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먹어야 할 밥을 어른이 가로채는 학교」
「학생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학교를 위한 교육이 우선인 학교」
「대한민국이 세계 3위의 교육 선진국이다?」
「우리 교육의 현주소는 무전소년학란성無錢少年學難成」

 

밥 한 끼 제대로 안 먹이는 학교

어제 오전, 유명 사립학교인 서울 충암고등학교의 전 교장과 행정실장, 충암학원 전 이사장 등 18명이 식재료를 빼돌리고 식용유를 반복 재사용하는 방법으로 최소 4억 원의 급식비를 횡령한 사실이 서울시 교육청 감사에서 적발되었다.

조리원들이 학생들에게 직접 급식을 가져다 줬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용역업체 직원들을 고용한 것처럼 꾸며서 횡령한 금액이 2억 5천만 원, 식용유를 빼돌리기 위해 종이컵과 수세미 등 소모품을 허위로 과다 청구한 금액이 최소 1억 5천만 원이다.

▲ 충암고 급식비 횡령/YTN 화면 캡처

이에 대해 현직 충암고 교사 A씨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다음 사실을 폭로했다.

“학생들한테 배식되는 밥과 반찬의 양이 항상 부족해 급식이 이루어질 때마다 난리였다. 심지어 급식 후반에는 밥이 모자라 먹지 못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매년 교육청에서 위생상태 점검이 나오는데, 거의 매년 최하위였다.”

“이제 터질 게 터졌다. 충암학원의 회계비리는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학교 공사비 같이 규모가 큰 분야까지 감사가 확대되기를 바란다.”

충암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를 운영하는 충암학원은 2011년 교육청 특별감사에서도 공사비 횡령 비리가 드러난 바 있다. 특히 지난 4월에는 교감이 3월 급식비를 납부하지 못한 학생들을 한 명씩 불러 “미납자들은 밥을 먹지 말라”는 취지의 발언을 함으로써 전체 학생들 앞에서 망신을 주기도 했다.

서울시 교육청은 관련자 18명을 검찰에 고발하고 추가 비리 여부를 조사할 계획이다. 이에 충암학원 측은 교육청 감사가 잘못되었다고 주장,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급식비가 없는 학생들은 굶어가며 공부해야 하는 학교, 끼니당 4,300원을 내고도 먹다가 버리고 라면을 사먹는 아이들, 이것이 부끄러운 한국 교육의 현주소다.

 

기숙사 성비sex ratio가 성적보다 중요한 학교

이명박 정권기였던 2010년에 자립형 사립고로 개교한 후, 단 3개월 만에 서울시 최초의 자율형 사립고로 전환 지정된 학교가 있다. 하나금융그룹이 설립한 하나고등학교다.

이 학교는 개교 직후부터 학교 설립에 관한 서울시 교육청 인허가 과정, 학교부지 임대료 산정의 적법성, 학생 모집을 비롯한 기간제 교사 채용 과정의 공정성 및 투명성, 장학금의 특혜성 시비 등 숱한 특혜 의혹에 시달려왔다.

이에 서울시 의회는 지난 4월 ‘서울특별시의회 하나고등학교 특혜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행정사무조사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학교 운영사항 전반에 관한 조사에 착수했다.

그런데 조사 과정에 입시조작 의혹이 터져 나왔다. 특위에 증인으로 출석한 하나고등학교 전 교사 전 모씨가 “학교 측이 신입생을 선발할 때 남학생을 더 선발하기 위해 보정점수를 부여하는 입시조작을 했다”고 폭로하면서였다.

최대 62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기숙사 방 배정 문제 때문에 남녀 성비를 강제로 맞출 필요가 있었고, 그래서 서류평가와 면접 점수를 합산한 수를 조작, 성적이 우수한 여학생 지원자를 떨어뜨리고 성적이 낮은 남학생 지원자에게 가산점을 부여했다는 것. 학교 운영자들이 여학생을 너무 싫어한 나머지 점점 현실화되고 있는 여성 상위시대를 학원 파행 운영으로라도 저지해보려 했던 것일까...

이 문제와 관련, 새정치민주연합 김성수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교사들이 문제를 제기했지만, 학교 측은 무시와 은폐로 일관했고, 김승유 이사장은 ‘못 견디게 해드리죠’라며 협박까지 했다”며 “박근혜 정부는 시도교육감의 자사고 지정 및 취소 권한이 법에 명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행령까지 고쳐가며 자사고를 비호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고 성토했다.

