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7월 1일부터 대한민국 금융투명성 상호평가 실시

[스트레이트뉴스=이호연 선임기자] 국제자금세탁방지지구(FATF)의 금융투명성 상호 평가가 7월 1일부터 본격 실시된다. 초미의 관심사는 대한민국의 상호평가가 어떻게 나올지다.

그만큼 FATF의 대한민국 금융투명성 평가는 금융당국은 물론 금융권 전체의 ‘발등의 불’이다. 평가의 후유증은 대한민국의 대외 신용도와 직결되는 것이어서 재계 역시 초긴장의 나날이다.

우리나라는 2009년 첫 상호평가 이후 10년 만에 다시 평가를 받게 됐다. FATF는 2009년 6월 ‘자금세탁방지 및 테러자금 조달 금지’란 제목의 상호평가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의 AML(자금세탁방지) 관련 제도를 강화시킬 것을 권고한 바 있다.

FATF의 평가 결과는 우리나라 국가신인도와 금융시스템 투명성의 척도로 활용되기 때문에, 금융당국은 법과 제도를 국제 기준에 맞게 정비하고 사전점검에 나서는 등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FATF는 무슨 일을 하나?

FATF는 1989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G7 파리정상회의 합의에 따라 자금세탁을 억제하기 위한 방법(AML)을 논의하고 국제협력체제를 지원하기 위해 OECD 산하기구로 설립된 기구이다.

국제자금세탁방지지구(FATF)의 OECD 32개국에 대한 금융투명성 상호 평가가 7월 1일부터 본격 실시된다. 초미의 관심사는 대한민국의 상호평가가 어떻게 나올지다.@스트레이트뉴스
국제자금세탁방지지구(FATF)의 OECD 32개국에 대한 금융투명성 상호 평가가 7월 1일부터 본격 실시된다. 초미의 관심사는 대한민국의 상호평가가 어떻게 나올지다.@스트레이트뉴스

FATF는 주기적으로 회원국을 방문해 제도와 시스템을 평가하고, 미흡한 사항에 대해서는 이행을 권고하고, 권고사항에 대한 회원국의 행동을 감시하고, 매년 자금세탁의 진행추세와 대응조치를 검토하는 유형분석을 실시하고 있다.

상호평가 과정에서 주된 점검 항목은 예방조치, 사법제도, 자금세탁방지, 테러자금조달금지 제도, 국제협력, 투명성장치, 금융기관과 특정비금융사업자의 제도이행과 감독, 고객확인(KYC, Know Your Customer), 기록보관, 의심거래보고, 고액현금거래보고 등이다.

우리나라 상호평가 관련 관심사

FATF는 지난 2011년 북한을 ‘주의 조치’에서 최고 수준인 ‘대응 조치’로 상향 조정한 이후 8년 넘게 이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FATF의 주요 관심 영역은 아무래도 북한 관련 이슈가 될 전망이다.

이 달 말까지 FATF의 의장국은 미국이다. 미국 재무부는 작년 9월 산업은행을 포함한 7개 국내은행 준법감시인들과의 전화통화를 통해 대북제재를 준수해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이번 FATF의 조사범위는 지난 2009년 평가 때 금융당국과 일부 금융사에 한정했던 것과는 달리, 국세청, 검찰, 경찰 등은 물론 모든 정부기관과 민간기업까지 조사 대상에 포함될 예정이다.

지난 해 중국은 상호평가를 받은 뒤 미비사항에 대해 강화된 후속조치를 취할 것을 요청받았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차명계좌의 적법성

지난 15일 금융위원회는 제9차 정례회의를 열고, 삼성증권을 포함한 4개사에 12억37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금융감독원의 조사 과정에서 추가로 밝혀진 이건희 차명계좌에 대해, 4개 증권사에 개설된 9개 차명계좌를 본인의 설명으로 전환할 의무가 있음을 통보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지난 2008년 삼성특검은 4조 5천억 원 규모의 차명자산이 삼성 임직원 명의의 차명계좌 1,199개의 차명계좌가 밝혀낸 바 있다. 작년 1월 민주당 FT는 차명계좌 32개를 추가로 발견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도대체 이건희 회장 차명계좌의 끝이 어디인지 모르겠다.

이건희 회장이 당초 차명계좌를 이용한 이유는 분명히 상속세 포탈이었을 것이다. 이는 조세범처벌법 제3조 제1항에 규정된 ‘사기나 기타 부정한 행위’에 해당되는 중범죄이다. 다만, 국세청은 제척기간이 지남에 따라 정당한 과세권을 행사할 수 없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금융실명법에 따른 과세는 별개의 사안이다. 금융실명법 제5조에 따르면, ‘실명에 의하지 아니하고 거래한 금융자산에서 발생하는 이자 및 배당소득에 대하여는 소득세의 원천징수세율을 100분의 90’으로 하도록 규정돼 있다.

그런데, 금융위원회와 국세청은 관련법 적용에 소극적인 입장을 취했다.

