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에 나타난 자본주의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은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자본가들의 무한 이윤획득에 의해 세계 경제는 불균등하고 불공정해지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강대국의 힘이 거세지면서 각종 모순적 요소가 심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을 알기 위해선 현대 경제의 중요한 쟁점들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 쟁점들의 핵심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경제학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과 논쟁을 우리가 알아야 할까? 몰라도 무방한 것들이 있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 경제학 논쟁이 경제 정책으로 이어지고, 그 정책은 보통 누군가에게는 유리하고 누군가에게는 불리할 뿐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스트레이트뉴스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경제의 주요 요소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본지 선임기자 현재욱의 저작인 「보이지 않는 경제학」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환율을 알면 세상이 보인다

혼자 사는 남자가 있다. 사람들은 그를 ‘기러기 아빠’라고 부른다. 시애틀의 사립 중학교에 다니는 딸과 아내의 생활비로 매달 5,000달러를 보낸다. 이번 달에는 3만 달러를 더 송금해야 한다. 시애틀 교외에 사는 아내와 딸이 학교 가까운 데로 집을 옮겨야 하기 때문이다. 그에게 판촉 일을 맡긴 업체에서 잔금 지불을 미루는 바람에 송금이 며칠 지연되었다.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아내가 전화했다.

더 늦어지면 대출이라도 받아야 할 판이다. 다음 날 익숙한 알림 소리가 울리고 돈이 들어왔다는 메시지가 뜬다. 스마트폰으로 달러 시세를 확인해보니 그 사이에 환율이 35원 떨어졌다. 송금이 늦어진 덕분에 120만원 넘게 이득을 보았다. 횡재한 기분이다. 오랜만에 친구와 술 약속을 잡는다.

도대체 환율이란 무엇인가? 환율은 왜 끊임없이 변하는 걸까? 왜 그때마다 누구는 손해 보고 누구는 이익을 보는 걸까? 왜 고환율은 수출 대기업에 유리한가? 환율이 오르면 왜 물가가 따라 오를까? 환율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세상에는 수많은 종류의 화폐가 있고, 그 화폐들 간의 교환이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영국으로 여행을 가려는 사람은 출발에 앞서 한국 돈을 영국 돈으로 바꾸어야 한다. 원화를 파운드화로 바꾸어야 영국에서 쇼핑도 하고 여기저기 편하게 다닐 수 있다.

마찬가지로 영국 사람이 서울 구경을 하려면 원화가 필요하다. 인사동에서 녹두전을 사 먹을 때 파운드화를 낼 수는 없지 않겠나? 50파운드 지폐를 받으면 식당 주인이 아주 난감해할 것이다.

화폐 교환이 필요한 이는 비단 여행자뿐만이 아니다. 한국의 식품회사가 미국에서 밀가루를 수입하려면 미국 돈이 있어야 한다. 신사임당이 그려진 5만 원 지폐를 아무리 많이 싸 들고 가봐야 밀가루를 내주지 않는다. 수년 전에 비하여 가격이 반 토막 난 석유도 마찬가지다. 반드시 달러로 결제해야만 계약한 물량을 받을 수 있다.

[도표 3] 원/달러 환율 추이(2013~2018)
[도표 3] 원/달러 환율 추이(2013~2018)

[도표 3]에서 보듯, 원/달러 환율은 오르내림이 가파르다. 그만큼 한국 경제가 불안정하다는 뜻이고, 좋게 말하면 역동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그림을 파도라고 생각하면 배를 띄우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2014년 7월 4일 원/달러 환율은 1,007원이었다. 2016년 3월 4일에는 1,244원. 무려 237원이나 올랐다. 그 후로 등락을 거듭한 끝에 2018년 1월 19일에는 1,064원까지 떨어졌다. 이 시계열 그래프가 계속 떨어질지, 아니면 다시 치고 올라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럴 리는 없지만 미국의 밀값이 일정하다고 가정해 보자. 제분업자 김대박은 2014년 7월 4일에 밀 5,000톤을 100만 달러에 수입했고, 곡물거래업계의 큰손 강부자도 2016년 3월 4일에 같은 양을 수입했다. 누가 더 이익을 보았을까? 간단히 계산이 나온다. 편의상 환전수수료와 송금수수료는 없는 것으로 치자. 두 사람이 미국에서 밀을 수입하려면 일단 한국 돈을 미국 돈으로 바꾸어야 한다.

