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현대중공업 법인분할 위법 주총 규탄 기자회견'에서 김호규 금속노조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현대중공업 법인분할 위법 주총 규탄 기자회견'에서 김호규 금속노조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주주총회가 극심한 진통 끝에 진행됐지만 여전히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는 양상이다.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측은 우리사주 조합장에게조차 주총장 변경 안내가 되지 않았고, 우리사주를 가진 조합원들의 이동도 가로막히는 등 법적 하자가 있었다며 주총이 원천 무효라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현대중공업 사측은 법원 검사인의 객관적인 판단으로 진행된 일정인 만큼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주장니면, 노조 측에 손해배상소송을 내기로 해 노사 간 법정 공방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대우조선해양의 핵심 생산시설인 경남 거제 옥포조선소에 대한 현대중공업의 현장실사가 첫 날 시작도 못한 채 결국 무산되면서, 현대중공업 노사 간 갈등은 더욱 증폭되고 있는 분위기다.

현대중공업 현장실사단은 3일 오전 조선소 출입을 시도했지만 금속노조 대우조선지회와 대우조선해양 동종사 매각반대 지역경제살리기 거제범시민대책위원회가 조선소 정문을 막고 나서 실사를 진행하지 못했다.

이후 실사단은 오후에 다시 한 차례 현장방문을 시도했으나옥포조선소 출입구 6곳을 모두 막혀 진입 자체가 불가능해지자 결국 철수를 결정했다. 현대중공업 노조와 시민단체가 옥포조선소 야드로 들어갈 수 있는 모든 출입문을 틀어막아 현장 실사 첫날 실사단이 야드에 한 발짝도 들이지 못한 것이다.

이날 신상기 대우조선해양 노조 지회장은 현대중공업 실사단을 향해 "현대중공업이 인수를 철회하지 않는 이상 일체 대화는 하지 않을 것이니 찾아오지 말라"면서 실사단 진입 봉쇄 입장을 재차 피력했다. 신 지회장은 앞으로 현대중공업이 현장 실사를 시도하면 물리적 충돌도 감수하겠다는 입장이다.

강영 현대중공업 실사단장(전무)은 실사단 철수을 두고 "오늘은 실사를 할 만한 상황이 아니다"면서도 "돌아가서 대책을 강구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현대중공업이 계획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실사 기간은 3일부터 오는 14일까지다. 현장 실사가 인수과정에 필수 절차는 아니다. 현장실사를 하지 않아도 인수절차에 법적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회사의 물적분할(법인분할)을 승인한 주총이 무효 결정을 받을 때까지 전면파업과 부분파업을 병행한다는 방침이다. 현대중공업 노조와 민주노총 울산본부는 이날 오후 울산시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현대중공업 주주총회 전면무효화를 위한 투쟁 방침을 발표했다.

이들 노조는 "지난달 31일 자행된 현대중공업의 법인분할 주주총회 강행에 맞서 전면적인 무효화 투쟁에 돌입할 것"이라며 "주총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비롯한 무효화 소송을 진행하면서 파업을 이어갈 방침"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현대중공업은 당일 충돌이 예상되는 상황임에도 수업 중인 학생들을 방패막이로 삼아 대학교에서 주총을 열었다"며 "몇몇 대주주와 사전모의해 장소를 변경하고 5분도 채 안돼 날치기로 처리한 주총은 원천 무효"라고 강조했다.

박근태 현대중 노조 지부장은 "중간지주회사인 한국조선해양에 현금을 더 많이 몰아주고 선박을 제조하는 신설 현대중공업에는 엄청난 부채를 배분하는 기형적인 법인분할"이라며 "소액주주 등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배제하고 일방적으로 졸속 처리된 분할 결정은 사실상 경영권 세습을 위한 것으로 지역경제를 파탄낼 것"이라고 밝혔다.

