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경정예산 놓고 두 달 넘게 끌어온 식물국회 주말 분수령
머뭇대던 바른미래당 가세로 다음 주 실현 가능성 높은 국회 정상화
민주당, 자유한국당의 ‘경제실정 청문회’ 물리적으로 받기 어려워
경기침체, 세수결손, 구조조정 등 보수 집권기 추경 규모 더 커
국회의원 본연의 책무는 국회 내에서 법안으로 민생 챙기는 것
한국당, 명분도 가능성도 없는 셀프 패싱 접고 국회 복귀해야


[스트레이트뉴스=김태현 선임기자] 연동형 비례제와 검경 수사권 조정안, 공수처법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는 과정에 ‘동물국회’를 연출한 정치권이, 2019년 추경(추가경정예산)을 둘러싸고 두 달 넘게 끌어온 ‘식물국회’를 끝낼 시한이 임박했다.

“두 거대 양당의 대립으로 국회 정상화 협상 타결이 무산된다면 바른미래당은 독자적으로 국회를 여는 방안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 어떤 방식으로든 다음 주에는 국회 문을 열겠다.”

지난 14일, 바른미래당 오신환 원내대표가 최고위원회의에서 “양당의 대승적 결단을 요구한다”며 한 말이다. 오 원내대표의 최후통첩은 그간 패스트트랙 지정에 반발하며 국회 소집을 거부해 온 자유한국당을 겨냥한 발언이다.

바른미래당 소속 의원 28인으로는 임시국회 소집 요건(75명, 재적의원 1/4)을 충족할 수 없다.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가 지난 12일부터 국회 로텐더 홀에서 농성에 돌입하는 등 일찌감치 임시국회 소집을 당론으로 정한 정의당과 민주평화당을 모두 합해도 부족하다. 따라서 “독자적으로 국회를 여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오 원내대표의 발언은 더불어민주당과 연대하겠다는 의미다.

추경 심사를 위한 임시국회 소집이 두 달 넘게 미뤄진 이유는 자유한국당이 ‘패스트트랙 처리 유감 표명’, ‘국회 정개특위(정치개혁특별위원회)와 사개특위(사법개혁특별위원회의)의 활동 기한 연장’ 등 몇 가지 조건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두 달 넘게 개점휴업 상태인 국회가 바른미래당의 가세로 다음 주 정상화될 전망이다(자료:kbs1TV화면갈무리) ⓒ스트레이트뉴스DB
두 달 넘게 개점휴업 상태인 국회가 바른미래당의 가세로 다음 주 정상화될 전망이다(자료:kbs1TV화면갈무리) ⓒ스트레이트뉴스DB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지루한 줄다리기 끝에 막판 쟁점이던 정개특위와 사개특위의 “활동 기한을 연장하도록 노력한다”는 선에서 절충점을 찾았다. 그런데 자유한국당이 또 다시 새로운 조건을 들고 나섰다. 추경의 필요성을 검토하기 위한 ‘경제실정 청문회’ 개최를 주장했던 것이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얼마 전 대통령 출국 전에 5당 대표회담 제의했을 때, 황교안 대표는 단독회담을 요구했고, 청와대가 받으니까 다시 3당 회담을 요구하면서 회담 자체를 거부하는 모양새를 취한 적이 있다. 지금도 그때와 똑같은 느낌이다. 정개특위, 사개특위 합의됐는데, 자유한국당이 또 청문회 개최를 들고 나선 것을 보면 정말로 국회 정상화를 할 의지가 있는지 의문스럽다”며 의구심을 드러냈다.

민주당이 경제실정 청문회를 받을 수는 없다. 청문회를 받을 경우, 물리적으로 국회 정상화가 장기화돼 추경 심사와 각종 민생법안 처리가 지연될 수밖에 없고, 국내외 경제 상황을 제대로 진단해 정책 방향을 설정하기보다는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비판의 장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한국당도 청문회 요구의 배경에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를 따져보겠다는 의도가 있음을 숨기지 않고 있다.

그러나 바른미래당이 다음 주 내 국회 소집을 선언한 직후, 황교안 대표가 “타협이 안 된다고 일방적으로 강행하는 것은 민주적인 의회 운영이 아니”라고 발언하는 등 한국당 내에서는 이른바 ‘한국당 패싱’에 대한 우려감도 감지된다.

