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에 나타난 자본주의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은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자본가들의 무한 이윤획득에 의해 세계 경제는 불균등하고 불공정해지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강대국의 힘이 거세지면서 각종 모순적 요소가 심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을 알기 위해선 현대 경제의 중요한 쟁점들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 쟁점들의 핵심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경제학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과 논쟁을 우리가 알아야 할까? 몰라도 무방한 것들이 있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 경제학 논쟁이 경제 정책으로 이어지고, 그 정책은 보통 누군가에게는 유리하고 누군가에게는 불리할 뿐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스트레이트뉴스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경제의 주요 요소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본지 선임기자 현재욱의 저작인 「보이지 않는 경제학」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황금의 현대사

달러를 무기로 세계의 부를 농단해온 금융자본가들은 금을 화폐의 지위에서 끌어내렸다. 1971년 닉슨의 금불태환 선언 이후 달러는 중동의 원유를 볼모로 잡고 기축통화로서 권력을 되찾았다. 금의 제약에서 해방된 달러는 글로벌 도박판의 판돈을 한껏 키울 수 있게 되었다. 정치적으로는 신자유주의, 경제적으로는 신자본주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

그렇다면 금은 이제 돈이 아닐까? 그렇지 않다. 금은 과거 5,000년 동안 국적·인종·종교·계급·이념·취향을 초월하는 돈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역시 그런 돈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농경민이든 유목민이든, 금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차이가 없었다. 조지 소로스와 빌 게이츠도 그렇고, 도널드 트럼프와 북한의 김정은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찌 보면 금은 현재 지구상에서 유통되는 유일한 진짜 돈인지도 모른다.

금은 언제나 역사의 중심에 있었다. 전성기의 로마제국, 아바스왕조, 오스만제국, 청나라, 영국 등의 역사를 보면 항상 금이 흐르는 쪽으로 부와 권력이 이동했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금이 지닌 불변의 가치 때문일 것이다. 금은 부를 담는 깨지지 않는 그릇이고, 부를 지키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다.

흔히 국채, 귀금속, 달러, 엔화 등을 ‘안전자산’으로 꼽는다. 안전자산이란, 갖고 있으면 어지간해서 줄어들지 않는 자산을 말한다. 예금과 적금도 안전자산이다. 하지만 최고의 안전자산은 뭐니 뭐니 해도 금이다.

적금 들려고 은행에 갔다가 복리와 비과세 혜택의 유혹에 넘어가 적립식 펀드에 가입하는 사람이 있다. 다달이 월급통장에서 일정한 돈이 빠져나가는 적립식이든, 목돈을 한꺼번에 맡기는 거치식이든 이런 종류의 금융상품은 안전자산이 아니다. 수익률이 기대에 못 미치거나 심하면 원금을 까먹을 수도 있다. 은행 직원이 권유했더라도 높은 금리(수익률)를 바라고 위험한 금융상품에 투자한 것이므로 가입자에게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

주식은 대표적인 위험자산이다. 어떤 기업의 주식을 대량으로 샀는데 그 기업이 부도나면, 주식은 하루아침에 종이 쪼가리로 변한다. 전재산을 털어 그 주식에 투자했다면 바로 알거지가 된다. 장기간 주가의 오름세가 확실해 보일 때, 채권에 묶여있던 자금이 대거 주식시장으로 이동할 수 있다. 채권의 매력은 떨어지고 주가는 가파르게 상승한다. 이런 경우를 ‘대전환Great Rotation’이라고 한다. 세계 경제가 획기적으로 좋아지지 않는 한 이런 장면은 다시 보기 어려울 것이다.

시장이 불안해지면 자본은 안전자산으로 이동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극적인 대전환이 있었다. 주식시장에 몰렸던 자금이 안전자산으로 갈아타기 시작했다. 마치 게르만족의 대이동 같았다. 이번에 갈아탄 말은 달러도 채권도 아닌 금이었다. 당시 금값이 무섭게 치솟았다. 황금의 현대사를 간단히 살펴보자.

1971년 6월, 국제 금 시세는 온스당 40달러를 약간 상회하는 정도였다. 지금 보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그 당시에 금값이 40달러를 넘었다는 것은 세계사에 한 획을 그을 만큼 엄청난 사건이다. 왜냐? 당시 달러는 세계 유일의 금본위제 화폐였고, 미국 정부가 공인한 금값은 온스당 35달러였기 때문이다.

