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개특위, 정개특위, 공수처법과 선거제 개편안 패스트트랙 올려
의원 300석, 지역구 줄이고 비례대표 늘린 권역별・준연동 비례대표제
공수처법, 공수처장 임명절차 등 이견 있으나 큰 걸음 내디뎌
한국 정치지형에 더 강한 견제와 균형 원리 더하는 계기돼야


[스트레이트뉴스=김태현 선임기자]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등 여야 4당이 자유한국당과 대치하며 폭력사태로 얼룩진 ‘동물국회’를 연출한 지 일주일 만에 공수처법과 선거제개편안, 검경수사권조정안이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됐다.

지난 29일 밤 11시 50분,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 위원장 이상민 의원)은 전체회의를 열어 여야4당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공수처법) 합의안과 바른미래당의 추가안(권은희 의원 안)을 동시에 패스트트랙에 올렸다.

이어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 위원장 심상정 의원)은 약 40분 후인 30일 새벽 0시 30분경 공직선거법 개정안과 검경수사권 조정안을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했다. 이날 정개특위는 행정안전위원회 회의실에서 속개될 예정이었지만,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반발로 정무위원회 회의실로 장소를 바꿨다.

정개특위 심상정 위원장과 사개특위 이상민 위원장 ⓒ스트레이트뉴스
정개특위 심상정 위원장과 사개특위 이상민 위원장 ⓒ스트레이트뉴스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법안들은 상임위 180일, 법제사법위원회 90일, 본회의 부의 60일 등 최대 330일이 경과하면 합의에 이르지 못한다 해도 자동으로 본회의에 상정된다.

공직선거법 개정안

선거법 개정안의 주요 골자는 의원 정수를 300석으로 유지하되, 지역구 의석을 현행 253석에서 225석으로 줄이고, 비례대표 의석을 47석에서 75석으로 늘리는 것이다. 여기에 전국 정당 득표율을 기준으로 연동률 50%를 적용, 각 당의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한다. 연동률이 100%가 아니라서 ‘권역별・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불린다.

예를 들어, 내년에 치러질 총선에서 신생정당이 지역구 10석에 정당 득표율 30%를 획득할 경우, 이 정당에 배분되는 비례대표 의석수는 총 의석 300석 중 30%에 해당하는 90석에서 이미 당선된 지역구 10석을 제외한 80석의 50%, 즉 40석이 된다.

이러한 배분방식은 지역구 당선 가능성이 매우 높은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에 불리한 반면 소수 정당에 유리하며, 정개특위 심상정 위원장의 말대로 ‘힘 없고 돈 없고 권력 없는’ 정치 초년생들의 국회 진입에 유리하다. 자유한국당이 폭력국회를 만든다는 비난까지 감수해가며 극렬히 저항한 이유이다.

패스트트랙 지정 건과 관련, 사보임 논란에 휩싸였던 오신환, 권은희 의원(자료:newspim/chosun) ⓒ스트레이트뉴스
패스트트랙 지정 건과 관련, 사보임 논란에 휩싸였던 오신환, 권은희 의원(자료:newspim/chosun) ⓒ스트레이트뉴스

공수처법(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

이번에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공수처법(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은 여야4당이 합의한 법안과 바른미래당의 추가안(권은희 의원 안), 두 가지다.

두 법안 모두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이유는, 바른미래당이 오신환, 권은희 사개특위 위원의 사보임과 관련, 당 내홍을 수습하면서 권은희 의원 안에 대한 복수 상정을 요청했고, 민주당과 정의당, 평화당이 이를 수용해서다.

여야4당 법안은 공수처가 대통령, 국회의원, 고위공직자를 범죄 수사 대상으로 하되, 기소권은 검・판사 및 경무관급 이상 경찰에 대해서만 가능하게 했다. 바른미래당의 추가안(권은희 의원 안)은 대상은 동일하지만, 공수처장 임명 절차가 다르다.

여야4당 법안은 대통령이 공수처장을 임명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바른미래당의 추가안은 대통령이 지명한 후보자에 대해 인사청문회를 거친 다음 국회 동의를 받도록 돼 있다.

또한 바른미래당의 추가안은 공수처가 기소권을 행사하기 전에 일반 국민으로 구성된 ‘기소심의위원회’의 심의 및 의결을 거치도록 강제했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민주평화당은 “공수처의 기소권을 상당 부분 제한하는 조치”라며 이견을 보이고 있다.

공수처법과 선거제 개편안이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됨에 따라, 향후 본회의 상정까지 여야4당 간 협의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나, 자유한국당이 “패스트트랙 지정은 합의를 중시하는 국회의 정신과 어긋난다”며 반대하고 있어 난항이 예상된다.

패스트트랙 지정, 한국 정치지형 바꾸는 계기되길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고인 물’ 대신 ‘새로운 물’을 공급하는 순기능이 있다. 지역에 기반해 안주하는 의원을 걸러내는 것이다. 이를 통해 지역주의도 어느 정도 희석될 소지가 높다.

늦었지만, 연전 인구에 회자됐던 ‘흙수저’에게도 기회가 제공된다. 능력 있는 정치 신인의 국회 입성이 한결 쉬워지는 것이다. 또한 지금까지 보수와 진보를 양분해왔던 거대정당의 힘이 여타 소수정당으로 분산되는 효과도 있다. 형식적 민주주의에서 실질적 민주주의로의 이행이 더딘 한국 정치지형에, 더 강한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이번에 지정된 패스트트랙 중 특히 공수처법(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9년 4월 30일 당시 이인규 중수부장 및 우병우 주임검사와 마주한 지 정확히 10년째 되는 날 지정됐다. 우연 치고는 의미심장하다.

공수처법이 우리 사회에 미칠 파급력 역시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최경환 전 기재부 장관, 원세훈 전 국정원장, 우병우 전 민정수석,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조현오 전 경찰청장, 이들 모두 공수처가 가동되고 있었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통제메커니즘을 두려워했을 법한 인물들이다.

이번 패스트트랙 지정 안건들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민주평화당 등 여야3당은 “개혁법안 통과의 시작”, “정치와 국회, 사법 개혁의 신호탄” 등 환영 논평을 내놓았다. 반면 바른미래당은 논평을 내지 않았고, 자유한국당은 “민주주의의 사망”, “좌파독재”, “민주당의 사법 장악 플랜” 등을 거론하며 ‘강경 투쟁’에 나섰다. 국회 논의 과정이 쉽지 않을 것임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선거철만 되면 이구동성으로 내세우지만, 선거 결과와 당리당략에 따라 서슴없는 말 바꾸기 대상으로 전락했던 공수처법과 선거제 개편안이다. 이제 330일이라는 시한이 정해졌다. 노자는 “동굴은 비어야 쓸모가 있다”고 했다. 권력과 권위와 ‘또 가지고 싶은’ 탐욕을 내려놓아야 국가가 산다.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은 민초가 산다. 여야 없이 내려놓고 고민할 때, 신속처리안건들은 국가를 제 길로 올려놓는 민초와 민주의 ‘패스트트랙’이 될 것이다.
bizlink@straightnews.co.kr

관련기사

저작권자 © 스트레이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