윤한섭 민주노총 울산본부장은 "이번 주총은 변경사항에 대한 충분한 사전 고지가 없었고 주주들이 변경된 시간에 맞춰 도착하기에 불가능한 시간으로 변경됐다”며 “이동 수단도 전혀 제공하지 않았고 주주들의 참석권과 의견 표명권을 침해하는 등 중대한 결격 사유가 있고 절차상 명분도 얻지 못해 전면 무효화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3일 오후 현대중공업 노조와 민주노총 울산본부가 울산시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대중공업 물적분할 주주총회 전면 무효화 투쟁방침을 발표하고 있다.
3일 오후 현대중공업 노조와 민주노총 울산본부가 울산시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대중공업 물적분할 주주총회 전면 무효화 투쟁방침을 발표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울산지역 정가를 중심으로도 반발이 확산되고 있는 모습이다. 더불어민주당 울산시당 동구지역위원회 황보상준 위원장은 3일 시의회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현대중공업 물적분할에 대한 임시 주주총회 결과를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황 위원장은 "주주총회는 모든 주주들에게 참석과 자유로운 의견표명의 기회가 보장돼야 하지만 회사가 부적절한 방법으로 장소를 바꿔 대다수의 주주들이 참석하지 못했다"며 "이러한 주주총회에서 결정된 현대중공업 물적분할 건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노동자들은 과도한 부채증가, 중간지주사로 인한 분배구조의 문제 등으로 고용불안을 느낀다"며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 합병하기 위해서는 아직 많은 일정이 남았는데, 노조와 지역 주민이 반대하는 합병을 국제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의당도 이날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울산시는 현대중공업 물적분할 무효를 위한 범시민적 저항활동 및 향후 예상되는 어려움을 대응하기 위해 범시민대책기구를 마련해야한다"며 "울산지역 국회의원 전원이 참가하는 연석회의를 구성해 국회 차원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민중당 김종훈 국회의원 역시 "현대중공업이 물적분할을 위해 강행한 주주총회는 정당성이 없다"며 "정부는 졸속으로 추진된 법인분할로 발생한 문제를 직시하고, 시민들의 우려와 분노를 해소하기 위한 해결방안을 제시하라"고 주장했다. 
 
이어 "현대중공업의 일방적 법인분할과 본사이전으로 울산에 미칠 악영향을 해결하기 위해서 원탁회의를 구성하고, 진지한 논의와 협력할 것을 각계에 제안한다"며 "회사는 사태를 악화시키는 노동자들에 대한 고소, 사법처리도 중단해야한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현대중공업의 물적분할에 따라 중간지주회사인 한국조선해양(KOSE)이 출범했다. 한국조선해양은 이날 오전 서울 계동 현대빌딩에서 이사회를 열고 권오갑 부회장을 대표이사로 선임하고 본점 소재지 등의 안건을 승인했다.

지난달 31일 주주총회에서 분할계획서가 승인됨에 따라 현대중공업은 '한국조선해양'(존속회사)과 사업회사인 '현대중공업'(분할 신설회사)으로 새롭게 출발한다.

존속법인이 신설회사의 주식 100%를 보유하는 물적분할 방식으로 한국조선해양은 상장법인을 유지하고 신설회사는 비상장법인이 된다. 기존 현대중공업 주식은 한국조선해양으로 이름이 바뀌며, 거래 중지 없이 정상적인 거래를 할 수 있다.

한국조선해양 본사는 서울로 옮기고 신설 현대중공업의 본사는 울산에 두기로 했다. 한국조선해양의 출범에 따라 현대중공업그룹의 지배구조도 일부 변경됐다. 그룹의 정점에 있는 현대중공업지주 아래에는 조선·해양부문 중간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과 에너지부문 중간지주사인 현대오일뱅크, 산업기계 부문, 기타 서비스 부문 자회사들로 재편됐다.

한국조선해양은 일단 현대중공업과 현대삼호중공업, 현대미포조선 등 3개 자회사를 두게 됐다. 분할 이후 한국조선해양이 국내외 기업결합심사를 통과하면 산업은행은 보유 중인 대우조선해양 지분 전량을 출자하고 대신 한국조선해양의 주식을 취득한다.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마무리하면 한국조선해양의 자회사는 조선 4개사로 늘어난다.

조선 부문 서비스 회사인 현대글로벌서비스는 이번 분할과 관련이 없어 현대중공업지주의 자회사로 남는다. 한국조선해양의 자회사로 편입돼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서 제외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지만 아직은 변동이 없다. 
 
다만 향후 현대중공업지주가 보유 중인 현대글로벌서비스의 지분(100%)을 한국조선해양에 매각한다면 손자회사가 되면서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 현대글로벌서비스의 대표이사는 현대중공업지주의 최대주주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인 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 부사장이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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