금 1온스=35달러. 이렇게 달러 가치가 금에 고정되어 있었다. 미화 3,500달러를 미국 은행에 가져가서 금으로 바꾸어달라고 하면 은행은 금 100온스를 내준다. 미국에서 국제 시세인 40달러보다 무려12.7퍼센트나 싼값으로 금을 팔았다는 이야기다. 달러를 가진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만 있었을까?

달러를 미국 은행에 가지고 가서 금으로 바꾼 다음, 그 금을 유럽 시장에 내다 팔면 막대한 시세차익이 생긴다. 세상에 이렇게 손쉬운 장사도 없을 것이다. 프랑스와 영국은 보유한 달러를 금으로 바꾸기 시작했고, 미국의 금 보유고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마치 썰물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결국 그해 8월 15일,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금본위제를 포기한다.

1973년 석유파동oil shock 때 금값은 온스당 100달러 대에 진입한다. 1973년 제4차 중동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두바이유 가격은 배럴당 2.9달러에 불과했다. 1974년 중동 산유국들의 원유 감산과 가격 담합으로 유가는 배럴당 10달러 벽을 넘어섰다.

이때 미국의 국채 수익률은 6퍼센트 대에서 8퍼센트 대로 상승했다. 안전자산으로 여기던 미국 국채도 그만큼 리스크가 커졌다는 뜻이다. 따라서 금값이 오를 수밖에 없다. 금은 안전자산 중에서도 첫손가락에 꼽히는 안전자산이다.

그 후 몇 년간 150달러 안팎을 오르내리던 금값이 200달러 선을 넘어선 것은 1978년 말이다. 1979년에 400달러 선을 돌파하고, 이듬해 9월에는 무려 682달러까지 폭등한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가? 두 번째 석유파동이 전 세계를 강타했다.

1978년 12월, 이란 이슬람혁명으로 팔레비 정권이 무너지면서 배럴당 13달러였던 유가가 20달러로 뛴다. 이듬해에 이란-이라크전쟁으로 30달러 선이 무너지고, 1981년 사우디아라비아가 ‘자원 무기화’를 선언하면서 두바이유 가격은 39달러의 꼭짓점을 찍는다.

대한민국은 유가 폭등의 직격탄을 맞고 휘청거렸다. 원화 환율은 36퍼센트 넘게 올랐고, 물가상승률은 28.7퍼센트에 달했으며, 경제성장률은 -2.1퍼센트로 추락했다. 그 와중에 박정희 18년 독재가 끝났다. 신군부가 권력을 장악하고 패악을 부리던 시절이다. 당시 민주화운동에는 경제난이라는 시대적 배경이 깔려 있다.

다시 [도표 8]을 보라. 국제 금값은 1982년 400달러 밑으로 떨어진 이후 20년간 300달러 대에서 약보합세(약간 하락하여 변동의 폭이 극히 작은 상태)를 유지한다. 금값에 별다른 변화가 없다는 것은 그만큼 세상이 안정적이었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될 것 같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하고 냉전이 막을 내리는 엄청난 변화가 있었지만 자본주의 세계는 그럭저럭 잘 돌아가고 있었다. 중국이 본격적으로 몸집을 불리기 시작했고 유럽이 서서히 기울어갔지만, 미래에 대한 전망은 대체로 낙관적이었다.

1997년에는 동남아시아 개발도상국들과 한국이자본의 덫에 걸려 된통 혼쭐이 났다. 하지만 세계사적 시각으로 보면 국지적인 사건이었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미국산 버블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시장은 이미 버블을 감지하고 있었다.

금값이 다시 400달러 선을 깬 때는 2004년이다. 그때부터 금값은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한다. 2006년에 500달러와 600달러 선을 훌쩍 넘고, 2007년 700달러, 2008년 900달러를 돌파하더니 2011년에는 1,800달러 대까지 치솟는다. 이 정도면 폭등이 아니라 폭발이라고 해야 한다. 이게 바로 2008년 미국의 금융버블이 팡, 하고 터지면서 전세계로 번진 글로벌 금융위기다. 

※ 이 연재는 스트레이트뉴스가 저자(현재욱)와 출판사(인물과사상사)의 동의로 게재한 글입니다. 무단 도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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