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벨기에 브뤼셀 한국문화원에서 기자단과 간담회 중인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공정거래위원회 제공=스트레이트뉴스
11일 벨기에 브뤼셀 한국문화원에서 기자단과 간담회 중인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공정거래위원회 제공=스트레이트뉴스

[스트레이트뉴스 김세헌기자] "난 재벌을 좋아한다."

유럽 관료들 앞에서 강연에 나선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재벌집단에 대해 "한국 경제의 소중한 자산"이라며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러하며 미래에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강연의 상당부분은 재벌의 과도한 경제력 집중이나 일감 몰아주기 등을 언급하며 비판하는 데 집중했다.

김 위원장은 12일(현지시간)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국회의원회관에서 진행된 '제23회 국제경쟁정책워크숍'에 참석해 기조강연을 통해 이렇게 언급했다. 

이 워크숍은 한국 공정위가 1996년부터 개발도상국과 한국의 경쟁법 정책·집행 방식을 교류하기 위해 열어 온 행사로, 이날 세르비아 경쟁보호위원회 관료들 뿐만 아니라 마케도니아 등 발칸지역 국가들의 경쟁법 전문가들이 함께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강연에서 "한국 재벌엔 좋은 면과 나쁜 면이 함께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과거 한국은 성공적인 기업에 한정된 자원을 집중 투자하는 정부주도 정책과 수출중심 정책을 조합했다"며 "이 두 요소가 결합돼 한국의 기적을 이끌어낸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이 과정에서 삼성·현대자동차·LG 등 거대기업들이 탄생하게 됐다"고 했다.

이후 김 위원장의 재벌의 부정적 측면을 열거했다. 그는 "재벌들은 국내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어 막대한 경제적 권력을 갖고 있다"면서 "이는 경제적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정치·종교·언론·이데올로기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꼬집었다.

재벌의 소유·지배구조 문제도 도마에 올렸다. 김 위원장은 "이들은 현재 그룹의 5% 내외에 불과한 지분을 갖고 있다"며 "오너(owner)로 불리지만 실상은 소수주주(minority shareholder)"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순환출자 등을 이용해 기업집단 전체에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데, 이는 일감 몰아주기 등 다른 기업 혹은 주주들의 이익을 저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재벌 문제를 점검하기 위해선 경쟁법 뿐만 아니라 회사법이나 상법 등 다른 법체계와의 협력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다만 과거 경제발전 초기 단계에선 이런 시스템이 잘 작동되지 않았고, 때문에 경쟁당국인 공정위가 경쟁법 집행 역할 외에 재벌 문제까지 다루게 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김 위원장은 재벌을 규제하는 공정위의 위치를 두고 "우리 경쟁당국은 기업들과 정부 내 다른 부처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해 외로울 수밖에 없다"고도 전했다.
  
한편 이날 행사에 앞서 사전 배포된 발표문에 담겼던 수위 높은 재벌 비판 문구는 실제 강연에선 쓰이지 않았다.

사전 발표문에는 "재벌이 관료와 정치인을 포획하고 언론마저 장악하는 등 사회적 병리현상으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재벌 3세들은 창업자들과 달리 위험에 도전해 수익을 창출하기보단 사익추구 행위를 통한 기득권 유지에만 몰두한다" 등의 문구가 적혀있어 국내서 논란이 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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