먼저, 2001년 재정경제부 그리고 2008년 금융위원회는, ‘실명계좌는 차명계좌라도 비실명 금융자산에 해당되지 않는다’라는 해석을 내렸다.

한국 금융투명성, '이현령 비현령'

참여연대 보도자료에 따르면, 2008년 4월7일 국세청은 금융위원회에 ‘1998~2001년 사이 타인의 명의를 빌리거나 도명하여 개설한 차명계좌가 금융실명법제5조에서 규정하는 실명에 의하지 아니하고 거래한 금융자산’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해 질의했다.

이에 대해 금융위원회는 나흘 뒤 국세청에 ‘1993. 8. 13. 금융실명제 실시 이후 개설된 계좌는 무조건 실명계좌이므로, 1998년 이후 개설된 해당 계좌는 차·도명계좌라 하더라도 비실명 금융자산이 아닌 실명 금융자산’이라고 답변했다.

금융위원장은 2017년 11월에도 ‘살아 있는 자연인의 명의로 돼 있으면 남의 이름으로 빌려서 한 차명계좌라도 실명으로 본다는 게 실명법의 정신’이라는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하지만, 2018년 2월 12일 법제처는 ‘1993년 8월 12일 금융실명제 긴급명령 이전에 개설된 계좌 중 법 시행(97. 12.) 이후 해당 차명계좌의 자금 출연자가 따로 있다면 과징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법제처 유권해석 발표 다음 날 금융위원장은 서울 정부청사 금융위 대회의실에서 열린 ‘실명법 해석관련 TF회의’에서 “실명제 실시이전에 개설된 계좌로서 자금 실소유자가 밝혀진 차명계좌에 대해 관계기관과 협조해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이번 법제처 법령해석과 관련해 금융회사의 업무처리 시 실무운영상의 의문점이 발생할 경우에는 관계기관 공동 TF를 통해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도대체, 국세청은 당시 무엇이 무서워 과세를 하지 못하고 금융위원회에 질의를 했는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그리고 금융위원회는 무슨 근거로 상식 밖의 회신을 했는지 모르겠다. 금융실명법 제5조에 규정된 ‘실명에 의하지 아니하고 거래한 금융자산’이란 어귀를 달리 해석한 사유가 궁금할 따름이다. 실무자들만 탓할 일이 아닐 것이다.

재벌들의 차명계좌를 통한 탈세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금융당국은 이번 차명계좌 실태조사과정에서 밝혀진 내용 전체를 공개하고, 해당 정보를 국세청에 통보해 징세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적극 협력해야 할 것이다.

특검 발표 이후 이건희 회장은 회장에서 물러나면서, 삼성 임직원 명의의 1,199개에 달하는 이건희 회장 차명 계좌를 실명으로 전환할 것이며, 관련된 세금은 깨끗하게 납부할 것이고, 세금을 내고 남은 돈은 사회를 위해 좋은 일에 쓰겠다고 약속했었다. 하지만, 이 약속들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사회정의나 조세정의에 대한 개념정의를 새롭게 해야 할 것인가?

FATF 상호평가, 금융투명성 제고 절호 기회

KYC(Know Your Customer, 고객확인)는 금융실명제의 출발점이다. 이미 AML(자금세탁방지) 관련법에는 이런 내용이 충분히 반영돼 있다. 하지만, 부실한 적용이 문제였다.

은행, 증권 또는 보험사 등의 지점장이나 영업담당 임원들이 자기 점포에 개설된 차명계좌 여부를 모르고 있다는 것은 상식 밖이다. 금융사 간부들이 이를 방치하는 것은 실명제의무는 물론이고, 고액현금거래보고(CTR) 또는 의심거래보고(STR) 보고의무에도 위반되는 중대 사안이다.

우리 국회는 작년 말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을 개정했다. 오는 7월부터 적용될 개정안에는 금융사가 임직원의 AML 업무 감독을 의무화하는 내용이 포함됐고, 이와 관련한 위법 행위가 적발될 경우 금융사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징계도 가능하다.

처벌 수위를 한층 더 높이고, 창구 직원들에 대한 교육도 강화해야 할 것이다.

히딩크의 월드컵 4강 신화 창조의 요체는 학연이나 지연을 무시하고, 실력 있는 선수를 기용했다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이치임에도 우리는 그동안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이번 FATF의 상호평가는 우리의 금융투명성을 한층 제고하는 절호의 기회로 활용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아울러, 우리도 금융선진국처럼 금융위원회 산하의 FIU(금융정보분석원) 조직규모를 대폭 축소하고, STR(의심거래보고) 또는 CTR(고액현금거래보고)의 데이터베이스를 관련 기관에서 모두 조회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기를 기대해 본다. FIU인력부족으로 제대로 검토도 하지 못한 채 정보만 쌓아두기만 하는 폐단을 방치해서는 안 될 것이다.

특정 기관의 정보독점을 방지하고 부처 간 상호견제가 가능한 제도의 안착은 문재인 정부가 당장 나서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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