김대박은 환율이 1,007원일 때 거래했으므로 100만 달러를 만들기 위해 한국돈으로 10억 700만 원을 지불했고, 환율이 1,244원일 때 거래한 강부자 역시 100만 달러를 송금하기 위해 자신의 통장에서 12억 4,470만 원을 지출했다. 강부자는 김대박에 비해 2억 3,770만 원을 손해보았다. 그런데 실제로는 강부자가 승자다. 환율도 변하지만 곡물값도 변하기 때문이다.

곡물은 보통 부셸bushel이란 단위를 쓴다. 1부셸은 약 27.2킬로그램이고 5,000톤이면 약 18만 3,800부셸이다. [도표 4]의 세로축 가격단위는 센트cent다. 2014년 7월 4일의 밀(소맥) 시세는 1부셸당 697센트이고 2016년 3월 4일 시세는 454센트다. 1년 8개월 만에 소맥 5,000톤의 가격이 128만 1,000달러에서 83만 4,450달러로 떨어졌다. 일단 달러로만 계산하면 강부자가 44만 6,550달러를 덜 냈다. 이 금액을 다시 구매 시점의 원/달러 환율로 따져보아야 한다.

김대박은 한국 돈으로 12억 8,997만 원을, 강부자는 10억 3,805만 원을 썼다. 똑같이 밀 5,000톤을 수입했는데, 김대박이 2억 5,192만 원을 더 썼다. 환율로는 김대박이 유리했지만 밀값이 훅 떨어지는 바람에 강부자가 약 2억 5,000만 원을 절감할 수 있었다.

만약에 김대박이 수입한 밀가루를 국내에서 처분하고, 판매대금 가운데 일부를 환율이 1,020원일 때 달러로 바꾼 다음 외화보통예금으로 은행에 넣었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30만 달러를 예치했다고 가정해 보자. 환율에 남달리 민감한 김대박은 꾹 참고 기다렸다가 마치 신의 계시라도 받은 것처럼 환율이 최고점을 찍은 2016년 3월 4일에 보유한 달러를 전부 원화로 바꾼다.

환율이 1244.7원이니까 간단히 계산해서 달러당 224.7원씩, 총 6,741만 원의 이득을 올렸다. 이런 경우를 환차익換差益이라고 한다. 반대로 손해 보는 경우는 환차손換差損이다.

도대체 왜 환율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걸까? 화폐도 밀가루나 석유처럼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따르기 때문이다. 수요, 즉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 값이 올라간다. 반대로 공급, 즉 팔려는 사람이 많아지면 값이 떨어진다.

화폐도 사고파는 상품이라고 생각하면 모든 게 간명해진다. 금, 옥수수, 반도체, 자동차, 석유 따위와 마찬가지로 화폐 역시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서 가격이 정해진다. 이렇게 세계 여러 나라의 화폐를 사고파는 시장을 외환시장外換市場이라고 한다. 그리고 두 화폐 간의 교환비율을 환율換率, exchange rate이라고 한다. 환율은 상대적이다.

달러 공급이 줄면 달러 가치는 높아지고 원화 가치는 떨어진다. 따라서 환율이 올라간다. 달러 수요가 늘면 달러 가치는 높아지고 원화가치는 떨어진다. 따라서 환율이 올라간다. 수출이 늘면 달러가 많이 들어오므로 환율이 내리고, 수입이 늘면 달러가 새어 나가므로 환율이 오른다.

외국인 투자가 증가하면 달러를 비롯한 외환보유고가 높아져서 환율이 내리고, 외국인들이 한국 시장에서 철수하면 외화도 같이 빠져나가기 때문에 환율이 올라간다. 이게 다 같은 말이다. <계속>

※ 이 연재는 스트레이트뉴스가 저자(현재욱)와 출판사(인물과사상사)의 동의로 게재한 글입니다. 무단 도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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