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의 삶, 여성홈리스
김수목 감독 작 ‘그녀들이 있다’, 전국 순회 상영 돌입
종민협, 여성홈리스와 함께하는 무비토크로 마음 공유해


[스트레이트뉴스=김태현 선임기자] “어느 순간 자신의 공간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여성홈리스들의 이야기, 쉽게 드러낼 수 없었던 그녀들의 마음과 마주한다.”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여성 노숙인(homeless)’들의 삶과 목소리를 담아낸 영화 ‘그녀들이 있다(감독 김수목)’가 지난 20일 대한불교조계종사회복지재단에서 운영하는 서울 중림종합사회복지관을 시작으로 전국 순회 상영에 들어갔다.

“(무료급식소)에 밥을 먹으러 가면 7시에 밥을 먹는데, 70명 정도 남자들이 있고, 여자는 나 혼자야. 내 앞에 남자가 대놓고 ‘꼴린다’고 해요. 안 되겠다, 밥 먹으러 안 가겠다 하고 안 갔죠.” -이OO/50대 여성 노숙인-

“남자처럼 보이려고 머리를 잘랐다니까요. 왜냐? 안 달려들잖아. 머리 자르는 사람한테 확 쳐달라고 그랬어요. 남자처럼 보여야 하니까. 남자가 아니면 못 사는 곳이에요.” -김OO/40대 여성 노숙인-

지난 20일, 대한불교조계종, 원불교, 천주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보건복지부 등이 공동 설립한 종교계노숙인지원민관협력네트워크(이하 종민협)는 자체 제작한 여성홈리스 영화 ‘그녀들이 있다’ 첫 순회 상영회 및 여성홈리스와 함께하는 무비토크 ‘그녀들과 함께 살롱’을 개최했다.

종교계노숙인지원민관협력네트워크가 개최한 순회 영화 상영회 및 무비토크 포스터(2019.05.20) ⓒ스트레이트뉴스
종교계노숙인지원민관협력네트워크가 개최한 순회 영화 상영회 및 무비토크 포스터(2019.05.20) ⓒ스트레이트뉴스

영화 상영 후 개최된 토크살롱에서는 김수목 감독, 홈리스행동 성평등특별위원회 조한진희 전문위원, 직접 영화에 출연한 여성홈리스 강애순, 김수희 등이 이야기손님으로 나섰다. 그들의 대화를 따라가 봤다.

김수목: 다큐작업을 하기 전에는 그저 노숙하시는 분들, 그냥 나와는 다른 분들, 가까이 하기에는 힘든 분들, 이렇게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작업을 하면서 ‘그녀들이 늘 지나갔을 어떤 공간과 내 주변에 함께들 계셨구나’ 하는 생각, ‘아, 이런 삶이 정해져 있는 어떤 그런 게 아니라, 어느 순간 누구에게나 다가올 수 있는 어떤 삶의 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생각의 깊이, 넓이가 좀 확장된 느낌입니다.

조한진희: 노숙인이라고 하면 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실직한 사람들, 특히 남자들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요. 그런데 여성 노숙인들도 많습니다. 사회적으로 남성 노숙인들은 경제적인 피해자, 여성 노숙인들은 가족 내 피해자라는 이분법적인 틀이 있는데요, 여성 노숙인의 경우 가정폭력에 의한 경우가 60% 정도이지만, 그 외에도 남성 못지않게 다양한 이유로 거리로 내몰립니다.

무비토크 ‘그녀들과 함께 살롱’에서 대화를 나누는 패널들(왼쪽부터 사회를 맡은 다큐인 송윤혁 감독, 여성홈리스 김수희, 강애순, 김수목 감독, 조한진희 홈리스행동 전문위원)(2019.05.20) ⓒ스트레이트뉴스
무비토크 ‘그녀들과 함께 살롱’에서 대화를 나누는 패널들(왼쪽부터 사회를 맡은 다큐인 송윤혁 감독, 여성홈리스 강애순, 김수희, 김수목 감독, 조한진희 홈리스행동 전문위원)(2019.05.20) ⓒ스트레이트뉴스

감독님도 말씀하셨지만, 누구나 홈리스가 될 수 있습니다. 그냥 상징적인 의미가 아니라 실제로 심각하게, 저도 홈리스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소위 중산층이 빈곤층으로 내려가는 1순위가 뭔지 아세요? 병원비입니다. 한국에서 3명 중 1명이 암에 걸리는 시대잖아요. 암 치료는 자부담이 5%인데, 항암 받고 이러면 천만 원, 이천만 원, 이런 식으로 계속 돈이 들어가다가 생계를 부양할 수 없으면 2, 3년 안에 최저빈곤층으로 내려가는 거죠. 송파 세 모녀 사건도 어머니가 다치는 바람에 생계부양자가 없어지면서 일어난 비극이잖아요.

