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전북 혁신도시에 위치한 국민연금관리공단을 상대로 한 국정감사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서울 노원구병) 의원이 국민연금공단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에 찬성해 모두 7900억원에 이르는 혜택이 삼성가에 돌아갔다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2015.10.05.[사진제공=뉴시스]

5일 열린 보건복지위 국민연금관리공단 국정감사장에서 단연 돋보인 감사위원은 새정치연합 당대표를 역임한 안철수 의원이었다. 그는 공단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에 찬성함으로써 모두 7,900억원에 이르는 혜택이 삼성家에 돌아갔다며 강한 의혹을 제기했다. 안 의원은 "이번 합병의 본질은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인 바, 그 과정에서 2천만 국민의 노후자금을 책임지는 연금공단이 연기금의 수익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에 적극 협조했다는 의혹이 있다."고 질타했다. 기업 CEO 출신인 그는 당초 공단이 내부적으로 적정 합병비율을 1대 0.46으로 산정했음에도 불구하고 1대 0.35라는 낮은 합병비율에 찬성한 점을 들어 이 같은 거액의 국민 손실액을 계산해냈다. 안 의원은 공단이 투자위원회 회의록 사본 제출을 거부하자 기획재정위 박영선 의원과 더불어 직접 회의록 열람에 들어갔고, 무려 6시간 이상 필사까지 해가며 감사 준비에 열과 성을 다했다.

같은 당 김성주 의원은 "SK와 SK C&C 합병건 등 다른 안건에 대해선 의결권 전문위원회에서 결정한 반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건은 투자위원회에서 결정한 이유가 무엇이냐"면서 "전원 외부인사인 의결권 전문위보다 내부직원들로 구성된 투자위원회가 의사결정이 쉬워서 그런 것이 아니냐?"라고 따져 물었다. 한편 홍완선 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과 부적절한 만남을 가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지속적인 증인 채택을 추진한 김성주 야당 간사의 요구는 여당 의원들의 반대로 끝내 불발됐다.

2015년 국정감사도 이제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다. 20대 총선이 6개월 남짓으로 다가오고 선거구 획정과 각 당의 공천 룰 문제까지 겹치면서 의원들의 마음은 벌써 콩밭에 가 있다. 그러니 애초부터 제대로 된 감사는 기대하기 어려웠다. 사정이 이렇게 된 이유는 마지막 국정감사는 대충대충 해도 된다는 국회의 오래된 관행 때문이다. 사전 준비에 집중할 보좌진 대부분을 지역구에 내려 보내고 의원 자신도 지역구 행사와 조직 관리에 온통 관심을 집중한 결과다. 게다가 감사장의 주연배우라 할 수 있는 제1야당은 당대표 신임투표와 혁신안 갈등으로 심한 홍역을 치렀다.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국회 정무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에 대한 국정감사가 열린 가운데 증인으로 출석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물을 마시고 있다. 2015.09.17.[사진제공=뉴시스]

지난달 17일은 이번 국감의 최대 이슈 중 하나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증인 출석이 이루어진 날이었다. 특히 신 회장은 10대그룹 총수 중 처음 국감 증인으로 출석해 여론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여야는 신 회장이 등장하면 기필코 응징하겠다며 국감 흥행몰이 분위기를 잡았다. 신 회장의 국적 등 개인 신상부터 롯데그룹 내 경영권 분쟁, 제2롯데월드 특혜의혹 등을 면밀히 파헤치겠다고 일찌감치 으름장을 놨다. 새정치연합 이종걸 원내대표는 “롯데의 주인은 일본이고, 돈 버는 곳은 한국이라는 국민적 의혹이 있다. 롯데에 대한 궁금증과 의문이 명쾌하게 밝혀져야 한다.”며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본 결과는 요란한 빈 수레에 불과했다. 재벌가의 속내를 파헤치며 국민들의 가려운 곳을 빡빡 긁어주기는커녕 정치권의 '재벌가 봐주기'로 끝을 맺었다.

