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23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대기업집단간 정책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23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대기업집단간 정책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취임 후 네 번째로 재계와 만나 그룹 지배구조 개선과 '일감 나누기'를 촉구했다.

김상조 위원장은 23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15개 그룹 전문경영인과 정책간담회를 가졌다. 이번 간담회에 참석한 대기업은 재계 순위 10대 미만 그룹들이다. 김 위원장은 앞서 취임 이후 4대·5대·10대 그룹과 만난 바 있다.

이날 간담회에는 석태수 한진 부회장), CJ 박근희 부회장, 부영 신명호 회장직무대행, LS 이광우 부회장, 대림 박상신 대표이사, 현대백화점 이동호 부회장, 효성 김규영 사장, 영풍 이강인 사장, 하림 박길연 사장, 금호아시아나 이원태 부회장, 코오롱 유석진 사장, OCI 김택중 사장, 카카오 여민수 사장, HDC 김대철 사장, KCC 주원식 부회장 등 15개 대기업 전문경영인이 함께했다. 포스코, KT 등 총수가 없는 그룹이나 교보생명보험, 미래에셋 등 금융전업그룹들은 간담회 대상에서 제외됐다.

김상조 위원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그룹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해 거듭 당부했다. 앞서 김 위원장은 지난 3월 올해 공정위 업무계획을 발표할 당시 10대 이하 그룹들과 간담회를 추진하겠다면서 "재계를 만나면 그간 지배구조 개선 성과를 공유하도록 요청해놨다"고 언급한 바 있다. 

특히 총수 일가가 지분 매각 등을 통해 단순히 일감 몰아주기 규제 기준을 회피하는 방식이 아닌, 내부거래 비중을 줄여 실질적으로 일감을 개방하려는 노력을 직접 당부하겠다고도 예고했었다.

이날 김상조 위원장은 모두발언에서 지난 세 차례 기업인과의 만남을 통해 정부와 재계가 개혁 방향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으며, 그 결과 자발적인 순환출자 해소와 같은 바람직한 변화가 시장에서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하면서, 우리 경제에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중견그룹 전문경영인들도 이러한 흐름에 동참해 줄 것을 당부했다.

김상조 위원장은 “공정경제란 모든 경제주체에게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평평한 운동장을 보장해 우리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고자 하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정당한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기업 지배구조, 즉 의사결정자가 적기에 결정하고 그 결정에 대해 책임을 지는 제도와 관행이 확립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상조 위원장은 또 "하나의 수단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경직된 접근방법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며 지속가능한 개혁을 위해서는 ▲현행법의 엄정한 집행 ▲기업들의 자발적인 변화 유도 ▲최소한의 영역에서 입법적 조치 등의 원칙이 유기적으로 결합돼야만 하고, 이러한 세 가지 원칙에 따라 일관된 속도와 의지로 재벌개혁을 흔들림 없이 추진할 것임을 밝혔다.

김상조 위원장은 일감 몰아주기와 함께 불공정 하도급 거래를 언급하며 "일감 몰아주기와 불공정한 하도급 거래가 대기업의 이익을 위해 중소 협력업체·주주 등 이해관계자의 권익을 부당하게 희생시키는 그릇된 관행"이라면서 "일부 대기업 계열사들이 일감을 독식하는 과정에서 관련 분야의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은 공정한 경쟁의 기회조차 가질 수 없었고 그 결과 혁신성장을 위한 투자 여력뿐만 아니라 존립할 수 있는 근간마저 잃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중소 협력업체가 일한 만큼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도급 분야에서의 공정한 거래 관행이 정착돼야 한다"며 "무엇보다도 혁신 성장의 싹을 잘라 버리는 기술탈취 행위의 근절을 위해 하도급법, 상생협력법, 부정경쟁방지법 등을 포괄하는 입체적인 해결책이 마련될 수 있도록 관련 부처와 적극 협의하겠다"고 강조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23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대기업집단간 정책간담회에서 김준동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을 비롯한 15개 기업 전문경영인과 기념촬영 중 손을 맞잡는 포즈를 권하고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23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대기업집단간 정책간담회에서 김준동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을 비롯한 15개 기업 전문경영인과 기념촬영 중 손을 맞잡는 포즈를 권하고 있다.

김상조 위원장은 지배 주주 일가가 비주력·비상장 회사의 지분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 계열사들의 일감이 그 회사에게 집중되는 것에 대해서는 "그 합리적인 근거를 시장과 주주가 납득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설명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특히 경쟁 입찰의 확대 등을 통해 능력 있는 중소기업에게 보다 적극적으로 일감을 개방해 줄 것을 주문했다.

이에 김준동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은 "그동안 간담회를 통해 정책에 대한 기업들의 이해의 폭이 넓어졌고 기업 지배구조와 내부거래 관련 기업들의 자발적인 변화도 늘어나는 등 성과가 있었다"며 "아직 국민의 눈높이에 미흡한 부분도 있지만, 기업들도 공정거래 질서가 경쟁력의 중요한 요소라는 데 공감을 하고 있다"고 했다. 

김상조 위원장은 "앞으로도 재계의 요청이 있으면 오늘과 같은 자리를 다시 마련할 것"이라며 이를 통해 정부와 재계 간의 상호 이해의 폭이 더욱 넓어질 수 있기를 기대했다.

이후 비공개 간담회에서 15개 그룹 CEO들은 각 그룹마다 주력사업이 다르고 현안이 다르므로 획일적으로 경쟁법을 적용하게 되면 과도한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전했다. 아울러 공정위가 요구하는 자료 제출에 대한 부담감과 규제를 준수하기 위한 실무적인 비용이 크다는 애로사항을 건의하기도 했다. 

또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아 미래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정부가 동태적 효율성 차원에서 접근해 달라고 요청했다. 더불어 각 그룹들은 개별 기업의 특수성에 비춰 지배구조 개선, 일감 몰아주기, 지주회사 전환, 하도급법에 대한 건의사항을 전달했다.  

최근 자산규모 10조 이상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에 포함된 카카오는 국내 토종 IT기업이라는 점에서 직면 한 현안을 밝히기도 했다. 

여민수 카카오 공동대표는 "카카오는 토종 IT기업으로 구글, 페이스북, 넷플릭스 등 엄청난 글로벌 플랫폼 사업자로부터 국내시장을 지켜나가기 위해 많은 고민과 노력을 하고 있다"며 "글로벌 기업들은 역외적용을 받지 않아 사업구조가 드러나지 않다 보니 같은 서비스를 오픈해도 국내기업만 규제를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밝혔다.

여 대표는 아울러 "글로벌 기업과 경쟁을 위해서 IT산업의 특성을 이해해주시고 조금 더 전향적으로 헤아려주시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했다.

이에 김상조 위원장은 "과거 경쟁법 범위 집행기준으로 플랫폼이라는 새로운 경제현상 따라가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시장을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지도 부정확하다"고 말했다. 

이어 "분명한 것은 과거의 기준을 너무 경직적으로 적용하면 안 된다는 점"이라며 "국내외 기업 간에 차별 없이, 국적과 관계없이 동등한 위치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만들어 가야 한다. 국내외 모든 기업에 대해 동등한 경쟁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상조 위원장은 "플랫폼이나 ICT는 방송통신위원회라는 섹터별 규제기관이 따로 있다. 방통위에서는 국내 규제기준이 너무 딱딱해서 국내기업이 역차별 받는 것이 아니냐는 이슈에 대해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한다"며 "국적이나 규모에 관계없이 모든 기업이 동등한 사업환경을 영위하게 하는 것이 공정위의 역할이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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