김수희: (기초생활보장제에 따른) 수급비를 주시면 그걸로 방세 내고 세금 내고 저축도 하고, 없으면 못 쓰고, 그렇게 살아나가요.

강애순: 저도 봉사 7년을 다니면서 제 몸이 아파도, 다리가 연골이 다 닳아버려서, 그래도 가서 밥도 해주고 설거지도 해주고 빨래도 해주고... 공원 앞에 교회가 있거든요. 수요예배 오후에 보는데, 거기서 반찬 같은 것을 해서 주면 그런 걸로 반찬을 좀 안 사고 돈 아끼고 해서, 고맙게 주셔서 먹고 생활을 해나가요.

보현윈드오케스트라(영등포 보현의집 소속 홈리스밴드)의 축하공연(2019.05.20) ⓒ스트레이트뉴스
보현윈드오케스트라(영등포 보현의집 소속 홈리스밴드)의 축하공연(2019.05.20) ⓒ스트레이트뉴스
싱어송라이터 차빛나의 오프닝 공연무대(2019.05.20) ⓒ스트레이트뉴스
싱어송라이터 차빛나의 오프닝 공연무대(2019.05.20) ⓒ스트레이트뉴스

보건복지부와 서울시 등의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전체 노숙인 수는 12,000명 선(잠재노숙인 포함 시 40만 명 육박), 일반인의 인식에 각인돼 있는 노숙인의 성별은 ‘남성’이다. 그런데 남성 노숙인들도 살아내기 팍팍한 공간 저 깊은 곳에 갈 곳 잃은 여성들이 살아가고 있다.

영화 ‘그녀들이 있다’는 곳곳에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여성홈리스 당사자들의 삶을 우리 사회에 알리기 위해 김수목 감독이 1년여 동안 거리와 쪽방, 시설 등에서 아웃리치 활동을 벌여가며 여성홈리스 8명의 목소리를 담아낸 작품이다.

여성홈리스에게 어떤 도움이 필요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종민협 강민수 간사는 이렇게 답했다.

“여성분들은 가정폭력이나 남편의 외도를 비롯해 다양한 이유로 거리로 나오세요. 미혼모시설에서 출산하는 분들도 계시고요. 젊은 분들은 건강하니까 어떻게든 살아가시는데, 나이가 있거나 건강이 좋지 않은 분들은 자립이 정말 어렵습니다. 홈리스라는 낙인, 무료급식소나 쪽방, 고시원을 남성들과 함께 써야 하는 현실을 힘들어 하시고, 남자들이 노골적으로 접근하는 것도 매우 힘들어 하십니다. 다친 마음을 상담하고 싶어들 하시고, 또 자신만의 공간을 갖고 싶어들 하시지만, 그게 쉽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어려우면서도 대부분 자신보다 못한 처지에서 살아가는 분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하고, 또 실제로 도움을 주고 계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이야기손님으로 나선 여성홈리스들과 함께 호흡하는 관객들(2019.05.20) ⓒ스트레이트뉴스
이야기손님으로 나선 여성홈리스들과 함께 호흡하는 관객들(2019.05.20) ⓒ스트레이트뉴스

이번 순회 상영회와 무비토크에는 홈리스밴드 보현윈드오케스트라, 싱어송라이터 차빛나, 배우 김완규 등이 함께했다. 2시간 여 진행된 행사의 마지막 순서로 배우 김완규의 시가 낭독됐다.

<그녀의 길>

                           김완규

번화한
도심의 저녁 어스름

배낭을 지고
자신만한 배낭을 지고
그녀가 간다.

휘둥그레
질려 있는 눈

소중한 선물처럼
버려진 비닐이 잔뜩 든
쇼핑백 들고

웃고 있는
퇴근 무렵의
사람들 틈에

쫓기듯
그녀가 간다.

모두들 집으로
돌아가는데

그녀의 길은

움추린 작은 어깨로
가야 하는
그녀의 길은

어디쯤에
그 끝이 있을까?

bizlink@straigh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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