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 연재-보이지 않는 경제학] 〈36〉달러와 금의 전쟁
[ST 연재-보이지 않는 경제학] 〈36〉달러와 금의 전쟁
  • 현재욱 선임기자 (jeffhyun@naver.com)
  • 승인 2019.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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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에 나타난 자본주의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은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자본가들의 무한 이윤획득에 의해 세계 경제는 불균등하고 불공정해지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강대국의 힘이 거세지면서 각종 모순적 요소가 심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을 알기 위해선 현대 경제의 중요한 쟁점들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 쟁점들의 핵심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경제학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과 논쟁을 우리가 알아야 할까? 몰라도 무방한 것들이 있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 경제학 논쟁이 경제 정책으로 이어지고, 그 정책은 보통 누군가에게는 유리하고 누군가에게는 불리할 뿐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스트레이트뉴스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경제의 주요 요소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본지 선임기자 현재욱의 저작인 「보이지 않는 경제학」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보이지 않는 경제학

달러와 금의 전쟁

달러화의 최대 맞수는 유로화도 위안화도 아닌 금이다. 국제금융 전문가 쑹훙빙은 단언한다. “미국은 달러화를 대체할 가능성이 있는 어떤 화폐도 용납할 용의가 없다.”5 아들 부시George W. Bush 정권이 ‘악의 축an axis of evil’으로 규정한 이라크, 이란, 북한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세 나라 모두 국제 결제통화를 달러에서 유로화로 전환하려고 시도했다. 언제든 달러를 대체할 수 있는 금에 대해서는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

역사적으로 금은 모든 법정화폐의 천적이었다. 달러자본가들은 본능적으로 금을 두려워하고 혐오한다. 2010년 9월 9일 뉴욕상품거래소COMEX의 금값이 1,899달러를 찍었을 때, 월가의 금융자본가 세력과 미 금융당국의 공포가 어떠했을지는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다. 그들의 시각으로 볼 때, 달러의 붕괴는 곧 세계의 붕괴다.

달러와 금은 강력한 경쟁 관계다. 달러가 강해지면 금값이 내리고, 달러가 약해지면 금값은 오른다. [도표 9]와 [도표 10]을 보면 이런 경향성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화폐에 대한 달러의 상대적 가치’와 ‘선물시장에서 거래된 금값’을 같이 놓고 비교한 것이므로 금과 달러의 우열을 평가하는 근거로는 적절하지 않다.

선물시장에서 거래되는 금의 99퍼센트는 현물 금이 아니고 종이금paper gold이다. 쑹훙빙이 지적한 대로, “선물, 옵션 따위의 종이 금 거래량이 현물 금 거래량의 100배를 초과한다면 그 시장은 더 이상 ‘금선물’ 시장이라 말할 수 없다. 그저 ‘금’이라는 명칭을 가진 선물시장일 뿐이다.” 따라서 뉴욕상품거래소에서 매겨지는 금 가격은 시장의 진정한 평가라고 할 수 없다(달러인덱스와 선물시장의 금 시세는 참고하는 정도로 활용하면 될 것 같다).

시장이 극도로 불안해질 때 사람들이 금 자산으로 몰리면서 금값이 폭등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국채와 달러가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것도 평화로울 때 이야기지, 극심한 위기가 닥치면 금이 유일한 안전자산이다. 1980년대의 남아메리카 부채위기, 1987년의 주식시장 붕괴, 2002년의 닷컴버블 붕괴, 2007년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 같은 대형 사고가 터지면 달러인덱스니 안전자산이니 하는 말장난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격랑에 흔들리는 부를 지켜주는 것은 오직 금뿐이다. 

월가의 신자본주의 추종자들에게, 위기 때마다 달러의 취약한 모습을 환하게 비추는 금의 존재는 두고두고 불편할 수밖에 없다. 쿠데타를 일으켜 금을 권좌에서 쫓아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민심은 여전히
금을 우러르고 있다.

