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 연재-보이지 않는 경제학] 〈26〉달러가 금으로부터 독립한 날
[ST 연재-보이지 않는 경제학] 〈26〉달러가 금으로부터 독립한 날
  • 현재욱 선임기자 (jeffhyun@naver.com)
  • 승인 2019.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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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에 나타난 자본주의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은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자본가들의 무한 이윤획득에 의해 세계 경제는 불균등하고 불공정해지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강대국의 힘이 거세지면서 각종 모순적 요소가 심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을 알기 위해선 현대 경제의 중요한 쟁점들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 쟁점들의 핵심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경제학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과 논쟁을 우리가 알아야 할까? 몰라도 무방한 것들이 있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 경제학 논쟁이 경제 정책으로 이어지고, 그 정책은 보통 누군가에게는 유리하고 누군가에게는 불리할 뿐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스트레이트뉴스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경제의 주요 요소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본지 선임기자 현재욱의 저작인 「보이지 않는 경제학」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달러가 금으로부터 독립한 날

1971년 8월 15일. 이날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세상의 모든 돈이 금으로부터 독립한 날이기 때문이다. 인기 드라마 〈보난자Bonanza〉가 방영되는 일요일 저녁 시간, 미국의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 1913~1994 대통령이 침울한 표정으로 긴급성명을 발표했다.

닉슨은 “더 이상 달러를 금으로 바꾸어줄 수 없다”고 선언하고, 금융 투기꾼들을 맹렬히 비난했다. 국제사회와 어떤 사전 협의도 하지 않은 일방적인 통고였다. 금태환 중지와 함께, 모든 임금과 물가를 90일간 동결하는 극단적인 정책이 시행되었다.

그때의 충격이 얼마나 강했던지, 자본주의의 연대기에 ‘닉슨쇼크Nixon shock’라는 항목이 추가되었다. 미국 증시는 곤두박질쳤고, 유럽외환시장은 폐쇄되었다. 이로써 27년간 유지된 브레턴우즈 체제가 붕괴하고 달러의 금본위제 시대는 막을 내렸다. 세계 경제 질서는 다시 한 번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구조로 탈바꿈했다.

이제 돈은 더 이상 금이 아니다. 화폐는 금과 분리되었다. 실제로 미국 연준이 발행하는 지폐에서 ‘금화와 교환할 수 있다’는 문구가 삭제되었다. 이때부터 세상의 모든 돈은 한낱 종이 쪼가리로 변할 가능성을 지니게 되었다. 1997년에 한국 돈이 거의 그럴 뻔했고, 2014년에 러시아 루블화가 비슷한 위기를 겪었다.

금과 분리된 달러는 기세가 꺾였을까? 그렇지 않다. 여전히 기축통화의 지위를 유지하면서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세계 경제는 너무 오랫동안 달러에 길들어 있었다.

게다가 마땅히 달러를 대체할 만한 국제화폐도 없었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대의 경제력을 가지고 있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금을 보유하고 있으며, 세계에서 돈을 가장 많이 쓰는 나라다. 그리고 금융과 정보산업이 가장 발달한 나라다. 부富의 생산능력이 화폐의 신용을 뒷받침한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달러는 아직 힘이 남아있다.

결정적으로, 달러 뒤에는 석유가 있다. 미국은 중동의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를 주목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땅은 넓고 인구는 적다. 이란, 이라크, 이집트, 이스라엘 등 강국에 둘러싸여 있어서 군사적으로 취약하다.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왕정국가는 체제 유지에 늘 신경을 쓴다.

미국은 거래하기 좋은 상대를 찾았다. 거래의 기본은 이익을 주고받는 것이다.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의 통치체제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군사적 지원을 약속했다. 대신에 사우디아라비아는 석유 판매대금으로 미국 달러화만 받기로 했다. 1974년 미국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가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해서 역사적 거래가 성사되었다.

달러화 결제의 원칙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영향력에 힘입어 석유수출국기구OPEC 전체로 확장되었다. 기름 안 쓰고 살 수 있나? 석유가 필요한 나라에 달러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금 대신 석유가 달러의 가치를 보증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2003년 미국이 일으킨 이라크전쟁은 아편전쟁 버금가는 추악한 전쟁이다. 침공의 명분이었던 대량살상무기Weapons of Mass Destruction는 라크에 없었다.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Brookings Institution의 보고에 따르면 전쟁 발발 후 9년 동안 민간인 19만 명이 사망하고 270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13 미국의 부시 정권은 왜 독일, 프랑스, 중국, 러시아 등 많은 국가의 반대를 무릅쓰고 무리한 침공을 강행했을까?

국제금융 전문가인 쑹훙빙宋鴻兵(송홍병)은 이라크전쟁이 유로화 출범과 관련 있다고 주장했다. ‘이라크 원유의 결제통화를 달러화에서 유로화로 전환하고, 100억 달러의 외화준비금을 유로화로 교체할 것’이라는 이라크 중앙은행의 발표가 미국의 민감한 곳을 건드렸다는 것이다.

미국이 격분한 이유를 쑹훙빙은 간단히 설명했다. "달러로 원유조차 사지 못한다면 누가 약세 달러를 보유하려 하겠는가?"

달러의 위상이 점점 낮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의 발표에 따르면 2016년 6월 기준으로 국제 결제에서 미국 달러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40,97퍼센트다.

유로화(30.82퍼센트), 영국 파운드화(8.73퍼센트), 일본 엔화(3.46퍼센트), 캐나다 달러화(1.96퍼센트), 중국 위안화(1.72퍼센트)가 뒤를 이었다.15 한때 달러가 국제 결제의 60퍼센트를 점유했던 것에 비하면 꽤 줄어들었다. 브레턴우즈 체제가 출범할 무렵 세계총생산의 절반을 차지했던 미국의 국내총생산이 24퍼센트로 감소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계속>

※ 이 연재는 스트레이트뉴스가 저자(현재욱)와 출판사(인물과사상사)의 동의로 게재한 글입니다. 무단 도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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