신 회장이 특별대우를 받았다는 증거는 곳곳에서 나타났다. 정우택 정무위원장은 “오늘 롯데 신동빈 회장께서 나오셨는데 우리 롯데는...”이라고 소개하며 이례 없는 특정 기업에 대한 친근감을 표시하며 ‘롯데 봐주기’로 일관했다.

본격적인 질의도 ‘롯데 난타전’이 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시작부터 무척 어처구니없는 것들이었다. 박대동 새누리당 의원은 “(신 회장의) 모두 말씀처럼 한국인으로서 한국 기업 운영한다 했는데 한국과 일본이 축구 하면 한국 응원하십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신 회장은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을 따름이었다.

이어서 신 회장의 웃음소리를 불러온 건 신학용 새정치연합 의원이었다. 신 의원은 이날 자신의 지역구인 인천에 추진 중인 ‘계양산 골프장’ 건설 계획을 취소하라고 신 회장을 추궁했다. 신 회장은 박장대소하며 “우리 총괄회장님이 가지고 계시니까 제가 개인적으로 하지 않겠다고 약속할 수는 없다.”고 답변했다. 갑작스러운 민원처리 요청에 당황한 기색마저 드러냈다.

두 의원의 발언이 알려진 뒤 여론의 질타가 거세지자 이튿날 국감장에서 오히려 국감 의원이 사과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까지 했다.

야당은 이번 국감을 4生국감으로 목표를 설정했다. 민生국감, 상生국감, 민주회生국감, 민족공生국감 등이 그것이다. 상생국감에는 바로 재벌개혁이 포함되어 있다. 박근혜 정부의 4대 개혁, 특히 노동개혁에 맞서서 재벌개혁을 요구하는 야당의 당초 계획과는 달리 재벌 편들기로 변질돼버린 이번 국감. 롯데 신동빈 회장은 봐주기로 끝이 났고 이재용 부회장은 출석 자체를 시키지도 못했다. 삼성家에 대한 특혜 의혹은 일단 제기했지만 19대 국회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후속조치는 기대 난망이다. 따라서 재벌개혁에 앞서서 국회와 국정감사 개혁이 우선이 아닐까?

 

유권자 시민운동으로 국회의원 평가해야

국회가 갖고 있는 권한 중에 가장 위력적이고 유용한 것이 정부에 대한 국정감사, 국정조사권이다. 당연히 거저 얻은 것이 아니라 피를 흘려 싸운 민주화투쟁의 성과이다. 유신쿠데타로 중단된 것을 1987년 6월 항쟁 이후 16년 만에 되찾았다. 그런데 이를 이렇게 허투루 사용해서야 쓰겠는가?

19대 국회는 고유의 기능인 입법 활동에도 열심이었다. 10월 5일 현재 15,209건의 의원발의 법안 중 약 32%인 4,846건을 처리했다. 대표적인 예는 지난 3월 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김영란법(부정청탁및금품등수수의금지에관한법률)이다. 앞으로 공직자뿐만 아니라 기자 등 언론사 종사자, 사립학교와 유치원의 임직원, 사학재단 이사장과 이사는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에 상관없이 본인이나 배우자가 100만 원을 넘는 금품 또는 향응을 받으면 무조건 형사처벌을 받는 것이 주요 골자이다. 그런데 새누리당 김용남 의원이 반대토론에 나서 검사 출신답게 “배우자의 금품수수 신고의무화는 가족을 해체시킬 수 있는 독소조항”이라며 논리전을 펼쳤다. 이날 김 의원을 포함하여 권성동, 김종훈, 안홍준 등 모두 4명의 여당의원이 반대표를 던졌다. 또한 총 15명이 기권표를 던졌는데 박주선, 임수경, 최민희, 추미애 의원 등 4명의 야당의원이 포함됐다. 이들은 언론자유 침해 등 과잉금지 등을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2011년 6월 김영란 당시 국민권익위원장이 처음 제안한 이 법을 국민적 여망과 우여곡절 끝에 여야합의로 통과시키는데 소신 반대와 기권이라니. 여야 합의를 어겼으니 국민으로부터 지탄을 받을 일인가?