달러자본가들은 금의 광휘를 눈뜨고 볼 수 없었던 모양이다. 대공황 이후 금의 시장권력을 제거하려는 시도가 몇 번 있었다. 첫 번째 시도가 1933년 루스벨트 대통령의 ‘금 보유 금지령’이다. 민간인의

금 보유가 전면 금지되었고, 정부는 미국인이 갖고 있던 모든 금을 온스당 20.67달러의 보상금을 주고 강제로 수매했다.8 이는 미국 시민의 부를 강탈한 것이나 다름없다. 1934년 1월에 금 가격이 온스당 35달러로 상승했으니 금을 내놓은 시민들은 불과 몇 달 만에 엄청난 시세차익을 빼앗긴 것이다. 미국인들은 1975년이 되어서야 합법적으로 금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

미국 정부가 금을 독점한 이유는 무엇일까? 금이 시장 논리에 따라 춤추는 것을 봉쇄하고 화폐경제를 통제하려는 의도에서였다. 그러나 미국 내에 한정된 정책에는 한계가 있었다. 금은 해외시장에서 춤을 추었다. 대공황 때 주식, 채권, 선물 등 온갖 증권이 휴지 조각이 되었지만 금에 응축된 부는 독야청청 살아남았다. 증권으로 부를 축적해온 자본가들에게, 금의 이런 속성은 잠재적 위협으로 비쳤을지 모른다. 사실 자본가들은 자유경쟁시장을 원하지 않는다. 자본가들이 바라는 것은 ‘그들이 지배할 수 있는 시장’이다.

두 번째 시도는 1974년에서 1980년 사이에 있었다. 미국은 현물 금 1,000톤을 헐값에 시장에 풀었고, 국제통화기금IMF을 설득해 700톤을 팔게 했다. 총 1,700톤을 덤핑했음에도 닉슨쇼크 직후 온스당 42달러였던 금값은 1980년 1월에 800달러까지 치솟았다. 시장은 미국 재무부와 국제통화기금이 금을 푸는 족족 흔적도 없이 흡수해버렸다. 결국 미국은 금값 억제를 포기했다.

세 번째 공격은 베트남전쟁 때의 융단폭격을 방불케 하는 전면전이었다. 2013년 4월 12일 뉴욕상품거래소가 개장하자마자 금 100톤 짜리 매도 주문이 떨어졌다. 이어서 금 300톤의 매도 물량이 쏟아졌다. 이는 2012년 세계 금 생산량의 11퍼센트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였다. 순식간에 금값이 폭락하고, 금 투자자들은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들의 공포를 이해하려면 선물시장의 거래방식을 알아야 한다.

금 선물에 투자하는 사람들은 보통 20배의 ‘레버리지leverage’를 활용한다. 레버리지란 빚내서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레버리지 20배는 자기자본 1,000만 원을 증거금으로 냈을 때 최대 2억 원까지 투자할 수 있다는 뜻이다. 금값이 10퍼센트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2억 원의 10퍼센트를 손해 보았으니 2,000만 원이 사라졌다. 원래 가지고 있던 자금 1,000만 원을 날린 것은 물론이고 추가로 1,000만 원을 더 집어넣어야 한다. 이래서 선물투자가 무서운 것이다.

모두가 ‘금은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홍콩, 상하이, 싱가포르, 도쿄, 뭄바이, 시드니, 두바이 등 전 세계의 사람들이 현물 금을 사기 위해 쏟아져 나왔다. 하마터면 뉴욕상품거래소의 금 재고가 바닥을 드러낼 뻔했다. 금 재고가 고갈되면 선물 거래가 멈추고 전체 금융시장이 파국을 맞는다. 막후의 암살자들은 총구를 거둘 수밖에 없었다. <계속>

※ 이 연재는 스트레이트뉴스가 저자(현재욱)와 출판사(인물과사상사)의 동의로 게재한 글입니다. 무단 도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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