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FFVD+대량살상무기 폐기 요구에 동창리 복구로 응수한 북한
북한 핵・경제병진노선 복귀 어렵고 미국 국제비난과 국내 정치 봉착
미국이 하노이 회담 결렬 원인으로 지목한 마이클 코언 변호사 청문회
미국이 생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 꺼낸 이유는 보수와 민주당의 압박
지금은 친서교환, 북미채널 복원 아닌 코언 청문회에 주력할 때


[스트레이트뉴스=김태현 선임기자] 북한 비핵화 프로세스와 경색 국면으로 접어든 북미관계, 그리고 비핵화를 둘러싼 이른바 ‘빅딜(big deal)’과 ‘스몰딜(small deal)’의 향배를 결정한 변수로 워싱턴 정가를 뒤흔든 코언 청문회가 지목됐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트럼프 대통령) 두 최고 지도자들의 개인적인 관계는 여전히 좋고, 궁합은 훌륭합니다.”

북한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지난 15일 기자회견에서 “비핵화 협상 중단을 고려 중”이라며 한 발언이다. 이 한마디에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를 대하는 북한과 미국의 속내가 함축돼 있다.

2016년 9월, 트럼프 대통령 지지 연설 중인 마이클 코헨 변호사(Michael Cohen)(자료:alexasteroidastrology) ⓒ스트레이트뉴스
2016년 9월, 트럼프 대통령 지지 연설 중인 마이클 코언 변호사(Michael Cohen)(자료:alexasteroidastrology) ⓒ스트레이트뉴스

좋지 않은 시나리오

북미 양측은 지난달 27, 28일 열린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둘 사이에 놓인 거대한 벽만 확인한 채 빈손으로 돌아섰다. 북한은 영변 핵단지 폐기에 상응하는 미국의 조치를 고집했고, 미국은 상응조치 대신 종래 주장하던 FFVD(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에 생화학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WMD)까지 얹었다.

이후 북한은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복구와 함께 인공위성 발사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이 인공위성을 발사할 경우에 대비한 대응방안을 은밀히 논의 중이다(CNN). 트럼프 대통령은 “미사일을 발사한다면 매우 실망할 것”이라고 했고,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미사일 발사는 북미대화의 자살행위”라고 규정했다. 조심스러운 비난이다.

북한이 위성을 발사할 경우, 미국은 한미군사훈련 재개와 제재 강화로 응수할 것이다. 위성발사를 위성발사로 보지 않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로 간주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반도 정세는 ‘화염과 분노’, ‘미치광이’, ‘로켓맨’이 회자되던 2017년으로 회귀할 수 있다. 당연히 비핵화 협상은 장기 교착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하노이 메트로폴 호텔에서 함께 걷고 있다(2019.02.28)(자료:The New York Times by Doug Mills) ⓒ스트레이트뉴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하노이 메트로폴 호텔에서 함께 걷고 있다(2019.02.28)(자료:The New York Times by Doug Mills) ⓒ스트레이트뉴스

북미관계, 살얼음판 아닌 희망적 전기

그러나 하노이 ‘노딜(no deal)’ 회담을 보는 워싱턴과 여의도 정가의 시각은 의외로 평온하다. 북한이 위성을 발사하는 단계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란 전망 탓이다. 오히려 하노이 회담에서 두 정상이 솔직한 대화를 통해 서로의 요구조건을 명확히 제시했다는 점에서 입장 차이를 극복할 희망적 전기가 마련됐다는 평가다.

북한, 실제 위성 발사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란 전망 우세

실제로 하노이 회담에서 연락사무소에 대한 의견 접근이 이뤄졌다. 회담 결렬 이후, 북한 매체는 여전히 비핵화 의지를 드러내 보이고 있다. 미국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도 “대화의 창구가 열려 있다”고 강조한다. 대북 강경파인 존 볼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강성 발언 역시 선을 넘지 않고 있다. 판을 깨거나 뒤집으려는 모습은 아니다.

