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이트뉴스 고우현기자]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악화하기만 하던 북미 갈등이 최근 미묘한 반전을 거듭하고 있는 양상이다. 

북미 간 대화가 재개된다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하노이에서처럼 국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결렬시키는 위험성은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협상이 재개되더라도 북미가 서로에 대한 불신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향후 회담 역시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는 시각이 대체적이다. 

두 나라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한 것은 지난 22일 북한이 갑자기 개성공단 남북연락사무소 인원을 철수한 것에서 시작됐다. 이 조치는 미국 재무부가 현지시간 21일자로 북한에 대한 추가제재를 발표한 직후에 나온 것이어서 그 파장이 컸다. 

미국의 발표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신뢰할 수 없다며 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믹 멀베이니 대통령 비서실장,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 등이 대대적인 대북 압박 여론전을 펼친데 이은 것이었다. 미국이 본격적으로 대북 압박 행동에 나섰다는 관측이 나왔다.

북한도 맞섰다. 하노이 회담 결렬 뒤 서해 로켓 발사장에서 로켓 발사 준비를 빠르게 진척시켜 완료함으로써 언제든지 인공위성을 발사할 수 있다고 미국을 압박했다. 그럼에도 미국의 압박 여론몰이가 계속되자 최선희 외무상 부상이 지난 15일 평양 주재 외신과 외교관을 대상으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최 부상은 "조만간 김 위원장이 (인공위성 발사 등을) 결심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이 압박을 멈추지 않은 채 추가 제재를 발표하기에 이르렀고 북한은 개성 연락사무소 인원을 철수하는 것으로 강경하게 대응했다. 향후 위성을 발사할 것이며 이로 인해 미국과 핵협상이 완전히 파탄남에 따라 남북관계가 경색되는 것도 감수할 것임을 시사했던 것이다.

분위기 반전의 계기는 트럼프 대통령이었다.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줄곧 침묵을 지키던 트럼프 대통령은 재무부의 추가제재 발표 뒤인 22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대규모의 추가 대북 제재를 중지하도록 지시했다"고 전했다. 이에 북한도 25일 연락사무소 인원을 복귀시켜 화답하고 나섰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정가에 중대한 변화가 감지됐다. 트럼프 미 대통령의 2016년 대선 당시 러시아와 공모혐의를 수사해온 로버트 뮬러 특검이 '증거 없음'을 밝히는 수사결론을 확정했다고 24일(현지시간) 발표된 것이다. 당선 이후 줄곧 탄핵 가능성에 시달리던 트럼프 대통령이 면죄부를 받은 셈이어서 2020년 대선에서 재선할 가능성이 생겼다.

이토록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지난 북한 최 부상의 기자회견문 전문이 뒤늦게 언론에 보도됐다. 발언문에는 15일 현장 기자회견에 참석했던 러시아 타스 통신, 미 AP 통신 등이 보도하지 않은 새로운 내용들이 담겨 있었다.

바로 하노이 회담에서 북한이 영변 핵단지 폐기에 대한 보상으로 주요 경제제재를 해제하자고 제안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스냅백(snap back) 조항을 추가해 받아들이려 했으나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볼튼 보좌관이 반대해 회담이 결렬됐다는 것이었다. 스냅백 조항은 '제재를 해제했다가도 북한이 핵활동을 재개하는 경우 제재를 다시 부과한다'는 규정을 말한다.

회견문은 아울러 "미국 측은 6.12(싱가포르 회담) 공동성명을 이행하려는 의지가 없이 저들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계산법을 가지고 이번 수뇌회담에 나왔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라고 밝혀 미국이 회담에 진지하게 임하지 않았음을 지적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지난달 28일(현지시간) 하노이 메트로폴 호텔 회담장에서 회담하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지난달 28일(현지시간) 하노이 메트로폴 호텔 회담장에서 회담하고 있다.

미국이 설명하는 하노이 회담 결렬 이유와 북한이 설명하는 회담 결렬 이유는 매우 대조적이란 평가다. 미국이 여론전을 통해 조성한 분위기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인 반면, 북한은 미국의 국내정치적 이해관계가 원인이었음을 지목한 것이다.

최선희 부상의 발언 전문이 공개되고 트럼프 대통령이 제재를 중지시켰다고 밝힌 점, 북한의 개성 연락사무소 인원 복귀는 핵협상이 재개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최 부상이 기자회견에서 스냅백 조항이 논의됐음을 밝힌 것은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의 제안을 수용할 의사가 있음을 밝힌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 회견문을 공개한 사람도 북미간에 핵협상이 타결될 가능성이 있었는데 아쉽게 무산됐음을 알리려는 의도를 가졌을 것이란 분석이다.

이런 상황 변화에 따라 북미간 핵협상이 다시 재개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협상이 재개된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하노이에서처럼 국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결렬시키는 위험성이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탄핵 가능성이 사라졌고 재선가능성도 높아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폼페이오 장관과 볼턴 보좌관이 북한을 신뢰할 수 없다고 비판하는 것이 단지 정치적 이해타산만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볼턴 보좌관 등이 하노이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제안에 조건부로 동의하지 못하도록 설득한 논리는 국내정치적 이해관계였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미국의 핵심 당국자들이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믿지 못하는 것 역시 사실이다.

북한은 '완전한 비핵화 뒤 제재 해제'를 내세우는 미국 입장을 '강도적 요구'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북한이 모든 핵을 포기하면 미국이 한순간에 북한을 무너트릴 것이라는 불신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북한의 공세도 마찬가지다. 앤드루 김 전 센터장이 밝힌 대로 북한이 하와이와 괌의 미 전략자산을 철수하고 북한을 겨냥한 미국 본토의 전략자산도 폐기하는 것과 동시에 주한미군까지 철수해야 완전한 비핵화를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북한이 최종적으로 핵을 포기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북한은 당장은 부분적인 비핵화를 통해 목줄을 조여오는 경제 제재를 풀고 이후에는 핵보유국으로 남겠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의심을 사고 있는 형국이다.

이럴 경우 핵협상이 재개되더라도 북미가 서로에 대한 불신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지 않는 한 회담 성공이 쉽지 않을 것이란 견해가 많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최종적 비핵화를 향한 로드맵을 작성하고 로드맵에 북미간에 신뢰를 구축하는 내용들을 다수 포함시킨다면 문제를 풀어갈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북미간 협상이 언제 재개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협상을 포기하지 않는 한 언제라도 재개될 수 있다는 시각이 대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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