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이야, 국개의원이야?」
「거리노숙인에게까지 표를 구걸하는 정치」
「한가위에 펼치는 그들만의 가면놀이」
「국민은 열심히 추수하고 한가위에 마음껏 노는 정치인 원해」

 

각 당마다 추석 때 듣고 온 민심을 정리하는 일에 분주하다. 경제회복에 힘쓰라는 요구, 민생과 복지를 돌보라는 요구 등 국민의 목소리는 다양했지만, 그중 이번 추석에 가장 크게 울린 목소리는 ‘정치가 프레임 짜기에 너무 몰두하는 바람에 대두된 내부 분열과 권력 다툼을 경계하라’는 것이었다.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어떤 당도 지지하지 않는 무당층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런 현실의 배경에는 민생과 복지는 외면한 채 ‘자기편 더 늘리기’에만 몰두하고 있는 국회의원들의 근무태만이 자리하고 있다. 민심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정치인들이 한가위에 벌이는 가면놀이를 노숙인의 시각으로 한번 살펴보자. 추석 음식도 많이 먹고 했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말이다.

노숙인과 국개의원

죽지도 않은 4대강을 살려낸답시고 혈세를 죽여 가며 아우성치던 2009년의 추석 전날, 귀향인파로 북적이는 서울역 광장 앞 도로에 시커먼 승용차들이 줄지어 도착했다. 차문이 열리고 후다닥 뛰쳐나오는 검은 양복들. 조직폭력배인가 했는데, 뒷자리에서 내리는 면면을 살펴보니 여당의 최고위급 국회의원들과 수행원들이었다.

당시 필자는 여수역에서 3년, 서울역에서 1년, 도합 총 4년의 거리노숙 생활을 ‘노숙인을 위한 봉사활동’을 통해 청산해가고 있는 중이었다.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부지런히 역사를 향해 걸어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경상도 기장 출신 노숙인 김모씨와 전라도 해남 출신 이모씨가 투덜거렸다.

“저것들 뭐꼬?”
“아따, 딱 보믄 멋인지 몰라서 그라능가? 국개의원들 아녀.”
“국개의원이 뭐꼬. 고생하는데 국회의원이라꼬 불러주야 안 되겠나.”
“저것들이 하는 것이 머가 있다고? 하는 짓거리들이 다 지들 밥그릇 싸움이제.”
“아이다. 저 양반들도 바쁘다 아이가. 오늘도 민생 챙긴다꼬 저래 설치고 댕기,”
“이눔아, 민생은 국회에서 챙기야제, 추석 때 여그는 머덜라고 와? 저것이 민생 챙기는 것이여? 집에 가서 할배 할매헌테 내 얘기 잘 혀라, 이라고 오는 것이제...”

그렇지 않아도 며칠 전부터 경로당 인사다, 사랑의 밥차 봉사다, 쪽방 방문이다, 해가며 정치인들의 추석 민심 행보가 TV와 신문을 장식해오던 터였다. 험담으로 시작된 두 노숙인의 입씨름은 서로 불끈거려가며 ‘지방 불균형 발전’으로 비화되는가 싶더니 급기야 주먹다짐으로까지 이어졌다.

흔히들 노숙인이 되는 원인은 게으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게으르기 때문에 일을 하지 않고 자신조차 돌보지 않으며, 그래서 더러운 몰골로 술에 절어 산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본말이 전도된 착각이다.

신자유주의neo-capitalism의 무한경쟁 시스템은 세계적으로는 낙오되는 국가를, 국내적으로는 낙오되는 개인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누구나 경쟁이라는 단어에서 자신의 승리를 떠올리며 경쟁을 당연시하지만, ‘한 사람의 승리’는 반드시 ‘적어도 한 사람의 실패’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경쟁이란 그런 것이다.

그런데 노숙인들의 학력을 보면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애초에 경쟁이라는 용어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들이 일을 할 수 있는 직장이란 영세한 제조업체 직원이나 건설현장 일용직, 식당 배달원, 전단지 배포 아르바이트와 같은 허드렛일들뿐이다. 그러다가 오토바이 사고를 당하거나 어디가 삐끗하기라도 하는 날이면, 그날로 밥벌이 종료. 밥벌이를 못하면? 당연히 ‘빌어먹을’ 수밖에.

따라서 노숙인이 되는 직접적인 원인은 ‘게으름’이 아니라 ‘일할 수 없음’이며, 원인 제공자는 교육 불평등, 사회 안전망 부재, 복지 부재와 같은 ‘빌어먹을’ 현상을 방치해온 공동체이고, 공동체 중에 가장 큰 범주는 국가다. 결국 노숙이라는 현상은 개인 나태의 원인이 아니라 국가 태만의 결과.

경쟁심리가 이미 뼛속까지 스며들어버린 우리 사회는 초등학교 중퇴에 다리나 팔이 불편한 사람에게 일자리를 내줄 만큼 포용적이지 않다. 사람들이 포용적이지 않아서가 아니다. 경쟁을 지향하는 사회가 포용적이지 않은 사람을 선호하기에 그렇게 적응해가는 것일 뿐이다.