▲ 브리핑 중인 새정치민주연합 김성수 대변인

하나고 전 교사 전 모씨는 특위에서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고위인사의 아들이 동급생을 상대로 폭력을 휘둘렀는데도 학교폭력위원회가 열리기는커녕 은폐하려는 시도까지 있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서울시 의회 행정사무조사 특별위원회는 이 문제의 진상을 살피기 위해 당시 결정권자였던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공정택 전 서울시 교육감을 주요 증인으로 채택했지만, 두 사람은 출석하지 않았다. 이에 특별위원회는 ‘정치공세’ 운운하며 3쪽짜리 불참 사유서를 제출한 오세훈 전 시장에 대해 출석의원 만장일치로 500만 원의 과태료 부과를 의결하기도 했다.

등록금 540만 원을 포함해 약 1,260만 원에 달하는 학비(2014년 기준)가 있어야만 1년 동안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학교, 운영의 전 과정에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고, 이사장이 제왕보다 더 높은 곳에서 군림하는 학교, 이 역시 부정할 수 없는 한국 교육의 부끄러운 현주소다.

 

교육 선진국, 대한민국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매년 70여 개국 15세 이하 학생들의 수학과 과학 성적을 토대로 국가별 학업성적 순위를 매긴다. 2015년도 발표에 따르면 국제학업성취도 1위부터 5위까지 아시아 국가들이 휩쓸었으며, 한국은 싱가포르, 홍콩에 이어 당당히 3위를 차지했다.

▲ Global Education League Table(OECD, 2015)

이를 두고 OECD 교육정책국 관계자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은 매우 재능 있는 교사를 보유하고 있으며, 교실에 가면 모든 학생의 성공을 바라는 교사를 발견할 수 있다”며 극찬했다.

한 발 더 나아가 독일 뮌헨대 루저 와이즈만 교수와 미 스탠포드대 에릭 하누섹 교수, 그리고 OECD 교육정책국 관계자는 각자 다음과 같은 분석을 내놓기까지 했다.

“가난한 교육 정책과 관행은 경제 침체를 영구적으로 만든다.”
“교육을 개선하면 장기적으로 경제적 이익을 불러올 것이다.”
“이번 조사로 교육과 경제 성장 사이에 존재하는 상관관계가 드러났다.”

현재 보편적이고 평등한 교육 이념을 실천에 옮기며 전 세계 교육 관계자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핀란드와 스위스, 네덜란드는 각각 6위, 8위, 9위를 기록해 종전보다 후퇴한 것으로 나타났고, 특히 언제나 최상위에 머물러 있던 ‘북유럽 대표 교육 선진국’ 스웨덴은 등위권 밖으로까지 밀려났다. 이에 대해 OECD 관계자는 스웨덴의 교육 시스템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진단했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스웨덴 교육 시스템에 대한 신자유주의의 맹공이 시작되고 있는 지금,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사회보장제의 이상理想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구현해온 스웨덴식 전통 통합교육에 그렇게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일까?

부모의 경제형편도, 국적도 교육에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는 나라, 돈이 없어도 의지만 있으면 대학원까지 교육을 보장받는 나라, 장애 아동과 한 교실에서 자란 일반 아동이 커서도 장애 아동에 대해 어떠한 편견도 가지지 않도록 교육하는 나라, 그런 나라의 교육이 정말로 잘못된 것일까? 조목조목 따져보자.

먼저, 우리는 여론조사 기관이 잘못된 질문을 사용하면 엉터리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 심지어 일부 기관들이 의뢰자의 목적에 따라 여론을 고의로 조작하기까지 해왔다는 것도 안다.

제대로 된 국가별 학업성적 순위를 매기려면, 학생들의 역사 인식과 공동체성, 창의성, 그리고 문화를 보는 시각 등 다양한 분야를 골고루 관찰해 반영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 조사의 토대가 된 과목은 단지 수학과 과학뿐이다. 이는 높이뛰기와 달리기 능력만으로 독수리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 우사인 볼트, 기다려!

두 번째, 위에 언급한 인물들의 핵심 발언, 즉 ‘경제 침체’, ‘경제적 이익’, ‘경제 성장’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교육을 경제와 연결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스파르타쿠스 교육을 받고 자란 아이가 전사가 되듯, 네 살 때부터 골프채만 잡고 자란 아이의 꿈이 PGA/LPGA이듯, 공동체성과 이익이 충돌할 때, 경제와 긴밀히 연결된 교육을 받고 자란 아이가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자명하다. 한쪽으로 치우친 가르침, 지식의 편식, 이것을 교육이라 할 수 있을까.

세 번째, OECD 교육정책국 관계자는 이번 결과로 인해 교육과 경제 성장 사이에 존재하는 상관관계가 드러났다고 했는데, 미국과 독일, 영국, 프랑스 같은 선진국들은 왜 여기서 빠져 있는가? 이는 허술한 교육 시스템이라도 돈만 잘 ‘만들게’ 하는 교육이라면 경제는 성장할 수 있다는 자가당착적 모순의 반증일 뿐이 아닌가!