명분도 가능성도 없는 경제실정 청문회

“IMF(국제통화기금)를 비롯한 국제기구들이 우리 경제를 위해 추경 편성을 제안했고, 고통을 겪고 계시는 국민과 기업들이 추경을 기다리고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

“미중무역갈등으로 어려운 대외 여건이 더욱 악화되는 가운데, 주력 제조업 및 신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번 추경은 이런 정부의 노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

청와대와 정부・여당은 이구동성으로 추경안 통과를 종용하고 있다. 미중무역전쟁을 비롯한 대외 경제여건 악화로 우리 경제가 상당한 기로에 놓여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야당, 특히 한국당의 생각은 다르다. 6조7,000억 원 규모의 추경을 투입하더라도 국내총생산(GDP) 상승효과가 0.1%에 머물 것이라는 기획재정부 추계를 근거로, 추경의 필요성을 경제실정 청문회를 통해 따져보겠다는 것이다.

2000년 이후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현황 ⓒ스트레이트뉴스/그래픽:김현숙
2000년 이후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현황 ⓒ스트레이트뉴스/그래픽:김현숙

하지만 IMF 외환위기 이후 추경은 급한 불에 대응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예산으로 자리 잡았다. 저소득층 생계안정과 세수결손, 구조조정, 일자리, 자연재해 등에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그래프에서 보듯, 특히 이명박 정부의 2008년 금융위기 이후와 박근혜 정부의 메르스 사태 당시에 편성된 추경의 규모는 상당했다.

우리 경제가 위기에 처한 이유는 수출 중심 및 건설・토목・부동산에 치우친 경제구조와 대외 경제 환경의 변화에 취약한 탓이다. 취약성이 입증된 건 오래다. 그만큼 하루아침에 바꿔낼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더욱이 올해 정부가 제출한 추경 규모는 세수결손과 경기침체에 허덕였던 2013년과 구조조정 여파가 우리 사회를 강타했던 2016년에 비해 적은 규모다. 추경의 필요성을 따져보겠다는 한국당의 ‘숨겨진’ 속내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은 미중무역전쟁이라는 또 하나의 ‘블랙스완(Black Swan)’을 낳았다. 그의 자국보호정책은 관세와무역에관한일반협정(GATT)에서 출발해 우루과이라운드 등 다자간 무역협상을 거쳐 세계무역기구(WTO)로 이어진 교역 질서를 무너뜨리며 세계경기의 변동성을 갈수록 확대시키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들은 올해 한국 경제의 성장률을 2.3~2.6% 범위로 유지하기 위해 10조 원가량의 추경 편성을 권고했다. 정부가 제출한 추경 규모는 6조7,000억 원이고, 세계경기 변동성의 확대 속도는 빨라지고 있다. 당장 따지려면 하루아침에 바꿔낼 수 없는 경제구조를 탓하기 전에 추경 규모를 국제기구의 권고에 맞게 확대하라는 게 먼저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경기도 부천시 한국외식조리직업전문학교를 방문해 케이크를 만들고 있다.(2019.06.12)(자료:연합뉴스TV 화면갈무리)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경기도 부천시 한국외식조리직업전문학교를 방문해 케이크를 만들고 있다.(2019.06.12)(자료:연합뉴스TV 화면갈무리)

황교안 대표는 “추경 처리에 반대하는 자유한국당은 민생을 외면하고 있다”는 여당의 비판에 대해 “이 정부가 민생을 챙기기 않아 저희가 민생을 챙기고 있다”며 “국회가 빨리 정상화되기를 바라지만, 그 전제요건들이 풀리지 않기 때문에 저희도 안타깝다. 국회 정상화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국회의원이 국회 밖에서 투쟁에 나서야 할 때도 있다. 민주주의에 심각한 위해가 예상되거나 이미 무너졌을 때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국회의원이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은 국회로 돌아가기 위한 명분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국회 내에서 법안으로 민생을 챙기는 것이다. 세계교역의 질서 자체가 흔들리는 지금은 특히 더 그렇다. 한국당은 박근혜 정부가 썼던 추경의 규모부터 살펴야 한다. 한국당이 반면교사(反面敎師) 삼아야 할 상대는 바로 자신이다.

바른미래당이 6월 16일을 협상의 마지노선으로 선언한 가운데, 민주당과 한국당이 휴일 내내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에 따르면, 당장 다음 주 월요일부터 국회 모든 상임위와 소위가 가동 준비에 들어갈 예정이다. 바른미래당이 가세해 임시국회 소집의 명분도 강해졌다.

동시에 한국당의 ‘셀프 패싱’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애초부터 민주당만으로도 추경 심사를 위한 임시국회 소집은 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국민이 원하는 그림은 여야 5당이 함께 임시국회를 소집하는 것이었고, 민주당도 그런 여론을 숙지하고 있었다. 머뭇대던 바른미래당이 가세하면서 6월 임시국회는 이미 출발한 모양새다. 한국당이 셀프 패싱으로 얻을 것은 30%에도 미치지 못하는 ‘집토끼’의 환호뿐이다. 명분도 가능성도 없는 청문회 주장을 접고 국회의원 본연의 책무로 복귀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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