의원님, 민생 좀 챙겨주세요

경상도 출신 김모씨와 전라도 출신 이모씨의 주먹다짐이 차츰 격렬해지더니 얼마 후 김모씨가 날린 주먹에 이모씨의 코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그러자 백발의 서울 출신 새내기 노숙인, 박모씨가 말리고 나섰다.

“야야, 그만들 해! 여기(서울역 노숙)까지 와서 쌈질이냐!?”

▲ 추석 당일 배식줄 (2010년)

새내기 박모씨가 노숙으로 잔뼈가 굵은 김모, 이모씨에게 호통을 칠 수 있었던 이유가 있다. 서울역에서는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대단한 학구파로 대우를 받는데, 그의 최종 학력은 무려 서울대 문리대, 더군다나 국내 굴지의 언론사인 한국일보사를 거쳐 경향신문사 취재본부장까지 지낸 인텔리겐챠였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서울역에서 노숙생활을 하고 있는 이유는 퇴직금을 몽땅 쏟아 부었던 프랜차이즈 사업이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촉발되었던 세계 경제위기recession 때 한순간에 날아가 버렸기 때문이다.

“싸우지 말고, 잘들 지내. 니들이 몰라서 그렇지, 저 사람들 고생 많이 해.”

그는 징징대는 두 사람을 앉혀놓고 해박한 정치적 식견과 정교한 논리를 동원해가며 정치인들이 추석 연휴 민심에 매달리는 이유를 차분히 설명했다.

점심 배식을 마친 후, 10여 명의 노숙인들과 함께 옛 서울역사 리모델링 공사를 위해 세워둔 양철벽 밑에서 양지받이를 하고 있는데, 노숙인 한 사람이 소리치며 다가왔다.

“저기 난리 나부렀다. 다 쫓겨나부렀어야!”
“쫓겨나다니? 누가?”
“아, 거, 국개의원들 말이여, 국개의워~언!”

여당 국회의원들이 그 시각 역사 밖에서 반정부행사를 벌이고 있던 사람들에 의해 쫓겨났다는 소리였다. 노숙인들은 저마다 쾌재를 불러댔다. 그들은 여당이나 야당이 문제가 아니라 국회의원이라는 신분 자체가 쫓겨난 것을 즐거워하는 듯 보였다.

잠시 후, 거물급 정치인을 필두로 십 수 명의 정치인들이 양지받이를 하고 있는 노숙인들 앞을 지나쳐갔다. 어디로들 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 중 누구도 노숙인들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아니, 그들은 전깃줄에 앉은 참새마냥 담벼락 밑에 줄지어 앉아 있는 노숙인들을 발견하자마자 아예 땅바닥만 보고 걸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은 ‘비민생 현장에 대한 익숙한 외면’이었다.

약 1시간 후, 그들이 다시 노숙인들을 향해 다가왔다. 그때 언론인 출신 새내기 박모씨가 벌떡 일어서더니 맨 앞에서 땅바닥만 보며 걷고 있는 거물 정치인을 불러 세웠다.

“의원님!”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 걷던 거물 정치인이 흠칫하며 고개를 들었다.

“의원님, 민생 좀 잘 챙겨주세요! 부탁합니다!”

그제야 가장 낮은 곳에서 살아가는 노숙인들이 놀란 그의 눈에 들었다. 대략난감... 박모씨의 돌발행동 탓에 동태눈을 하고 졸고 있던 노숙인들 역시 화들짝 놀라며 일어섰다. 거물 의원님이 반가운 시선으로 노숙인들에게 다가와 악수를 건넸지만, 그 시선은 TV에서 너무도 많이 봐왔던 ‘접대용’일 뿐이었다.

그런데 웃음을 머금은 시선과 달리, 그의 입은 한동안 머뭇거리기만 했다. ‘수고한다’라고 말을 해야 할지, ‘장사가 어떠냐’고 해야 할지, 아니면 ‘일 안하고 노시느라 고생이 많다’고 해야 할지 인사말이 퍼뜩 떠오르지 않는 것 같은 눈치였다.

“의원님, 민생 잘 챙겨주세요. 그리고 민생이 중요한 만큼, 여기 이 분들 생활도 좀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꼭 좀 부탁합니다!”

박모씨의 말에 거물 의원님은 ‘추석 잘 쉬라’는 그 흔한 덕담조차 건네지 못했다. 잠시 꿀 먹은 벙어리처럼 말문 닫힌 시간이 흐른 뒤, 그들은 다시 멀어져갔다. 엉겁결에 거물 정치인과 악수를 나누는 호사를 누렸던 노숙인들은 그 가을 내내 그 정치인이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지 아느냐는 둥,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안 되면 도대체 시킬 인물이 누가 있느냐는 둥 열변을 토하면서 돌아다녔고, 박모씨는 일거에 노숙인을 대변하는 ‘정통 언론가’로 급부상했다.

한가위만 같아라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여야 당대표를 위시한 주요 정치인들은 추석 전날이면 매년 서울역과 용산역을 찾았다. 그리고 그때마다 정통 언론가 박모씨는 가장 높은 사람에게 다가가서 “노숙인들을 좀 살펴 달라, 부탁한다”고 정중히 요청했다.