지난해 10월에는 새누리당 류성걸 의원이 손자 손녀에게 교육비를 증여하는 경우, 4년 1억원까지 비과세하는 법안을 발의했다가 여론의 거센 역풍을 맞고 보름 만에 이를 철회했다. 4년 1억원이라면 연간 2,500만원인데 이는 유학 목적으로도 충분히 악용될 수 있다며 언론으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이처럼 모든 법안 하나하나는 우리 국민 생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국회는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국무총리 등 20여명의 헌법기관에 대한 인준표결을 진행한다. 성완종 스캔들로 낙마한 이완구 前총리는 19대 국회가 남긴 부끄러운 인준 기록이다. 이완구 후보자는 지난 2월 16일 국회 표결에서 과반수를 겨우 7표 넘겨 총리가 됐다. 그는 차남의 병역면제 등 숱한 의혹을 딛고 역대 총리 중 두 번째 낮은 찬성률(52.7%)로 취임했지만 결국 70일 만에 낙마하는 오명까지 남겼다. 이 과정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은 표결을 위해 외국 출장 중인 의원까지 불러들였다. 새정치연합도 출산한 의원, 喪 중인 의원까지 나와서 투표에 참여했다. 그러나 야당 소속 김영환, 이상직, 최동익, 최재성 등 4명의 의원은 끝내 회의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유인태, 원혜영 의원 등 중진들이 나서 이들의 징계를 요구했고 당 지도부도 경위 파악에 들어갔다. 그렇지만 결과는 유야무야로 마무리됐고, 이 중 최재성 의원은 요직인 사무총장과 총무본부장으로 잇따라 기용됐다. 이런 자세한 내막을 국민이 안다면 가만히 두고 볼 수 있을까?

지금 새정치연합 내 선출직평가위원회 위원장 선출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갈등도 다 정성평가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여론조사 35%를 제외한 나머지 65%는 정량평가가 불가능한 부분이다. 그리고 확립된 객관적인 기준이 없이 당내에서 컷오프를 하는 것이 맞는지도 의문이다. 그래서 2000년 총선 시민연대가 추진한 낙천낙선운동을 더욱 발전시켜서 미국의 The roll call을 우리도 한번은 시민운동 차원에서 시도해봄직하다.

미국은 하원의원 재선 비율이 90% 이상이다. 오픈프라이머리라는 현역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선거제도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 더해 The roll call이라는 독특한 책자가 의원들을 철벽 감시하기 때문이다. The roll call은 우리말로 ‘문제의안 표결현황’이라고 해석되는데, 임기 중 쟁점의안, 특히 해당 지역구 관련 법안 표결현황을 일목요연하게 알려주는 책자다. 선거를 앞두면 동네서점에서 1~2달러에 판매도 하며 누구나 손쉽게 구매할 수 있다. 따라서 미국 의원들은 지역구 유권자의 이익이 반하는 법안에 찬성 또는 반대표를 던진다는 것은 곧 재선을 포기하는 어리석은 짓이다.

이와 반대로 우리는 과거에는 제왕적 총재가, 현재는 소수의 계파 보스가 공천권을 독점함으로써 국회의원들은 뽑아준 유권자보다는 계파보스에게 충성하고 있다. 다행히 새정치연합은 혁신위를 거쳐 국민공천제를 선보였고, 새누리당도 상향식 공천을 위한 몸살을 앓고 있기 때문에 20대 국회는 분명 달라진 모습을 선보이게 될 터이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자발적인 유권자들의 시민운동으로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별무 소용이라는 점이다. 유권자가 직접 의원들을 평가하는 시스템인 미국의 The roll call은 그래서 더욱 20대 총선부터 적용해야 한다.

 

최 광 웅

참여정부 인사제도비서관
민주당 조직사무부총장
현 데이터정치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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