이 되었다(35달러=금 1온스). 그때부터 달러는 다른 모든 통화의 가치를 결정하는 기축통화基軸通貨, key currency의 지위를 획득했다. 달러가 세계 유일의 금본위제 화폐이고, 다른 통화들은 모두 달러에 종속된 달러본위제 화폐로 강등되었다.

이로써 미국 연준은 달러에 대한 담보물로 금을 보유하고, 다른 나라 중앙은행은 금 대신 달러를 보유하는 큰 그림이 완성되었다. 1944년 이후의 세계 경제는 그전과는 완전히 다른, 달러가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구조로 재편되었다.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다. 자본주의 사회는 번영을 구가했고,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 대해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이 책에서 베버는 소명의식에 충실한 개신교 정신이 자본주의 발달에 기여했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가 말한 개신교 정신을 요약하면 이렇다. “주어진 일에 힘쓰라. 그것이 신의 뜻이다.” ‘달러=금’이란 불문율이 유지되는 한, 근검절약은 미덕으로 칭송되고 열심히 일한 사람은 보상을 받았다. 미국이 보유한 금이 그 가치를 보장하기 때문에 달러로 저축한 부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인정받았다.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브레턴우즈 체제는 미국 달러화를 금에 고정시킨 환율 체제다. 금 1온스의 가치를 35달러로 정했고, 세계 각국의 통화와 달러 사이의 환율을 일괄 책정했다. 그러니까 브레턴우즈 체제의 운영자는 국제통화기금International Monetary Fund, IMF이고, 운영방법은 고정환율제固定換率制, fixed exchange rate였다. 예를 들어 과거의 기축통화였던 영국 파운드화의 환율이 미국 달러화 기준으로 새로 정해졌다.

[도표 2]를 보면 1달러에 4파운드 정도의 교환비율이 책정되었다. 고정환율은 오르락내리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고점이 뾰족하지 않고 테이블처럼 판판하다. 만약에 환율이 시장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다고 판단하면 다시 미국과 협의하여 적정 환율을 책정한다.

1949년에 그런 일이 일어났다. 1달러의 값이 3파운드 밑으로 재조정됨으로써 달러 가치는 떨어지고 파운드화 가치는 올라갔다. 이런 걸 파운드화 입장에서 볼 때 ‘평가절상’이라고 한다. 길게 보았을 때, 파운드화 가치는 꾸준히 오르고 달러 가치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2018년 1월 17일 현재, 두 화폐의 환율은 1달러에 0.73파운드다.

비틀스The Beatles라는 영국 밴드가 빌보드 차트를 석권할 무렵, 미국은 베트남에 달러를 쏟아붓고 있었다. 하늘을 까맣게 덮은 B-52 폭격기 편대가 매년 10억 달러어치 이상의 폭탄을 무차별적으로 퍼부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사용된 양보다 많은 폭탄이 북베트남 상공에 뿌려졌고,7 달러 찍는 기계가 쉴 새 없이 돌아갔다. 금 보유고의 570퍼센트나 되는 달러가 시중에 풀렸으니,8 금 1온스=35달러라는 약속이 지켜질 리 만무했다.

[도표 2] 파운드/달러 환율(1915~2015)
[도표 2] 파운드/달러 환율(1915~2015)

달러 가치가 폭락하면 금 가격은 오르게 마련이다. 금은 어떤 인플레이션의 파도에도 침몰할 줄 모르는 불사신이며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자산이다. 지금까지 ‘달러 폭락=금값 폭등’의 공식이 깨진 적은 한 번도 없다. 베트남전쟁은 밑 빠진 독이 되었고, 국제시장에서 금시세는 1온스에 60달러까지 치솟았다.

당시 가장 쉽게 돈을 버는 방법은, 어떻게든 달러를 확보한 다음 미국 은행에서 금과 바꾸는 것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달러는 언제든 금과 맞바꿀 수 있는 태환화폐였다. 35달러=금 1온스. 은행에 가서 3만 5,000달러를 내밀면 은행은 꼼짝없이 금 1,000온스를 내주어야 한다. 그 금을 유럽 시장에 내다 팔면 큰 시세차익이 생긴다. 당시 미국인들은 금을 소유할 수 없었다. 1933년 루스벨트 대통령이 민간인의 금 소유를 엄격히 금지했기 때문이다. 몰래 금을 소장한 사람은 징역10년에 벌금 25만 달러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유럽의 중앙은행과 기업들이 결제대금을 금으로 요구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미국 포트녹스 지하금고에 보관하던 금괴가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1944년에서 1971년 사이에 미국은 금 비축량의 70퍼센트를 잃었다.

달러 하락을 눈치 챈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은 1960년대 내내 수출로 번 돈을 미국 연준에서 금으로 교환해 갔다. 1971년 5월에는 영국정부가 30억 달러의 금태환을 요구했다.11 결국 미국은 두 손을 들 수
밖에 없었다. <계속>

※ 이 연재는 스트레이트뉴스가 저자(현재욱)와 출판사(인물과사상사)의 동의로 게재한 글입니다. 무단 도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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