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만의 또다른 기적같습니다."

일제하 미주 독립운동의 산실 뉴욕한인교회가 재건축에 들어간 가운데 익명의 기부자가 100만달러를 쾌척해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다.

뉴욕한인교회 이용보 담임목사는 6일 "오랫동안 출석한 교인중의 한 분이 100만 달러를 보내왔다. 기부하는 세가지 이유를 말하며 반드시 익명으로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고 밝혔다.

이 목사에 따르면 이 교인은 "살아오면서 너무나 큰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 그에 대한 보답이 첫째이고 재건축을 위한 기금모금의 동기제공을 하고 싶은 것, 그리고 독립운동시절 선조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 지금의 교회건물을 구입한 것처럼 다음세대를 위한 또다른 100년을 위해 교회가 희망의 도구가 되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 목사는 “미주 한인연합감리교회 역사에서 100만달러 기부는 1980년대 하와이에서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 재건축에 이어 두 번째로 알고 있다. 스스로를 철저히 낮추고 평생 모은 재산을 헌금하는 그분의 모습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뉴욕한인교회는 1919년 3.1만세운동 2년뒤인 1921년 삼일절기념식을 계기로 당시 한인 유학생들에 의해 설립돼 미국연합감리교회의 도움으로 자체 건물을 21가에 마련했다.

1927년 기존건물을 매각한 1만7천달러와 미국감리교회 지원금 1만2천달러, 대부분 유학생들이 모은 6천달러를 합쳐 현재의 4층 건물을 구입했다. 이곳은 서재필 이승만 조병옥 김활란 김도연 장덕수 정일형 등 수많은 애국지사와 근현대 한국 정치 지도자들의 기숙하거나 독립운동, 각종 강연회와 토론회를 벌인 한인사회의 거점이었다.

최초의 한글타자기 원형이 송기주 김성주목사에 의해 개발됐고 안익태가 애국가를 작곡하고 최초 연주를 한 피아노를 비롯, 수많은 사료들이 보관돼 있다. 그러나 지은지 100년도 넘은 건물의 노후화로 오랜 진통속에 재건축을 추진, 마침내 지난 8월 공사에 들어가게 됐다.

기본 공사비만 450만달러이지만 이미 350만달러는 지난 수십년간에 걸쳐 모금이 된 상태다. 이용보 목사는 "그간 재건축을 위해 여러 차례 모금운동이 전개되었지만 이런저런 문제들이 끊이지 않고 생겨 공사에 들어가지 못했다. 재건축 계약을 하는 날 한 교인이 100만달러 수표를 헌금했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이 분은 미국에서 살면서 건물을 지어놓고 후세가 빚 갚는데 고생하는걸 너무 많이 봤다고 말하더라. 우리 선조들이 그러한 것처럼 빚을 지지 않고 건물을 지어 교회 사역에 지장이 없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할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1920년대 뉴욕한인교회 건물을 구입할 때 20여명의 유학생과 동포들은 당시 공사를 시작한 조지워싱턴 브리지 건설현장 등 막노동을 하며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았다. 하루종일 일해도 5달러를 벌기 힘들었던 시절. 그들이 모은 6천달러는 현재 값어치로 치면 100만달러에 육박하는 거금이었다.

지독한 인종차별속에서 선조들의 눈물겨운 모금이 아니었다면 빚에 치여 건물을 유지할 수 없었고 일제하 독립운동의 중심 역할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선대에서 그러했듯 뉴욕한인교회도 후대를 위해 본격적인 모금운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익명의 기부자가 거금을 헌금했지만 내부공사와 각종 설비 등 추가비용을 계상하면 예산이 여전히 많이 필요하기때문이다.

1970년대는 모국의 민주화운동에 헌신했고 이후 한인들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플러싱제일교회를 비롯한 뉴욕 뉴저지 일원의 대형 교회들의 산실역할도 맡은 모교회(Mother Church)가 다름아닌 뉴욕한인교회였다.

또다른 100년을 이어갈 뉴욕한인교회 새 건물은 공기가 내년 11월까지로 돼 있다. 현재 진행중인 석면제거작업이 끝나면 본격적인 재건축에 들어가게 된다. 현판이 걸린 건물 입구 등 역사의 발자취가 담긴 일부는 그대로 원형을 보존할 예정이다.

안익태 피아노와 독립운동 사료들 또한 뉴저지 리틀넥의 창고에 보관한 가운데 뉴욕한인교회 역사추진위원회(간사 윤창희변호사)가 지속적인 분석작업을 하고 있다.

현재 인근 미국 교회 건물을 빌려 예배를 보고 있는 이용보 목사는 "뉴욕한인교회에 대한 교인들의 고귀한 뜻과 미주한인동포들의 기대를 알고있다. 더욱 겸손한 자세로 사역의 신명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뉴시스>1920년대 북미한인유학생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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