핵・경제 병진 노선을 경제발전으로 돌린 북한은 다시 과거로 돌아가기 어렵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행보에서도 그런 조짐은 읽히지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지금까지 이뤄낸 성과를 무시한 채 2017년으로 돌아가기는 쉽지 않다. 국제적 비난과 국내 정치현실이 가로막고 있어서다.

트럼프 옥죄는 미국 내 정치현실

“회담 도중에 미국 측은 영변지구 핵시설 폐기 조치 외에 한 가지를 더 해야 한다고 끝까지 주장했다.”

회담이 결렬된 지난달 28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협상을 깬 측은 미국이라는 주장이다. 최 부상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대화를 더 하고 싶어 했지만,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강경 입장을 고수하는 바람에 협상 결렬까지 이르게 됐다.

하노이 회담 결렬을 보는 국제적인 시각과 한국 내 시각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북한이 선제적으로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을 폐쇄했고, 상응조치가 있을 경우 영변 핵시설 폐기까지 제시했지만, 미국이 상응조치는커녕 생화학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WMD)를 덤으로 얹었기 때문이다.

북한으로서는 '주고 받는(give and take)' 게 아닌 ‘주고 주고(give and give)’다. 짜증이 날 만도 하다. 이런 상황이라면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을 복구하려는 북한을 비난하기는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사일을 발사한다면 매우 실망할 것”이라며 수위를 낮춘 이유도 이 때문이다.

북미, 두 정상의 신뢰와 우호관계 내세우며 관망세 유지

한국인들에게 하노이 회담은 매우 중요했다. 하지만 결렬됐다. 그렇다면 회담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노딜’을 감수하면서 북한을 강하게 압박한 이유가 궁금해진다. 워싱턴 언론들은 그 첫 번째 이유로 국내정치를 꼽는다.

언론뿐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 자신도 국내정치가 하노이 회담 결렬의 원인이라고 이미 밝힌 바 있다. 그 원인은 바로 ‘마이클 코언(Michael Cohen) 변호사 청문회’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되는 동안 미국 하원 위원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러시아 스캔들과 성추문 의혹 등에 대해 진술하는 마이클 코헨 변호사(2019.02.27)(자료:nbcbayareanews) ⓒ스트레이트뉴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되는 동안 미국 하원 위원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러시아 스캔들과 성추문 의혹 등에 대해 진술하는 마이클 코언 변호사(2019.02.27)(자료:nbcbayareanews) ⓒ스트레이트뉴스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였던 마이클 코언은 하노이 회담이 한창이던 지난달 26일부터 28일까지 의회 청문회에 출석해 트럼프 대통령의 러시아 스캔들과 포르노 여배우 성추문 의혹 등에 대해 폭탄발언을 쏟아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회담이 결렬된 직후 기자회견에서 “거짓 청문회가 이처럼 엄청나게 중요한 정상회담 도중에 진행된 것은 정말 끔찍한 일”이라고 비난했다. 지난 3일(현지시간)에도 자신의 트위터에 “(마이클 코언 변호사 청문회가) 북한과의 회담장에서 걸어 나오도록 기여했을 수 있다”고 썼다.

책임을 민주당에게 돌리는 정치적 수사다. 국내정치가 국제정치의 발목을 잡아끈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중간선거에서 하원을 잃었다. 방어막이 사라졌다. 민주당으로서는 모처럼 잡은 대형 이슈를 놓칠 생각이 전혀 없다. 상원에서 부결될 것이 확실하지만, 트럼프 대통령 탄핵안까지 만지작거리고 있다.

하노이 회담 결렬 원인은 워싱턴 정가 강타한 코언 청문회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워싱턴의 보수 엘리트 정가와 보수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보수 세력의 압박이 취임 전부터 만만치 않았던 상태다. 북한과의 이른바 ‘스몰딜(small deal)’로는 보수를 설득하기 어려워진 상황.