▲ 노숙인은 갈 수 없는 귀향길

2014년 추석 전날, 용산역을 방문한 박모씨의 눈에 ‘추석 밥상 민심 끌어당기기’에 열중하고 있는 여야 중진급 정치인들이 보였다. 그는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노숙인 몇 사람과 함께 가장 높은 사람에게 다가가서 악수를 청하며 노숙인들을 살펴 달라고 정중히 부탁했다.

정치인들은 더러운 몰골에 멈칫하면서도 노숙인들에게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역시나 2009년부터 그래왔던 다른 정치인들처럼 아무런 덕담도 건네지 못했다. 잠시 머쓱한 시간이 흐른 후, 그들은 또다시 멀어져갔다. 그 모습을 보던 박모씨의 안색이 변하고 있었다. 그때 중진 정치인들을 따르던 이들 중 뒤쪽에 있던 한 국회의원이 박모씨에게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면서 밝게 외쳤다.

“새XX입니다! 파이팅~~! 꼭 좀 부탁합니다!”

그 의원, 어느 나라, 어느 유권자를 보고 있는지, 자신이 누구에게, 왜 주먹을 쥐어 보이는지, 노숙인이라는 게 무엇인지 도무지 모르는 것만 같았다. 노숙인들을 보살펴달라는 부탁을 5년 동안 했건만, 400여 명(보건복지부 통계) 남짓밖에 안 되는 서울역 노숙인들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가 거의 없었던 상황, 박모씨의 낯빛이 푸르스름해지는가 싶더니, 서슬 퍼런 고함이 터져 나왔다.

“이놈들아, 평소 때는... 야! 명절만 되면 와서 사기를 치고 가냐? 제발, 한가위만 같아라! 한가위만 같으라고오!”

추석 민심 : 그들만의 가면놀이

2015년 추석, ‘부탁을 들어줘야 할 이들에게 부탁하는’ 이들이 또 나타났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원내대표와 사무총장 등을 대동하고 임진각과 성남에 있는 하늘꿈학교를 방문했으며,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이종걸 원내대표 등 지도부를 대동하고 용산역과 용산소방서 등지를 찾았다. 그밖에 중진 의원들도 당의 정책을 홍보하기 위해 여기저기 잰걸음으로 뛰어다녔다.

그런 가운데 ‘국민경선제’를 추진 중인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추진 중인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부산에서 만나 ‘안심번호를 활용한 국민공천제 도입’에 관해 ‘의견 접근’이라는 것을 했단다.

민심은 어떨까? 국민들은 국민경선제가 뭔지,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뭔지는 잘 모르지만, 두 당이 국민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은 안다. 어떤 판단인지는 도무지 모르겠으나 김무성, 문재인 두 대표가 뭔가 딜deal을 할 만하다는 판단에 따라 딜을 시도하고 있다는 사실도 안다.

그러나 대통령을 배출한 수권 정당을 거느리고자 하는 야심이 있으며, 정적들을 끊어내기 위해 국민경선제와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국민을 위한다는 가면’으로 포장해가고 있다는 사실도 안다. 국민들이 정통 언론가 박모씨처럼 민생을 돌봐달라고 아무리 부탁해도, 그들은 가면 뒤에서 그들만의 리그에 열중하고 있으며, 그런 작태의 배후에는 개인적인 욕심이 가장 크게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으로, 그저 느낌만으로도 알고 있다는 말이다.

못난 사람은 남 놀 때 일하고 남 일할 때 논다. 더 못난 사람은 남 놀 때 사기까지 쳐가며 일한다. 명절 때나 선거철만 되면 대중을 우롱하는 말을 서슴지 않고 내뱉는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딱 그 짝이다.

가을은 추수의 계절이고, 추석은 결실을 즐기는 날이다. 이제 온 국민이 놀 때 정치인도 놀아야 한다. 예측 불가능한 정치, 제때 추수도 못하는 정치가 무슨 자랑이라고, 이놈의 정치는 날만 새면 응급실이고 허구한 날 불난 집인가! 응급실과 불난 집만 왔다 갔다 하다 보니 국민들이 우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해지고, 그러니 연휴가 시작되자마자 역전이나 버스터미널처럼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 언저리에서 사기까지 쳐가면서 서성대는 것 아닌가!

우리 국민들은 예측 불가능한 정치를 하는 그들이 싫다. 그들의 ‘오리무중 정치’가 싫고, ‘그들만의 리그’가 징글맞고, ‘국민을 위한다는 가면’이 혐오스럽다. 우리 국민들은 무슨 수를 쓰든 제때 추수를 마친 다음, 한가위 때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서 그야말로 실컷 놀고먹으며 고향 사람들과 함께 휴식을 취하는 정치인을 만나고 싶다. 이게 민심이다. 열심히 정치하고 마음 놓고 놀아보라는 소리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어렵단 말인가?

 

김태현 두마음행복연구소 소장, 인문작가, 강연가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작권자 © 스트레이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키워드

Tags #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