이런 점에서 이번 조사는 교육평가라는 목적에 전혀 부합하지 않으며, 경제 특히 자유무역주의로 똘똘 뭉친 OECD라는 조직이야말로 교육을 평가할 위치에 있지 않다는 점이 명확해졌다.

독자 제위께서는, 비리와 횡령, 특혜로 얼룩져 있는 한국 교육, 아이들이 영어와 수학과 과학 보충수업을 받느라 이 곳 저 곳을 전전하고도 성에 차지 않아 밤잠까지 줄여가며 ‘외우기 신공’을 발휘해야만 하는 한국 교육이 세계 3위의 선진 교육이라는 OECD의 말을 넙죽 받아들일 수 있는가?

 

소년이로학란성少年易老學難成?

진정한 교육은 지역과 성별, 부모의 경제적 형편, 장애 여부 등 모든 상이성에 관계없이 모두가 평등하다는 보편적 전제 아래 이루어지는 교육이어야 한다. 그리고 경쟁보다 협력을, 드러나 보이는visible 현상적 가치보다 드러나지 않은invisible 인간적 가치를 발현해내는 교육이어야 한다.

아이들을 수준별, 나이별로 모아놓는 것도 모자라 자율형 사립고, 특목고처럼 아예 학교 자체를 나누는 교육, 친구를 경쟁자로 보게 하는 교육, 개인별 특성이 아니라 오로지 성적에 따라 인간을 둘, 즉 실업계와 인문계로 나누는 이원 체제의 교육,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 차이가 그대로 아이의 성적으로 연결되는 교육, 패자부활전은 생각도 할 수 없는 교육, 공·사 교육비 합쳐 세계 최고의 교육비를 지출해야만 그나마 인간 피라미드의 중간 정도에 박힐 수 있는 인간성 해체 교육, 이제 이런 교육에서 벗어나야 한다.

▲ 학년, 지역, 수준, 장애의 구분 없이 함께 수업 중인 핀란드 아이들

성적은 높지만,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저당 잡히는 교육, 정치적 논리로 포장해 내뱉은 “학교는 밥 먹으러 가는 곳이 아니다”라는 말에 절반 이상의 국민이 ‘정치적’ 고개를 끄덕이는 교육, 아이의 창의성과 공동체성, 협동심, 자연과의 교감이 오직 성적에 의해 희생당해야 하는 교육, 이런 우리 교육의 참담한 현실을 향해 “이제 그만!” 하고 단호히 맞설 수 있어야 한다. 정치적 선동에 아이들의 어깨가 짓눌려 찌그러들고 있는 참람한 현실을 도대체 언제까지 방치할 텐가!

수능시험 날, 시험장 대문에 엿을 붙인 후에 부처님께, 하느님께, 하나님께, 또는 각인의 마음에 들어앉아 있는 모든 신께 드리는 어머니의 기도는, 그 기도의 본질은 사실상 이런 것이다.

“부처님, 하느님, 하나님, 우리 아이는 붙고, 다른 아이는 떨어지게 해주세요.”

한때 우리 모두에게 큰 가르침이었으나, 이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게 되어버린 경구가 있다. 소년이로학란성, 일촌광음불가경(少年易老學難成 一寸光陰不可輕, 소년은 쉬이 늙고, 학문은 이루기 어려우니, 짧은 시간이라도 가벼이 여기지 말라). 주자朱子의 ‘권학문權學文’에 나오는 글귀다.

아이들에게 먹여야 할 밥을 어른들이 가로채는 충암학원, 그리고 이사장 등 학원을 운영하는 주체의 의도에 따라 수험생의 성별이 뒤바뀌고, 1,260만 원이 없으면 아예 입학조차 할 수 없는 하나고등학교. 비단 이 두 학교뿐만이 아니다. 돈 없고 빽 없는 학부모, 그리고 그런 학부모조차 가지지 못한 아이들에게는 그야말로 지옥 같은 나라가 아닌가!

▲ 노숙자 소년이 외식업체 불빛에 의지해 공부하는 모습(필리핀 마닐라) AFP통신/Facebook screengrab

이제 타임머신을 타고 중국으로 가서 황하를 건너야겠다. 가서 이렇게 말하며 감히 주자의 뺨따귀라도 올려붙여야겠다.

“소년이로학란성이라고? 예끼, 이 양반아, 무전소년학란성無錢少年學難成이다! 그리고 또 뭐? 일촌광음불가경하라고? 돈 없는 놈, 빽 없는 놈, 평생 공부할 데 찾아다니다가 제삿밥이나 얻어먹게 생겼다. 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府君神位라고!!”

현고 학생부군 신위顯考 學生府君 神位
벼슬을 하지 않고 돌아가신 부친의 제사 때 쓰는 지방

 

김태현 두마음행복연구소 소장, 인문작가, 강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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