그렇다면 ‘FFVD(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라는 이름의 빅딜이 아닌 바에야 보수의 압박을 받아들이는 모양새를 취하는 편이 낫다. 그런 행보의 다른 이름이 바로 ‘노딜’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상응조치는커녕 생화학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WMD까지 보탠 이유일 수 있다.

북미 양측으로부터 증발해버린 비핵화 시간표

“실무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졌던 지난해 12월, 두 지도자의 친서 교환이 돌파구가 됐다”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지난 11일(현지시간)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이 주최한 세미나에서 한 발언이다. 북한과의 물밑 채널을 복원하기 위해 노력 중인데, 양 정상의 친서가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는 패착이다.

19일(현지시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은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가 뉴욕의 유엔 북한대표부와 물밑 채널을 복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그를 막고 있다”고 보도했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이 주력해야 할 사안은 코언 청문회와 민주당의 압박이다. 적어도 코언 청문회가 열리기 전인 지난달 26일 전까지, 이 두 가지 문제를 일거에 해소할 수 있는 사안은 하노이 정상회담이었다.

그러나 코언 청문회가 가져온 파장은 북미 간 스몰딜로 해결될 수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과의 물밑 채널 복원이 큰 의미가 없음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졸 볼턴 국가안보보좌관뿐 아니라, 그동안 북한과 신뢰 구축에 힘써왔던 폼페이오 국무장관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처한 국내정치 상황을 잘 이해하며 움직이고 있다.

보수와 민주당 압박에 '스몰딜(small deal)' 대신 '노딜(no deal)' 택한 트럼프 대통령

관건은 북미 양측의 차이를 어떻게 좁히느냐다. 북한은 지금까지처럼 ‘톱다운 방식’을 통한 ‘단계적, 동시적 비핵화’를 원한다. 지금까지 미국이 보인 태도로 볼 때, 북한은 “발가벗으라”는 미국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 미국 역시 ‘톱다운 방식’을 버리지 않았지만, ‘일괄 타결’을 원한다. 2018년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 이후 북미 협상이 거둔 실질적 성과는 없다.

다만, 북미 정상의 신뢰와 우호적 관계는 살아 있고, 양측 모두 애써 그걸 강조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포괄적 합의, 단계적 이행’이 다시 중간에 끼어들어야 할 지점이다.

그러나 그 대상은 북한으로 한정된다. 대북특사 파견이나 정상 간 실무회담 정도가 될 수 있다. 물론, 유엔이 허용한 이산가족 화상 상봉이나 제재의 범위를 벗어난 사업은 하루빨리 시작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관계로 북미관계를 이끌겠다”고 한 이유다.

코언 청문회에 달린 비핵화 프로세스, 한국은 남북관계 지속 발전시켜야

우리 한국으로서는 안타깝지만, 비핵화 프로세스의 열쇠는 이제 코언 청문회로 넘어갔다. 3차 북미정상회담은 언제든 열릴 수 있지만, 세 번째 회담이 또 한 번 ‘노딜’로 끝난다면 뒷감당이 어렵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이 코언 청문회를 성공적으로 넘어선다면, 빅딜에 대한 부담이 어느 정도 사라진다. 3차 북미정상회담이 스몰딜로 마무리된다 해도, 그것 자체로 매우 큰 효력을 발휘할 것이고, 남북관계 발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빅딜과 스몰딜의 향배가 청문회에 달려 있는 것이다.

지금은 친서 교환이나 친서 교환에 따른 북미 물밑 채널 복원이 의미를 가질 때가 아니다. 미국과 북한이 비핵화 의지만 천명하는 이유, 양 정상의 우호적인 관계만 강조되는 이유, 청와대가 남북관계를 내세우며 조용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비핵화 프로세스의 시간표는 러시아와 포르노 여배우, 그리고 미국 국세청이 가지고 있다.
bizlink@straightnews.co.kr

관련기사

저작권자 © 스트레이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